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 쏠림현상 불 보듯 뻔한데…
중앙선관위 공식 홈페이지 정치 후원금 기부 독려 동영상 캡처
중앙선관위는 8월 12일 공청회를 열고 정당후원회 제도의 부활을 제안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정당은 후원회를 둘 수 없지만 선관위의 개정의견은 중앙당에 후원회를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중앙당이 시·도와 자치구·시·군별로 후원회 연락소를 이용, 개인의 후원금을 모금을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선관위는 정당의 연간 모금·기부액 한도를 150억 원, 공직선거가 있는 해는 300억 원으로 정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중앙당의 후원액 한도를 50억 원 정도로 하고 17개 시도당별로 각각 5억 원씩 해서 물가상승률 감안해 150억을 기준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의 파격적인 개정의견에 대해 곱지 않은 반응들이 적지 않다. 국민들을 경악케 만들었던 ‘차떼기’ 사건의 악몽 때문이다. 2002년 16대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가 ‘차떼기’ 방법으로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40년 동안 운영됐던 정당후원회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2006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홍역을 치렀다.
정치권 일각에서 “선관위가 수백억의 합법적 차떼기를 방조하는 것 아닌가”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좌관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파워에 따라 정당 후원금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선관위안에 따르면 유력 정당이나 대선후보가 재벌 대기업의 합법적 줄 세우기가 가능하다. 돈 많은 사람들이 보험용으로 거대 정당을 후원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데 후원회를 굳이 부활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정당이 수백억의 국고보조금을 받는 상황인데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정당 후원회의 기부액 한도에 대해서도 뒷말이 새어나오고 있다. 더민주 당직자는 “선거 있는 해 300억은 너무 과하다. 국고보조금도 어디다 쓰는지 파악이 안 되고 있다. 보조금의 30%를 정책의 연구 개발비로 써야 하는데 그 비용을 전부 여론조사비용으로 충당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론조사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기도 한다. 또 정당 후원회는 당직자들만 신나는 제도다. 선거 때가 되면 시도당의 사무처장이 당직자들의 성과급을 결정한다. 정당 후원금이 들어오면 국민들 돈을 뜯어서 성과급 잔치를 벌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선관위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23일 정당 후원회 금지를 명시한 정치자금법 6조에 대해 “정당에 대한 재정적 후원의 전면 금지는 정당 활동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선관위 관계자는 “헌재 판단대로 개정의견을 냈다. 또 정치자금법상 기부내역을 공개하는 내용과 국고보조금 차등 지급 방안과 연결이 된다. 정당 후원회를 부활하는 대신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방안들을 충분히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 역시 “정경유착의 문제는 일부 재벌기업과 부패한 정치세력에 국한된 것이고 대다수 유권자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의 더민주 당직자는 “헌재와 선관위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정당은 전문성이 보장된 집단도 아니다. 당 대표가 바뀌면 사무총장이 돈을 틀어쥔다. 재정의 연속성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무작정 정당에 돈을 퍼주는 것은 잘못됐다. 퍼주고 난 뒤에 대선 때 지원이 없다고 하면 몰라도 어차피 선거비용으로 보전이 가능하다. 정당이 정치자금법 제도 하나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돈을 더 받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선관위의 구·시·군 지구당의 부활을 추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생활정치 활성화가 목적이다. 지구당이 없어 지역의 정치적 요구나 생활주변 요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지구당이 있으면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의 차별 문제도 풀린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상 원외 당협위원장은 선거기간이 아니면 사무실이나 후원회를 둘 수 없다. 지구당 설치로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선관위의 복안이다. 시민사회도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관계자는 “지금은 손발 다 묶어놓고 정당을 운영하는 셈이다. 정당민주주의 차원에서 지구당에 신진정치인들도 유입되고 훈련이 돼야 정치적 훈련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고비용 정치의 폐단’을 우려하고 있다. 지구당이 부활할 경우 사무실 임대비용과 인건비를 포함해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돈 먹는 하마’로 불린 지구당이 오세훈법의 통과로 전격 폐지된 까닭이기도 하다.
더민주 다른 당직자는 “지구당을 풀어주면 정말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합법적인 루트를 만들어 양성화를 해도 뒷돈으로 얼마든지 돈을 모을 수 있다. 점심 먹고 회의했다는 식으로 장부를 조작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구시군당이 운영될 경우 회계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도록 하자는 회계투명성 확보방안이 적용된다. 지구당 부활은 개정의견일 뿐 개정안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선관위의 지구당 부활 의견이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보좌관은 “의원들은 사다리 걷어차기를 즐긴다. 지구당 설치는 사다리를 노리는 잠재적 도전자들의 현역의원에 대한 안정적인 도전을 허용해주는 꼴이다. 좋아할 의원이 있겠나. 지금껏 정치신인을 위한 길을 열어주겠다는 법안은 항상 유야무야됐다. 현역의원들과 원외 지역위원장은 어차피 라이벌이다. 선관위가 개정의견을 내도 막상 본회의에 올라가면 의원들이 협조적으로 나올 리 없다. 당선만 되면 9명의 비서진이 자신을 보좌하는데 상대인 원외인사는 단 3명만 둘 수 있다.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의원들이 포기할 리 있겠나”고 반문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