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얻어먹으면 한번 사…조폭 제안 그렇게 뿌리쳤다
4차례의 승부 조작을 시도해 2차례 성공한 이태양(전 NC), 혐의는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에서 자신감을 갖고 수사 중인 문우람(상무), 그리고 2년 전의 승부조작 사실을 털어놓은 유창식(KIA)에다 지난 7월 28일에는 유창식과 함께 승부조작을 공모한 브로커 김 아무개 씨까지 경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김 씨는 유년 시절까지 야구를 했고, 동생은 현직 프로야구 선수이다. 증권가 정보지엔 벌써 이 선수의 실명이 공개됐을 정도. 앞으로 승부 조작 수사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 프로야구 승부조작사건을 수사하는 경기북부지방경찰청(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팀은 국가대표 출신의 선수에 대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곧 이 선수를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쯤되면 승부조작 사건이 KBO리그 전체를 뒤덮을 수도 있는 문제다. 더욱이 현역 선수의 친형이 브로커로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승부조작의 ‘검은 손’이 야구판 깊숙이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한 투수 출신 A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례를 기자에게 털어 놓았다. 승부조작 제안을 받은 뒷얘기였다.
“우연히 야구했던 친구를 통해 ‘아는 형님’을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아는 형이라고 인사를 시켜준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술 한잔하는데 그 형이란 사람이 내게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아주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손을 써주면 2000만 원을 건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농담이라고 얘기하다가 나중엔 꽤 진지한 표정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더라. 그 얘길 다 듣고 내가 이런 말을 했다. ‘2000만 원으로 내 야구인생 포기하기 싫다’라고.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다. 그 후론 그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다 한통속인 것 같아서 보고 싶지 않았다.”
A는 승부조작을 원하는 ‘검은 손’들이 어떤 방법으로 선수들에게 접촉하는지 설명했다.
“주로 1군에 있는 선수들보단 2군과 1군을 왔다 갔다 하는 선수들이 주요 타깃이 된다. 2군에서 1군으로 올라갈 수 있는 나이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다. 지금 수면으로 드러난 승부조작 관련 선수들을 보면 이전에 5000만 원 미만의 연봉을 받던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에게 1회 볼넷 주는 걸로 500만 원을 제공한다면 처음엔 솔깃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절대 들통나지 않게끔 다 조치해준다고 하면 거의 넘어가게 돼 있다. 그래서 구단의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입단 초에만 형식적으로 하는 교육이 아닌 승부조작으로 야구를 못하게 된 사람들을 강사로 세워서라도 초기에 바로 잡아야 한다.”
많은 기록을 갖고 은퇴한 선수 B도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그는 선수들과 조직에서 활약하는 ‘형님’들과의 유착 관계를 거론했다.
“야구 좀 한다 싶으면 지역의 조직원들이 접촉해 온다. 일부 선수들은 유흥업소에 출입하는 걸 즐긴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술을 마시려면 룸살롱에 가야 하는데 갈 때마다 자기가 돈을 내고 술 마시기 어렵다. 이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지인을 통해 조직폭력배의 ‘형님’이 등장한다. 지역의 ‘형님’ 정도를 알아두면 편리하게 이용할 때가 많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용돈도 건넨다. 술 마실 때는 아가씨를 소개시켜주기도 한다. 그러다 한 번씩 큰 부탁을 해온다. 승부조작 같은 일이다. 그때 거절해야 하는데 나이 어린 선수들은 그걸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다 그들이 쳐 놓은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B는 지방팀에서 활약했던 선수이다. 실제 조폭들과 형 동생으로 지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폭으로부터 승부조작 제안을 받은 얘기를 들려줬다.
“야구하다보면 야구장 티켓이나 선수 사인볼 등 부탁받는 일이 많다. 그런 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야구선수로서 해선 안 될 짓을 하면서까지 그 형과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보복이 두렵진 않았다. 내가 실수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쪽에서도 내게 해코지를 못했다. 난 그가 사주는 술을 마신 적이 있었지만 한 번 얻어먹으면 다음에 꼭 내가 샀다. 그런 식의 관계였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이태양이 브로커로부터 협박과 구타를 당했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속상했다. 우리 야구판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은퇴 선수 C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 어린 선수들이 고급 시계나 차 등에 현혹돼 야구 인생을 저당 잡히는 일이 종종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 선수들의 씀씀이가 우리 때랑은 비교가 안 된다. 야구 좀 한다 싶으면 외제차에다 비싼 명품 시계를 차고 다녀야 폼이 난다고 생각한다. 문우람이 이태양에게 승부조작을 연결해준 대가로 명품 시계와 의류 등의 선물을 받았다는 소식에 씁쓸함을 넘어 허탈하기 까지 했다. 그게 뭐라고 야구 인생을 담보로 맡기나. 돈 쓸 데는 많고, 멋도 내야하고, 돈은 필요하고. 이러다보니 쉽게 검은 유혹에 넘어가는 거다.”
C는 이어서 “지금 나온 얘기들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현재 국가대표급 선수를 대상으로 수사 중이라고 하는데 또 다시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지 모른다. KBO리그가 역대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 암암리에 자리 잡은 사설 토토 사이트는 수천 개에 육박한다. 이들 사이트는 프로야구 경기에서 선발 투수의 초구 스트라이크와 볼넷을 맞추는 게임과 양팀 투수 가운데 먼저 볼넷을 내주는 첫 볼넷과 1이닝 득점 여부를 맞추는 게임을 배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선수들을 이용해 승부조작이 가능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던 브로커들은 주변 인맥을 통해 연봉이 많지 않은 신인급 선발 투수들에게 접근해 고의 볼넷과 초구 스트라이크 등을 주문하면서 그 대가로 수백 만 원에서 수천 만 원을 건네고 있다.
최근에는 에이전트의 탈을 쓰고 선수들에게 검은 손을 내미는 브로커들도 있다. 승부조작의 패턴이 꽤 대범하고 광범위해진 것이다.
공중파의 한 해설위원은 “유창식이 자수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긴장하고 떨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고 들었다”면서 “나도 선수 출신이지만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감이 안 올 정도이다. 이참에 제대로 파헤쳐서 승부조작을 근절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또 다른 해설위원은 기자에게 4년 전의 얘기를 꺼냈다. 그는 “4년 전에 더 확실히 조사했어야 한다. 프로야구 인기 떨어진다고 빨리 덮으려고 한 게 이 지경이 돼버렸다”며 KBO와 구단의 안일한 대처에 화살을 돌렸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선수들도 승부조작하다 걸리면 영구 제명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고도 나쁜 짓을 한다는 게 어이없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로 성공하고 싶어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프로 유니폼을 입은 것 아닌가. 승부조작에 빠져든 순간 그 선수는 부모와 가족을 버렸고, 팬들도 우롱했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에 말이다. 승부조작을 한 선수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그 세계에 비밀이 없다는 얘기다. 제발 선수들이 정신 차리고 야구했으면 좋겠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