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선수들에 신념 불어넣지 못했다”
[일요신문] 선수시절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불렸으나 감독으로 나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좌절을 맞본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박사논문에서 실패 원인을 겸허하게 분석했다. 일요신문DB
홍 감독은 논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로 지난 8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문화기술지’는 연구자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찰을 담아 쓰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인류학교육학 등에서 많이 쓰이는 연구 방법이기도 하다.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본선이 1년도 채 안 남은 시점인 2013년 6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나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신화를 쓴 홍 감독을 향한 팬들의 기대치는 매우 높았다. 짧은 기간에 성적을 내야 했던 홍 감독은 자신이 잘 아는 선수들을 중용했다. 자신이 지휘했던 2009년 U-20 월드컵, 2012 런던 올림픽 대표 출신들 위주로 대표팀을 꾸렸다.
한동안 소속팀에서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던 박주영을 선발해 ‘의리 축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는 홍 감독이 강조했던 ‘소속팀에서 활약에 따라 대표팀에 선발할지를 결정하겠다’는 원칙을 스스로 저버렸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논문에서 “당시에 나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옳은 판단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준비 기간이 촉박해) 과거 나와 호흡을 맞췄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고참급 선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이어 “이 과정에서 특정 선수를 배제하거나 한 선수에게만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 팀 운영과 관련한 원칙을 스스로 위반하는 오류를 범하게 됐다”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판단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후회가 되는 부분”이라고 고백했다.
홍 감독은 선수들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도 실패 원인으로 분석했다. 홍 감독은 “런던 올림픽 때는 군 면제라는 달콤한 보상의 가능성이 있었다”면서 “월드컵에서는 선수들을 하나로 묶으면서 절대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데 실패한 것이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 주된 이유 중 하나”라고 실패 원인을 밝혔다. 이어 “나는 선수들에게 절대 절명의 가치와 신념을 보다 강하게 주입하고, 이를 토대로 끊임없는 영감을 불러일으켰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한국축구에 대한 충언도 잊지 않았다. 홍 감독은 한국 축구가 당장의 경기 결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감독은 “사람과 더불어, 사람을 통해, 목표 달성을 완수해야 하는 특화된 조직인 국가대표팀이 단기간에 수장이 원하는 인적 구성으로 변모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대하는 성과에 즉각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중·장기적인 철저한 계획 속에 감독이 충분히 기량을 발휘하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미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