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는 나태를 낳는다’
황 교수가 책 속에서 고백한 또 다른 인생의 여정을 살펴보자.
‘언젠가 우리 실험실에 아직 미혼인데 푸조라는 멋진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이른바 부잣집 귀한 아들이 연구원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이 친구가 차를 아무 데나 세워 놓기에 몇 차례 야단을 쳤는데 번번이 눈물을 흘렸다. 너무 곱게 자란 것 같은데, 실험실의 고된 일을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결국 그 친구는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1년쯤 지난 뒤에 그가 찾아왔다. 죄송하다고 하면서 다시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지하철 타고 다니겠거든 다시 와도 좋다.”
부자에 대한 무슨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풍요는 나태를 낳는다.’
연구원 1백여 명이 넘는 대식구를 거느린 황 교수. 그런 팀을 일사분란하게 이끌어가는 나름대로의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2004년 2월 이후 세계 각국의 초청이 줄을 잇는다. 일등석을 구해주겠다는 곳에 나는 정중하게 요구한다. 그 돈으로 일반석을 타되, 나에게 쓰려고 한 돈만큼 우리 연구원들을 데려갈 수 있게 해달라고.
나 혼자 가든 팀이 움직이든 우리 여행은 최고의 짠돌이 여행이다. 우리는 언제나 일반석을 타고 갈아타기를 반복해 열다섯 시간이 넘는 비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팀이 움직이면 짐도 많다. 라면과 쌀, 간단한 반찬거리를 모두 싸들고 가기 때문이다. 세명씩 끼어 자는 호텔방에서 식사까지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돈을 아끼면 연구원 한둘쯤은 더 큰 세상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소와 함께하는 황 교수의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도 눈에 띈다.
‘경기도 광주에 서울대학교 실험 농장이 있다. … 현재 이 농장에는 중국 흑룡강 출신의 한 조선족이 소를 돌보고 있다. 이 조선족이 일하는 모습에 나는 그만 반하고 말았다. 그는 내 고향사람처럼, 내 어머니처럼 소를 사랑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침 중국 정부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는데, 당시 중국대사가 “뭔가 돕고 싶다”고 하길래 “이 사람(조선족) 아니면 제 실험을 맡길 사람이 없으니 체류를 합법화시켜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현재 태백 아빠(조선족)는 합법적인 체류자 신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