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 갈았을 뿐인데…몸매 ‘쭉쭉’ 연비 ‘빵빵’
레이싱에 사용되는 스톡카는 양산차를 개조한 것이다. 화려해 보이는 외관에 비해 내장재가 모두 제거된 실내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자동차 레이싱은 직접 보지 않으면 박진감을 느끼기 어렵다. TV 중계로 보면 똑같이 생긴 자동차들이 열심히 달릴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우선 엄청난 배기음에 압도된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쉴새없이 들리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요동친다. 눈앞에서 경쟁자를 추월하는 자동차를 볼 때의 짜릿함은 기대 이상이다. 경마처럼 베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하게 자동차 마니아들만의 잔치다.
경기 시작 전 그리드 이벤트 때는 관중들이 서킷으로 내려가 선수와 레이싱 모델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자동차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 류시원·김진표 같은 스타들 주위로 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는 것도 구경거리다.
국내 레이싱에 사용되는 차들은 ‘스톡카’라고 하는데, 이는 양산되는 차들을 개조한 것이다. F1을 비롯한 포뮬러 대회에서 볼 수 있는 차는 오로지 경주를 목적으로 제작된 것들로 ‘레이싱 머신’이라고 불린다. 스톡카의 내부를 직접 보면 실망할 수도 있는데, 화려한 외관에 비해 실내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그 이유는 무게를 1g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조수석 좌석은 ‘당연히’ 없다. 옆에 누굴 태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시보드와 센터터널의 플라스틱 부품들은 모두 제거돼 기계 부품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특이한 것은 실내에 설치된 ‘롤 케이지 바’라고 불리는 프레임인데, 외부 충격을 받더라도 탑승 공간이 변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2015년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에서 가수 출신 레이서 김진표 선수의 스톡카가 5회 이상 굴렀으나 선수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어 그 안전성을 입증한 바 있다.
# 5억 원의 람보르기니 시트가 수동?
2001년 판매가 시작된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는 당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압도적인 파워로 슈퍼카를 대표하는 모델이 됐다. 가격도 5억 원에 가까워 일반인들은 꿈에서나 타 볼 수 있을까 싶은 ‘드림카’였다. 그런데 막상 타 보면 썰렁한 실내와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계기판, 그리고 수동조절 시트로 실망감을 받을 수 있다.
5억 원에 가까웠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는 화려한 외양과 달리 수동 시트였다.
그랜저만 타도 시트가 자동인데 드림카가 너무한 것 아닌가라고 한다면 이는 스포츠카가 지향하는 철학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무르시엘라고는 오로지 달리고, 민첩하게 돌고, 얼음처럼 정지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스톡카만큼은 아니지만,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편의장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무르시엘라고뿐 아니라 2000년대에 나온 대부분 스포츠카의 시트는 수동이었다.
2011년 공개된 후속 모델 아벤타도르는 정반대의 스포츠카가 됐다. 화려한 실내, 우주선 조종석을 연상케 하는 디지털 계기판, 전동시트까지 직전 모델이 지향하던 철학을 벗어던졌다. 물론 10년의 세월 동안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1665㎏이던 무르시엘라고에 비해 신형 아벤타도르는 155㎏ 더 무거운 1820㎏이 됐다. 그럼에도 제로백(0→100㎞/h 가속시간)은 3.4초에서 2.9초로 빨라졌고, 연비는 3.1㎞/ℓ에서 5.3㎞/ℓ로 개선됐다. 스포츠카의 스피릿을 추구하는 사람은 전작의 아날로그적 향수가 그립겠지만, 시장은 몰기 쉽고 편안한 스포츠카를 원하고 있다.
# 포스코가 말리부를 사랑한 이유
스포츠카가 편의성을 추구하느라 무거워지고 있는 반면, 양산차들은 가벼워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쉐보레 말리부, 르노삼성 SM6는 100% 포스코가 납품하는 철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왼쪽)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포스코 서울 사옥에 전시된 신형 말리부 앞에서 악수하는 모습.
한국GM에 따르면 올해 5월 출시된 쉐보레 올 뉴 말리부(1.5터보)는 설계 효율화와 초고장력강판 사용 및 알루미늄 적용으로 기존 모델(2.0 가솔린) 대비 130㎏ 감량에 성공했다. 현대차는 2013년 2세대 제네시스 이후 출시되는 쏘나타, 아반떼까지 초고장력 강판을 50% 이상 적용하고 있다. 모두 현대제철 제품이다.
자동차 보디는 강도가 각기 다른 철판을 접합해서 만드는데, 이는 가격 때문이다. 초고장력 강판을 100% 적용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쏘나타를 제네시스 가격에 팔아야 한다. 차량 전복 시 지탱해줄 루프 및 A·C 필러와 측면 충돌에 취약한 B 필러 등에 선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제철을 이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서 쏘나타 같은 대중형 양산차에 초고장력 강판 50% 이상을 적용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포스코는 올해 출시된 쉐보레 말리부와 르노삼성 SM6에 자사의 초고장력 강판이 100% 들어갔다는 점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서울 포스코 사옥에 말리부를 전시하고, 권오준 회장이 이를 둘러보는 사진도 열심히 뿌렸다. 현대·기아차에 납품하지 못하는 이상 한국GM·르노삼성과 손을 잡은 것이다.
한편,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2014년 차종별 33~52% 수준인 초고장력 강판을 2018년까지 48~62%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이는 그랜저, 싼타페 등 후속 모델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고급차엔 알루미늄이 대세
경량화를 추구하는 또 다른 방법은 철 이외 카본파이버, 알루미늄 등 경량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다.
흔히 ‘카본파이버’로 불리는 CFRP(Carbon Fiber Reenforced Plastic: 수지강화탄소섬유)는 철보다 4배 가볍고 6배 강한 ‘꿈의 소재’로 우주선·항공기 등에 쓰인다. 가격이 비싸 람보르기니에서도 최고가인 아벤타도르 정도의 차체를 만들 때만 사용된다. 스톡카를 만들 때 후드·루프 등만 선별적으로 CFRP 소재로 바꾸기도 한다.
알루미늄은 양산차에서도 많이 적용되는 소재다. 현대차는 1세대 제네시스부터 후드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경량화뿐 아니라 앞뒤 무게 배분에도 유리하므로, 고급 후륜구동 차량에는 후드·도어 등을 알루미늄으로 만들기도 한다.
철과 알루미늄은 녹는점이 달라 용접으로 접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본드와 리벳으로 접합해야 하는 등 접합이 까다롭다. 따라서 후드·도어처럼 분리되는 부품에 주로 적용된다. 그러나 아우디, 재규어 등은 알루미늄을 섀시에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고, 100% 알루미늄 섀시를 만들기도 한다. 수리비가 특히 비싼 이유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