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얻어맞는 악몽 시달렸다”
▲ K-1 데뷔 무대를 우승으로 장식한 최홍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링 위에서 테크노댄스를 추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9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벌어진 K-1월드그랑프리 데뷔전에서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한 뒤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는 현재 부산에서 체력보강훈련을 하며 앞으로 다가올 K-1대회를 준비중이었다. 지난 28일, 서울 데뷔전 이후 국내 언론과는 처음 인터뷰를 하는 거라고 귀엽게 ‘생색’을 냈던 최홍만을 만나 우승 소감과 데뷔전 준비 과정의 어려움, 우승 뒷얘기들을 들어봤다.
―여기(부산의 한 대형쇼핑몰 안에 위치한 헬스클럽)서 벌써 훈련을 시작한 건가.
▲아직 다음 대회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아 체력훈련만 하고 있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못하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제주도 집에서 잠시 휴가를 보내고 바로 이곳으로 와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
―훈련을 하는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와 걱정들이 나한테는 큰 돌덩어리가 돼 가슴에 박혔다. 씨름 선수라 얻어터지기만 할 거라는 말부터 아케보노처럼 될 거라는 악담에다가 1회전에 KO패 당할 거라는 등등 정말 귀담아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의 홍수 속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격투기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무섭고 공포스러운 게 있었다면.
▲얻어맞는 거였다. 지금까지 큰 덩치 덕분에 맞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격투기는 맞는 걸 기본으로 해야 하는 탓에 처음 훈련을 하면서 그 두려움이 가장 컸다. 그래서 일부러 맞는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맞는 연습이라니 무슨 말인가.
▲얻어맞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3명의 스파링 파트너를 두고 1라운드씩 돌아가면서 날 때리게 했다. 한두 대 맞았을 때는 머리가 빙빙 돌고 다리가 풀려 일어서기도 힘들었지만 계속 맞다보니까 열도 받고 오기도 생기고 방어하는 요령도 생겼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 세운 스파링 파트너들이 날 때리질 못했다. 나도 그들의 펀치를 두려워했는데 그들은 내 눈빛이 공포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때려달라고 특별 부탁을 하기도 했다.
―데뷔전을 준비하며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
▲두들겨 맞는 데 대한 공포감 빼놓고는 포기할 정도의 어려움은 없었다. 훈련이 내 몸에 익숙해지면서부터는 격투기가 재미있어졌다. 아, 참! 꿈 때문에 잠시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었다. 잠만 자면 얻어맞는 꿈을 꾸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서 얼마나 찜찜한 기분이 됐는지 모른다. 얻어터져 쓰러지거나 피를 흘리며 다운을 당하는 등 악몽들이 계속해서 날 괴롭혔다.
―비디오를 통해 데뷔전 장면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봤다고 알고 있다. 자신의 경기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긴장을 많이 했다. 그렇다보니 배운 걸 다 잊어버려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코치님이 무대 위에 올라가면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연습한 걸 잊어버릴 수 있다고 충고하신 부분이 정확히 맞았다. 처음이라 경기를 풀어가는 부분이 많이 서툴러 보였다.
―체격이 작은 선수와 큰 선수 중 어떤 스타일이 상대하기가 더 수월한가.
▲당연히 큰 선수가 더 쉽다. 작은 선수는 어떻게 때릴지 감이 안 잡힌다. 체중을 실은 펀치가 나오지 않는다. 더욱이 내가 액션이 커지면 커질수록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상대에게 끌려 다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첫 무대를 우승으로까지 연결시키면서 K-1 데뷔를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일부 격투기 마니아들 사이에선 서울대회가 너무 수준이 낮은 대회였다는 지적도 있다. 최홍만 선수를 우승시키기 위한 대회라는 비판도 있는데.
▲지금의 내 입장에서 대회 수준에 대해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결과는 좋았지만 칭찬만 들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비판도 나올 수 있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 솔직히 경기 수준이 높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만약 1차전에서 아케보노와 맞붙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지 상상해 봤나.
▲2차전에서 상대했을 때보다 더 잘했을 것이다. 데뷔전인 데다 첫 게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뚜렷했다.
