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주의보’에 돛도 못 올리고…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의 배경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하지만 정 전 총장이 왜 이렇게 갑작스런 포기를 선언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증이 남아있다. 불출마 선언 하루 전만 해도 이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지난달 30일 기자회견 보도자료가 언론사에 배포됐을 때만 해도 일부에선 드디어 대권 도전 발표냐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정도다. 그만큼 정 전 총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권 도전에 대한 의지를 자주 내비췄고 충청지역에서는 지지 모임까지 결성돼 정가에서는 그가 조만간 공식적 대선출마를 선언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전격적인 대선포기 선언 뒤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케 한다. 과연 정 전 총장이 낙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4월 30일, 정운찬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매우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의 세실 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정 전 총장은 준비해온 원고를 3분 만에 읽어 내려갔고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같은 시각 손학규 전 지사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탈당 이후 정 전 총장과 함께 범여권 후보로서 경쟁구도에 놓였던 그는 자신의 지지모임인 ‘선진평화포럼’을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선포했다. 교묘하게 ‘한 날 한 시’에 중대발표를 한 두 사람의 운명은 매우 드라마틱했다. 기자회견 직후 언론에서는 정 전 총장이 ‘지고’ 손 전 지사가 ‘뜬다’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손 전 지사의 기자회견과 달리 정 전 총장의 이날 불출마 선언은 사전에 예고된 것이 아니었다. 정 전 총장이 언론사에 회견 사실을 알린 것은 기자회견 당일 오전 11시께. 하지만 이때까지도 기자회견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다만 정 전 총장이 무언가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정 전 총장은 불출마 선언 직전까지도 대권 도전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불출마 선언 하루 전날인 3월 29일에도 “나는 드롭(drop·중도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으며, (불출마 선언을 한) 고건 전 총리와 같은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9일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는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면 지금 출발해도 내가 (이명박 전 시장에게) 밀리지 않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보였고 4월 12일 경원대 특강에서도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의 ‘행운은 여인과 같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행운은 마냥 조심스럽고 신중하기만 한 사람에게는 제 발로 찾아가는 일이 없다. 행운은 좀 더 공격적이고 대담한 사람의 차지인 법”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발언은 그의 대권도전 결단이 임박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정가에서는 정 전 총장이 5월 중 공식적인 대권 도전 출정식을 가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5월 초쯤 정 전 총장이 출판기념회를 가질 것이라고 들었다. 이 자리를 통해 대선 출마를 표명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손학규 전 지사, 한명숙 전 총리 등 범여권 주자들이 5월을 본격적 대선 행보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 정 전 총장의 대권 도전 또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분위기가 감지됐던 것.
그렇다면 과연 정 전 총장이 결국 대권 도전을 포기해야 했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겉으로는 대권도전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동시에 정 전 총장은 깊은 고민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총장의 1차적인 고민은 바로 조직력에 있었다. 독자 정당 창당을 원했던 그의 주변에 뜻을 함께하는 정치인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 불출마의 결정적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총장은 최근 이상민 김종률 박병석 의원 등 열린우리당 대전·충청권 인사들과 만남을 가지며 세력화에 공을 기울였다. 또한 지난 4월 20일에는 열린우리당 386 출신인 김영춘 임종석 우상호 의원과도 만나 드디어 출마 결심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부르기도 했다. 정 전 총장은 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정 전 총장은 불출마 선언 이후 이에 대한 고민을 직접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독자적으로 정당을 만들어보려 했으나 잘 안됐다”며 “설사 정당을 만들더라도 원칙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자금문제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창당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만 최소 30억 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에 정 전 총장이 이만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했던 것. 정 전 총장은 최근 들어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심각히 고민했다고 전해진다. 대선출마 선언을 두고 뜸을 들여야 했던 근본적인 원인도 바로 ‘돈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정 전 총장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대선에 나가려면 상당한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어떻게 조달할 수 있느냐”는 고민을 수차례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는 정대철 상임고문과 만나 정치자금 문제를 상의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더구나 얼마간의 돈을 모금하는 데도 자신의 원칙이나 도덕을 지키며 모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창당 이후는 더 큰 문제였다. 대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수십억 원 단위의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정 전 총장이 원칙으로 삼았던 ‘5%’에 한참 모자라는 1~2%의 지지율로 ‘돈 없는’ 싸움을 하기엔 적지 않은 모험이 뒤따른다.
여기에는 ‘학자 출신’이라는 정 전 총장의 한계가 동시에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고건과의 차별화’를 강조했으나 근본적으로 조순 전 시장, 이수성 전 총리 등과 같은 학자 출신들은 때로 ‘멱살잡이’까지 해야 하는 정치판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정 전 총장의 동료 교수들도 ‘명예로운 교수로 남으라’는 충고를 건넸다는 후문이다. 정치판에 발을 디딜지 말지를 두고 정 전 총장이 ‘장고’를 거듭했던 것도 이런 그의 성향과 맞물려 있다. 심지어 그를 두고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결단력만 있다’는 쓴소리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정 전 총장 지지를 선언한 ‘새로운 정책정당 추진을 위한 준비모임(새정추)’과 엇박자 행보를 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새정추’는 5월 말까지 전국 모임을 발족하고 정 전 총장의 1학기 강의가 마무리되는 5월 말~6월 초에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또한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직전인 4월 29일에도 강원도 원주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은 “이 모임은 나와 무관하다”면서 모임의 중단을 요구하며 “정치선언 이전에 나의 선언을 이끌어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밝혔다. 지지모임 발족에 대해서조차 공개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던 것.
또한 정 전 총장의 발목을 잡았던 문제 중 하나는 사생활 등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검증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정치권 주변의 조심스런 분석이다. 대권주자로 나설 경우 집안 문제나 가정, 재산, 병역 심지어는 여자 문제까지 도덕성 및 개인사에 대한 검증과 네거티브 공세는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정 전 총장이 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사생활 및 도덕성 검증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생활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면 학자 출신이 그로서는 타 대권후보에 비해 타격이 더 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언말했다. 결국 정 전 총장은 험난한 앞날이 예고된 대선주자로 나서는 대신 교수로서의 명예를 택한 것이라는 정치권의 이야기다.
정 전 총장은 불출마를 선언한 후인 2일 서울대 경제학부 전공수업인 ‘경제학연습’ 강의를 평소대로 진행하며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주변에서 아쉽다는 연락도 많이 오지만 정치참여를 내켜 하지 않던 딸과 가족은 좋아했다. 나 자신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의 중도낙마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새삼스럽게 알려준 것이며 참신한 정치 신인의 등장에 대한 국민의 목마름이 당분간 해소되기 힘들 것임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