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통합 및 대선 전략 수정 불가피
▲ 정운찬 전 총장(왼쪽). 손학규 전 지사. 연합뉴스 |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4월 30일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 전 총장은 그 며칠 전까지만 해도 범여권 인사들과 접촉을 넓혀 불출마 선언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던졌다.
앞서 정 전 총장은 보선 다음날인 4월 26일 심 대표에게 축하 난을 보낸 데 이어 직접 축하전화까지 했으며 이에 앞선 4월 20일에는 열린우리당 386 출신 김영춘, 임종석, 우상호 의원과도 만나 출마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정 전 총장은 4월 24일 춘천 한림대 최고경영자 과정 초청 강연에서 “정치 참여를 한다고 하면 강의가 끝나는 5월 말 또는 6월 초 이후 선언하겠지만 안할 경우 (학기가 끝나는 5월 말) 이전에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정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는 세력화 활동’이라며 “여태껏 그런 세력화 활동을 이끌어 본 적이 없다”고 불출마 이유를 밝혔다. 정 전 총장은 “지난 몇 달 간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왔지만 많은 생각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번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그동안 대선 출마를 놓고 고민해 왔으나 지지율이 계속 1∼2%를 벗어나지 못하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높은 현실정치의 벽에 대한 실망감, 자금 조직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 개인 사생활에 대한 검증 움직임 등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에 이은 정 전 총장의 포기로 범여권은 또다시 여권 통합 및 대선 전략에 일대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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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통합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행보는 점차 바빠지고 있다. 4·25 재보궐 선거 결과로 인해 한나라당이 침체 분위기를 맞은 것은 범여권 통합 추진의 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분위기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재보궐 선거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실상 식물정당으로 비치면서 여권 통합에 중심점이 없어졌다는 분석이 더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갈 길이 먼 범여권 주자들의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그들 가운데서도 ‘시베리아 벌판’으로 나선 손학규 전 지사나 충청권의 지원을 기대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이번 재보선의 결과를 바라보며 마지막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여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미 정운찬 전 총장의 대권도전 선언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충청권에서 이미 지지 모임이 만들어져 가동에 들어갔다. 정 전 총장의 머리 속에 복잡한 셈법이 오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손 전 지사도 30일 ‘선진평화포럼’ 출범식을 갖는 데 이어 북한 방문을 통해 평화 주자의 이미지를 새로 정립할 계획이다. 어쩔 수 없이 범여권의 주자로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손학규 전 지사와 정운찬 전 총장의 상승세를 만들어 ‘한나라당 빅2’와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을 바라고 범여권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손학규 전 지사와 정운찬 전 총장의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흥행 면에서 나쁘지 않다는 계산이다.
범여권 주자 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이가 정운찬 전 총장이다. 정 전 총장은 근래 잇따라 강연 무대에 오르며 타 대권주자들과 다름없는 적극적인 ‘강연정치’를 펼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 전 총장의 강연 스케줄은 예약된 것만 수십 개에 이른다고 들었다”며 그의 적극적 정치행보를 눈여겨볼 것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정 전 총장의 지지 세력인 ‘새로운 정책정당 추진 모임(새정추)’이 출범한 것도 본격적인 대선 도전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 전 총장은 새정추와 관련, ‘자신은 몰랐고 관련인사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새정추’는 지난 22일 대전 충남지역 본부 결성을 시작으로 해 앞으로 전국 16개 광역시·도 조직을 꾸리겠다는 계획이다. 주로 대전과 충남지역 정치인과 교수, 시민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새정추’의 한 관계자는 “5월 중순경까지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정 전 총장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모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새정추’는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정 전 총장의 ‘독자세력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새정추’가 대전·충남 지역 본부를 그 시발점으로 삼은 것에는 적지 않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 전 총장의 고향이 충청도인 것은 천운이다. 결국엔 영호남 지역싸움으로 귀결될 선거판에서 대선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충청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발판을 이미 딛고 있는 셈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 전 총장은 충청지역에 일찌감치 부터 공을 들여왔다. 지난해 12월 재경 공주향우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그는 “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왔다”고 말했다. 지난 2월의 공주대 특강에서는 “지역을 위해 조금이나마 공헌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 전 총장을 지지하고 있는 국회의원들 역시 열린우리당 양승조 의원(충남 천안), 충남 서산시장을 지내기도 한 박상돈 전 의원, 무소속 권선택 의원(대전광역시) 등 충청지역 인사들이다.
▲ 심대평 대표(왼쪽), 김대중 전 대통령 | ||
정운찬 전 총장이 독자세력을 조직하고 나서는 것과 때를 맞추어 손학규 전 지사도 세력정비에 나서고 있다. 손 전 지사의 지지모임인 ‘선진평화포럼’이 30일 출범식을 갖고 이어 6월 초쯤 ‘선진평화연대’가 출범할 계획이다. 선진평화연대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치세력으로 정당 조직을 만들기 위한 예비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손 전 지사 측은 먼저 학계, 문화계, 예술계 인사들 150명 선을 발기인으로 하는 선진평화포럼을 만든 뒤 이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포럼에는 손 전 지사의 오랜 지인인 김지하 시인 외에 운동권 인사들도 힘을 실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손 전 지사는 북한 방문을 통해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하겠다는 각오다. 손 전 지사는 북측 민족화해협의회가 주최하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것 외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측 고위급 인사들과 비공식 만남을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 전 지사의 북한방문과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DJ와의 연대론’을 제기해 주목을 글고 있다. 손 전 지사가 탈당을 결심하기 직전 DJ와 만남을 가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올 당시부터 ‘손학규-DJ 연대론’은 구체적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던 시절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는 점이 이를 추측하게 하는 정황 중 하나로 작용했다. 손 전 지사는 지난 23일 전북 익산 대학교 특강에서도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에 한나라당 소속이었지만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햇볕정책을 계승·보완·발전시켜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했었다”면서 “햇볕정책과 선진·평화전략은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초석이며 한반도가 세계 중심이 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미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울타리 밖으로 몸을 던진 데다 DJ가 오래 전부터 자신의 햇볕정책을 지지해왔던 손 전 지사를 돕는 것이 가장 타당한 그림 아니겠느냐”고 전하기도 했다.
손 전 지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대권 가도에 ‘호남민심’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미 정운찬 전 총장이 ‘충청민심’ 다지기에 들어선 터라 손학규 전 지사가 힘을 쏟을 곳은 호남지역 외엔 없다. 더구나 호남 지역은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적은 곳이었다. 손 전 지사의 탈당 직후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찬성 46.6%ㆍ반대 10.3%,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전북 지역은 찬성 56.6%ㆍ반대 12.6%를 기록한 바 있다. 이처럼 고건 전 총리의 낙마 이후에 호남지역 여론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반기는 분위기였음에도 그동안 손 전 지사는 선뜻 호남 방문을 결정하지 못했다.
손 전 지사 캠프 내부에서도 그동안 호남지역 방문 여부를 두고 여러 가지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지역구도에 호소한다는 지적을 받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