▲ 아케보노와의 4강전 모습. 최홍만은 다시 한번 아케보노와 붙고 싶다고 말했다. | ||
▲난 그 경기를 계속 더 하고 싶었다. 힘이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판이 2회 다운을 근거로 KO패를 선언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번 데뷔전의 목표가 우승이었나.
▲아니다. 내 목표는 아케보노를 무너뜨리는 거였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우승까지 하게 된 것이다. 기분은 너무 좋았지만 아케보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붙었기 때문에 다음엔 서로가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한 채 반드시 재경기를 치르고 싶다.
―경기 직전에 독도 문제가 불거져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독도 문제를 논하던 네티즌들이 나중엔 모두 나한테 일본 선수를 이겨달라며 엄청난 관심을 표명해와 순간 당황했던 건 사실이다. 난 한국 사람인데 일본 K-1이 주최하는 대회를 뛰는 선수이기도 하다. 속으론 할 말이 많았지만 겉으로 독도 문제를 놓고 내 입장 표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본 선수들을 이긴 데 대해선 팬들도 모두 자랑스러워했으리라 믿는다.
―이번 대회에 전 LG씨름단 감독이었던 차경만 감독이 경기장에 직접 나와 관람했다. 차 감독이 올 줄 알고 있었나.
▲우승이 확정된 순간 내가 마이크 잡고 맨 처음 한 소리가 ‘씨름판을 떠난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 얘길 하고 내려왔는데 누군가 ‘홍만아, 홍만아’하고 부르시는 게 아닌가. 링사이드 주변에서 감독님이 눈물을 흘리시며 날 지켜보고 계셨다.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모른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감독님께 한없이 감사했다.
그런데 감독님께 이 자리를 통해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 기자들에게 자꾸 내 약점을 들추시며 보완할 부분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이젠 그만 하셨으면 좋겠다. 복부가 약하다는 감독님의 지적을 듣고 일본에서 복근강화운동을 무지 열심히 했다는 거 잘 모르실 거다.
―우승 세리머니로 그동안 묵혀뒀던 테크노댄스를 췄는데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였는지 궁금하다.
▲그렇지 않다. 링 위에서 테크노댄스를 보고 싶어하는 팬들은 많았지만 씨름 때 했던 세리머니를 재현할 생각은 없었다. 우승이 확정된 후 링 위에 대자로 뻗어 있다가 관중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이렇게 그냥 내려가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벌떡 일어나 오랜만에 테크노댄스를 춘 것이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더욱 오랫동안 감격적인 테크노댄스를 추는 게 소원이다.
―격투기 선수가 된 이후 좋아진 것 세 가지만 말해 달라.
▲첫째, 여자팬들이 많아졌다. 아줌마는 물론 연예인 중에서도 격투기 팬들이 많다. 즉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다. 둘째는 많은 관중들 앞에서 내 ‘끼’를 모두 발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씨름하면서 가장 희망했던 부분이라 관중들의 박수와 함성을 들으면 절로 행복해진다. 셋째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부모님이 제주도에서 식당일을 하시며 어렵게 뒷바라지를 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결국 그 목표가 여기까지 오게 했다.
―좀 다른 질문을 해보겠다. 키는 언제부터 컸나.
▲중1 때의 키가 150cm였고 중2 때가 170cm, 고1 때 190cm, 고2 때 2m가 됐다. 부모님과 형의 키가 160~170cm 사이다. 한마디로 난 집안의 ‘돌연변이’나 다름없다. 어렸을 때 특별히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걸 먹어 본 적이 없다. 있다면 짬뽕과 자장면을 끔찍이 좋아했다는 사실 말고는. 아마도 부모님과 형이 못 큰 걸 내가 대신 큰 모양이다. 하하.
―예전 씨름할 때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른 살까지만 운동을 하고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아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그 부분도 달라졌다. 지금은 운동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
―운동과 관계없는 소원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보통 키에, 보통 체격, 직장 생활하며 가정 이루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한다. 키가 너무 커서 보통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아픔이 크다.
최홍만과 인터뷰하는 동안 수많은 팬들이 최홍만 주위를 기웃거리며 사인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싫은 표정 한번 짓지를 않았다. 씨름판을 떠나며 쏟아낸 눈물, 그 이상의 기쁨과 행복이 현재의 삶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종격투기 선수가 한국에서도 ‘먹힌다’는 걸 최홍만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