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품질 ‘우수’ 신뢰도는 ‘아직’…IT 기기에선 두각 나타내
# 소비자 신뢰 얻으려면 갈 길 멀어
기아차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 회사로 인정받았다는 얘기일까. 우리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이디파워 초기 품질지수에서 기아차는 전체 33개 메이커 중에서 1위를 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지 의심부터 든다. 특히 뉴스매체가 ‘등극’이란 말을 쓰고, 기아차가 보도자료에서 ‘쾌거’, ‘압승’이라며 과도한 표현으로 자찬하는 것이 거슬린다.
제이디파워의 다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이번 기아차의 ‘쾌거’가 기뻐할 일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아차는 지난해 7월 발표된 ‘신차만족도(APEAL)’에서 33개 업체 중 20위, 올해 2월 발표된 ‘신뢰도조사(VDS)’에서는 32개 업체 중 17위였다. 신뢰도조사는 3년 전 모델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3년 뒤 기아차가 어떤 결과를 받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기아차의 형님 격인 현대차는 어떨까. 현대차는 올해 ‘초기품질지수’에서 기아차, 포르셰에 이어 3위였다. ‘신차만족도’에서는 기아차(20위)보다 높은 14위였다. 신뢰도조사에서는 기아차(17위)보다 두 단계 낮은 19위였다. 신뢰도 상위 업체는 렉서스, 포르셰, 뷰익이 1~3위를 차지했다.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갈 길이 멀다.
그렇다면 제이디파워는 믿을 만한 조사업체일까.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로 그 공정성과 영향력은 업계에서 이견이 없을 정도다. 자동차·가전 분야 한국 메이커들은 제이디파워와 컨슈머리포트를 주로 언급하는데 제이디파워는 시장조사기관으로 점유율 등 시장 데이터 판매 및 컨설팅이 주 수익원이고, 컨슈머리포트는 상품정보를 담은 매체 판매가 주 수익원이다. 즉 제이디파워는 기업을 고객으로 하고 있고, 컨슈머리포트는 소비자를 고객으로 한다.
둘 다 조사를 위해 메이커로부터 일체의 금전적 협찬 또는 제품을 받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컨슈머리포트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를 알린다. 제이디파워의 사업영역은 자동차뿐 아니라 금융, 보험, 헬스케어, 설비, 여행, 전자제품, 심지어 정부 행정까지 망라한다. 해당 전문가가 조사를 총괄하면서 컨설팅도 제공하므로 업체의 입김이 작용할 만하지만 제이디파워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로서 신뢰도가 유지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제이디파워의 자동차 분야 조사는 크게 △신차만족도(APEAL) △초기 품질지수(IQS) △신뢰도(VDS)조사로 나뉜다. 이 외에도 서비스 만족도와 타이어 조사가 있다.
기아차는 2016 제이디파워 신차 품질지수에서 브랜드 순위 1위, 세그먼트별 1위(쏘울, 스포티지R)를 하는 등 선전했다.
신차만족도(APEAL Study: Automotive Performance, Execution And Layout Study)는 영문 명칭대로 신차의 성능(performance), 만듦새(execution), 구성(layout)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초기 품질지수’와 ‘신뢰도조사’는 어느 정도 운전을 한 뒤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평가하는 것이지만, 신차만족도는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평가하는 것이다. 신차 구매 결정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신차만족도(APEAL)는 제조사의 브랜드 외에 개별 차종에 대해서도 이뤄지는데 세그먼트별로 보면 세단에는 현대차, 기아차가 1위에 오른 부분이 없다. 소형차 부문 2위에 기아차 프라이드(미국명 리오), 중형차 부문 2위에 현대차 쏘나타가 올라 있다. 세단 외 부문에서는 기아차 카니발(미국명 세도나)이 1위를 차지했고, 콤팩트 MPV에 쏘울이 2위를 차지했다.
기아차가 1위를 차지한 초기 품질지수의 세그먼트별 순위를 보면 현대·기아차의 선전을 확인할 수 있다. 소형차 부문에서 현대차 액센트가 1위, 기아차 프라이드가 3위다. 콤팩트카(준중형) 부문에선 기아차 K3(미국명 포르테), 현대차 아반떼(미국명 엘란트라)가 2, 3위다. 콤팩트 스포티 카에선 현대차 벨로스터가 3위, 콤팩트 MPV에선 쏘울이 1위다. 중형 프리미엄 카 부문에선 현대차 제네시스가 3위, 대형차 부문에선 현대차 그랜저(미국명 아제라)가 1위에 올라 있다. 소형 SUV에선 기아차 스포티지, 현대차 투싼이 나란히 1, 2위다. 중형 SUV에선 기아차 쏘렌토가 2위다. 이렇게 차종별로 선전한 결과 전체 브랜드 순위에서 기아차와 현대차가 각각 1, 3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신뢰도조사(VDS)의 차종별 순위를 보면 현대차, 기아차가 세그먼트별 3위 이내 이름을 올린 것이 3개 차종으로 가장 적고 1위에 오른 차종은 아예 없다. 소형차 부문에서 현대차 액센트가 3위, 중형차 부문에서 현대차 쏘나타가 2위, 콤팩트 MPV에서 기아차 쏘울이 2위다.
# 내세울 건 IT 우수성뿐?
종합하면, 현대·기아차는 신차만족도에서는 비교적 선전, 초기 품질지수에서는 최우수, 신뢰도조사에서는 갈 길이 멀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발표된 초기 품질지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므로, 7월에 발표될 신차만족도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기를 기대해 볼 만하다. 또 3년의 시차가 있는 신뢰도조사에서도 차츰 순위 향상이 기대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초기 품질지수(IQS)에서 제기되는 주요 문제점의 항목이다. 제이디파워가 순위와 함께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는 구매 후 90일 이내에 많이 제기되는 문제가 블루투스, USB 접속, 터치스크린, 내비게이션 등 주로 IT(정보기술) 기기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는 ‘IT강국’ 한국의 메이커답게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그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제이디파워가 올 3월 발표한 ‘서비스만족도(CSI: Customer Service Index)’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양산차 부문에서 각각 5, 7위로 상위권에 올라 있다. 다만 서비스만족도는 ‘럭셔리 브랜드(12개)’와 ‘양산차(21개)’를 나눠서 순위를 매기는데, 이를 합쳐서 점수별로 순위를 재산정하면 총 33개 업체 중 현대차는 17위, 기아차는 19위로 중간 이하에 위치해 있다.
물론 서비스 분야에서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고급 마케팅이 앞설 수밖에 없으므로 순위도 나눠서 산정하는 것이겠지만, 현대차가 ‘제네시스’라는 고급 브랜드를 론칭한 이상 미국 시장에서 서비스를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