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링’ 위로 맞은 ‘검증주먹’에 주춤
▲ 박근혜 전 대표의 네거티브 전략에 대응하기도 어렵고 지지율 하락을 마냥 지켜볼 수만도 없는 상황에 처한 이명박 전 시장. 사진은 합성한 것임. | ||
지금 이 전 시장은 지지율 추이에 있어 하나의 변환점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상황을 반전시킬 묘책을 발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강공책으로 무리수를 둘 수도 없는 이 전 시장의 딜레마를 추적한다.
‘위기의 남자’라는 말도 나오기 시작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과연 그가 실제로 위기를 맞고 있는지부터 분석해 봐야 한다. 역시 그 단초는 여론조사의 지표를 통해 민심과 당심의 흐름을 분석해보는 것이 가장 정치공학적인 접근일 것이다. 지난 4월 초만 해도 이 전 시장 측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대이상의 선전을 한 것으로 나타나자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특히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타결된 지난 4월 2일 이후 여론조사에서 일제히 지지율 상승을 기록한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었다. 이 전 시장 캠프에서는 후보 검증 때문에 주춤하던 지지율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대세론’으로 연결시키자며 의욕을 보였다. 그리고 그 ‘흐름’은 4월 중순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위기’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될까. 최근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는 지난 4월 둘째 주에 실시된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에 그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이 기관은 매주 대권 주자의 지지율을 조사해 발표하는데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전주에 비해 6.4%p 하락한 37.7%였다).
이 조사 결과만을 가지고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급락했다고 보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리얼미터’는 전화 ARS조사방식을 쓰기 때문에 일부 기관에서는 그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한 상황이다. 또한 4월 첫 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오히려 약간의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에 한 조사기관의 주간 단위 결과만을 가지고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마침내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호들갑일 수 있다. 이 전 시장 측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주간의 결과만을 가지고 급락했다고 보는 시각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김유찬 사건이 터진 지난 2월 이후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정체된 것만은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올해 초부터 이 전 시장의 지지율 추이를 유심히 분석하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후보 검증 시비 이후 조금씩 하락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상승 모멘텀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조금씩 빠진 지지율이 어느새 전체 국면을 위협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 시장의 지지율에 확실히 탄력이 빠진 것만은 사실이다. 앞으로 뭔가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 지난 2월 21일 이명박 전 시장의 비서관 출신 김유찬 씨의 기자회견 역시 이 전 시장의 지지율 하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정치공학적 접근이 아닌 정치권에서 보는 전략적인 해석은 그와 조금 다르다. 먼저 현재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시장에게 내재된 ‘악성 딜레마’가 그의 탄탄한 지지율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 측은 올해 들어 지지율 40%대의 고공행진을 기록하자 웬만한 변수만 없으면 무난히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에 잘 대응만 하자는 ‘상황 관리론’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대의원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이 계속해서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하지 못하자 이 전 시장 캠프에도 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다 역전패 당하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 전 시장의 ‘악성 딜레마’가 있다.
먼저 이 전 시장 측이 박빙의 대의원 승부에서 확실한 우세를 확보하기 위해 박 전 대표와의 전면전을 선포할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 전면전에는 박근혜 전 대표에 관한 X파일 공개 등 여러 가지 네거티브 공세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 전 시장은 1위 주자로서 판을 깨지 않기 위해 당의 단합과 화합을 수없이 강조했다. 후보검증 공세에도 맞불을 놓지 않고 참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틈을 노려 박 전 대표의 강공책이 조금씩 먹혀들면서 경선은 예측 못할 박빙의 승부로 흘러갈 경우 이 전 시장으로서도 결국은 강공책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양측의 감정적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 전 시장 측은 이 경우의 후유증을 가장 우려한다. 이 전 시장 측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점점 양측의 갈등이 감정적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만약 이 전 시장이 네거티브 공세를 포함한 강공책으로 경선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그 뒤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아 이의를 제기하거나 최악의 경우 탈당까지도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그가 경선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대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가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않거나 아예 등을 돌릴 경우 본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으로서는 웬만하면 무리수를 두지 않고 경선에서 무난하게 승리하는 게 최상책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친이그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경우 박 전 대표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점이 너무 많다. 그리고 갈수록 후보검증 등과 같은 네거티브 공세 때문에 사사건건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당의 화합이 걱정이다. 양측에 속한 의원들 가운데 어느 한쪽이 패배할 경우 승자를 위해 희생적으로 도움을 줄지 매우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 강공을 펼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 ||
최근 박 전 대표가 연설 스타일을 바꾸는 등 전에 없던 공격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며 ‘당심’을 계속 잠식해나가자 그동안 온건책으로 일관하던 이 전 시장 측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강공으로 돌아설 경우 자칫 당이 깨지거나 극심한 분열의 후유증으로 본선에서 패배를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이러한 ‘악성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묘안 찾기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전 시장의 상승세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는 또 다른 징후는 이슈 선점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선이 9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때쯤 되면 차기 대권 주자들이 정치권의 아젠다를 장악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FTA와 개헌 문제 등으로 계속해서 정국 주도권을 잡고 있다. ‘뒷방 늙은이’가 여전히 주인 행세를 하는 모양새다. 노 대통령이 계속 정국의 주인으로 군림하면서 차기 주자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의 존재감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당의 대권 주자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 전 시장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집권 가능성이 높은 후보임을 감안할 때 보다 적극적인 정국 주도 이슈를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 전 시장이 ‘야성’을 잃어버리고 대세론에 취해 벌써부터 ‘대통령’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립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긴 하지만 아직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된 것도 아니고, 야당의 일개 후보로서 정치 사안에 대해 책임 있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공연히 튀는 발언을 하다가 자칫 대통령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래도 이 전 시장이 최근 보여준 FTA 관련 발언이나 여러 가지 정치적인 민감한 사안에 대해 특유의 확실하고 분명한 언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집권 유력 세력으로서 ‘나는 이렇게 하겠다’라는 구체적인 언급이 아닌 정치권 관계자의 무슨 코멘트처럼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무슨 관전자의 평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전 시장은 ‘이슈 파이터’의 면모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의 고공행진 지지율도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직까지 이명박 대세론에 대한 균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정국 흐름에서 이 전 시장은 분명 ‘중심’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공격이 최상의 방어’가 될 수 있다. 정말로 ‘위기의 남자’가 되기 전에 이 전 시장이 한번쯤 새겨들어야 할 격언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충고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