‘미국서 레터 올 것’ 말 아껴도 핑크빛 소문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7월 매각설’이 구체적으로 돌고 있다. 사진은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
지난 5월 21일,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일주일간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동 시간을 감안하면 사실상 5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이 행장은 미국 동부지역을 돌며 금융권 인사들을 만났다. 그가 이번에 미국을 다녀온 공식적인 이유는 기업설명회(IR)지만, 우리은행 매각을 위한 투자자 물색이 주된 목적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중동과 지난 2월 유럽을 다녀온 데 이어 세 번째 해외 기업설명회를 다녀온 그는 예전과 달리 귀국 후 출장 성과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이 행장은 지난해 중동을 다녀온 뒤에는 “아부다비투자공사(ADIC) 등 중동지역 국부펀드와 많은 얘기가 오갔다”면서 매각 협상이 시작될 듯한 뉘앙스를 풍겼고, 유럽 출장 후에는 “유럽지역 투자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곧 ‘투자의향서(MOU)’라도 체결될 것처럼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 행장은 미국 출장 결과에 대해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미국은 의사 결정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한 달쯤 뒤에나 반응이 나올 것”이라며 섣부른 예측을 삼가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심상찮은 소문이 퍼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우리은행 민영화 작업 재개를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으며 매각공고 일자를 고르고 있다는 내용이 소문의 골자다.
금융권 소식통들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하반기에 우리은행 매각공고를 낼 계획인데, 공고일자를 오는 6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우 빠르면 올해 안에 매각 성사 여부가 판가름날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권 한 고위 인사는 “이광구 행장이 미국 출장 때 현지 기관투자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안다”면서 “이미 한두 개 기관으로부터 답변이 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광구 행장은 이번 미국 출장에 남다른 각오로 임했다고 한다. 우선 일정부터 강행군이었다. 이 행장은 쉬지 않고 이동하며 닷새 간 뉴욕과 보스턴, 워싱턴, 필라델피아 등 동부지역 4개 도시를 돌았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기관투자자들을 1 대 1 면담 방식으로 만나며 설득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이 행장은 이번 출장에서 51%의 정부 지분을 제외한 시장유통 주식에 대한 설명에 주력했다”면서 “당장은 경영권 확보가 어렵지만 향후 민영화가 진행되면 한국의 대형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 홍콩 투자은행(IB) 법인장 출신으로 IB들의 성향과 투자대상 선정방식 등을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아시아 금융허브인 홍콩 근무 당시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IB 관계자들과 쌓은 친분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이 행장의 글로벌 감각과 인맥 등이 미국 출장에서 힘을 발휘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매각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내부의 소문들은 당사자들끼리 주고받는 얘기이니만큼 아무래도 바깥의 소문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미국 출장 성과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민영화 작업 재개와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우리은행 민영화 작업의 진행 주체인 금융당국은 특히 민영화 성사 여부를 판가름할 주요 지표인 주가를 눈여겨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리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면 주가가 주당 1만 3000원은 돼야 하는데 현재 주가는 1만 원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면서 “다만 이광구 행장의 해외출장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이 부분이 주가에 반영된다면 민영화 작업을 시작할 모티브는 마련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우리은행 매각은 이미 세 차례나 실패한 만큼 또 다시 무산되는 경우가 있어서는 곤란하다”며 “해외투자자가 관심을 보였다 해도 실현 가능성과 인수 의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꼼꼼히 따져본 뒤 매각공고를 낼지 여부를 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가 상승이 중요한 요인인 것은 맞지만 투자자가 확실한 의사표명을 할 때까지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금융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또 다른 관측은 이광구 행장의 연임설이다. 2014년 취임한 이 행장은 민영화를 완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스스로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인 바 있다. 올해 말까지인 그의 임기는 6개월여가 남은 만큼 민영화가 성사되기에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일단 올해 안에 매각작업이 시작된다면 ‘민영화’ 임무의 첫 단추는 끼운 것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연임을 통해 추후작업까지 맡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행장이 시작한 일이니 스스로 마무리 지을 기회를 줘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취임 후 우리은행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위비뱅크’ 등 핀테크 사업도 성공을 거두며 민영화 달성을 위한 초석을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은행은 올해 1분기 전년보다 52.4%, 전분기 대비 102.4% 증가한 443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5월 은행권 최초로 출시한 모바일은행 ‘위비뱅크’도 모바일 대출실적만 1000억 원을 넘어서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 올해 안으로 민영화가 안 될 경우 연임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민영화가 연임의 전제조건이라거나 연임을 못하면 물러나겠다는 점 등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약속으로 받아들여진 부분”이라면서 “구체적인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연임이 결정될 경우 논란을 낳을 것이 뻔하고 이에 대해 금융당국 등도 부담을 느낄 수 있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