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은 호남갑부
▲ 정몽헌 회장 장례식 때 큰딸 지이씨, 작은딸 영이씨, 막내 영선씨, 현 회장(왼쪽부터). | ||
현 회장의 아버지는 뒷날 현대상선에 합병된 신한해운의 현영원 회장이다. 현영원 회장은 현대상선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호남의 거부인 현준호씨의 장남. 현준호씨는 20세기 초 호남 최대 갑부로 통하던 현기봉씨의 장남이다. 현기봉씨는 광주 농공은행과 우리나라의 최초 보험사로 알려진 조선생명을 설립했고, 현준호씨는 호남은행을 설립했다.
재미있는 점은 현준호씨가 호남은행의 초대은행장으로 직접 영입한 김신석씨와의 관계. 김신석씨는 젊은 나이에 식산은행(현 산업은행) 두치(총재)를 지내는 등 식민지 시대에 조선의 영재로 꼽혔던 인물이다.
김신석씨는 아들과 딸 하나씩을 뒀는데, 이중 딸이 김윤덕씨로 홍석현 주미대사(전 중앙일보 회장)의 어머니다. 영남 출신인 김신석씨가 호남은행장으로 가는 바람에 김윤덕씨도 전남고녀를 나오는 등 호남쪽에 연고를 두게 됐다.
현영원 회장은 김신석씨의 아들인 김홍준씨 가문과 절친한 관계로 현씨 가문과 홍 대사의 외가는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사이. 때문에 정몽헌 회장의 빈소에 김윤덕씨의 사위 집안인 삼성 이재용 상무 등이 찾아가 조문을 표하기도 했다.
현정은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씨쪽도 재계에 잘 알려진 가문이다.
용문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문희씨는 고 김용주 전방그룹 창업주의 장녀이다. 김문희 이사장의 남동생으로 김창성 한국경영자총협회장(전방 명예회장),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있다. 김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을 나와 80년대에 걸스카우트연맹 총재를 지내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이런 인연으로 현정은 회장도 걸스카우트 연맹 활동을 했고, 지금도 걸스카우트연맹 중앙본부 이사이기도 했다.
현영원 회장은 김문희 이사장과의 사이에 딸만 넷을 뒀고, 현정은 회장은 둘째 딸이다. 55년생인 현 회장은 경기여중·고를 나온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었고 유복한 집안 환경 덕에 어려움을 모르고 컸다. 월반을 거듭한 끝에 그는 17세에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현영원 회장의 둘째 딸 ‘현정은양’과 정주영 회장의 다섯째 아들 ‘정몽헌군’의 혼사는 76년 7월에 있었다. 반은 중매.
75년 당시 신한해운 사장이던 현영원 회장이 딸을 대동하고 울산 현대중공업의 선박 명명식에 참석했다가 정주영 회장이 정은씨를 보고 며느리감으로 낙점한 것이다. 당시 정몽헌 회장은 군복무중이었다. 결혼 뒤에도 대학원(이화여대)에서 학업을 계속한 현 회장은 첫딸 지이씨를 얻은 뒤 몽헌 회장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페어리 디킨슨대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현 회장의 사회 생활은 여기까지였다. 귀국 뒤 어머니를 도와 걸스카우트연맹 활동을 폈지만 결코 드러나지 않았다. 남편 정몽헌 회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던 2003년 8월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그는 현대호의 조타수로 투입돼 남편보다 더한 강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경영권 다툼의 당사자였던 시숙부 정상영 KCC 명예회장을 빼고 나머지 정씨 일가들, 특히 몽자 돌림의 시아주버니들은 경영권 다툼에서 중립으로 일관했지만 현정은 회장에게 타격을 입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현대가의 사실상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뜬 뒤 “회사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지만 유가족은 죽는 날까지 챙기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몽자 돌림 형제들의 중립이 사실상 현 회장의 수성을 도운 셈이다.
현 회장의 자녀는 세 명. 첫째 정지이씨는 서울대 고고미술학과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졸업 뒤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던 그에게도 별안간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은 영향을 미쳐, 지난해 1월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기업을 알려면 재정부서에서 일을 배워야 한다는 현 회장의 뜻을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둘째 딸 영이씨는 고교 1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나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중이다.
아버지 장례식 때 고3 수험생 신분이던 외아들이자 막내인 영선씨는 지방의 모대학에 적을 뒀지만 군 복무를 위해 현재 휴학중이다. 제대하는 대로 바로 유학에 오를 예정이라고. 영선씨는 물론 현 회장의 자녀들은 겉모습만 보고는 재벌가 자제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소탈하고 예의 바르다는 말을 듣고 있다. 현 회장도 회장직에 오르기 전에는 또래 학부형들이나 친구 모임에서 재벌가 며느리답지 않게 소탈하다는 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