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 물리는 대선 배틀 막 올랐다
▲ (왼쪽부터) 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 ||
하지만 범여권의 바람대로 대통합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과 통합신당이 27일 합당해 대통합파들과 각을 세우고 있다. 대선주자 중심의 대통합도 아직 오리무중이다. 범여권 빅3로 자리 잡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 이해찬 전 총리, 정동영 전 의장도 10%를 넘지 못하고 있는 판에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김두관 전 장관, 신기남 의원, 김원웅 의원 등 우후죽순으로 대선 도전에 나선 친노 후보군들까지 한다면 범여권의 주자는 20여 명에 이를 정도다.
아직까지 각 주자들은 몸을 낮추며 앞으로 닥치게 될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양상이지만 한편에서는 이미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지만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 17일 선진평화연대가 발족한 뒤 손학규 전 지사는 한나라당 탈당 이후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손 전 지사는 대선불출마를 선언한 김근태 전 의장은 물론 정동영 전 의장과도 만나 대통합을 논의하는 등 범여권 통합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손학규 전 지사는 분명 일부 범여권 후보들에게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해 건너온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군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손 전 지사의 운명일 수도 있다. 그동안 손 전 지사가 비교적 범여권 내에서 큰 잡음을 안 내고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한나라당에 쏠린 관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50여 일도 채 남지 않은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고 난 뒤 범여권 후보 가리기 작업이 시작되면 손 전 지사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친노그룹의 대표 주자를 자임하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19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대선 도전 기자회견에서 “수구냉전 세력, 부정부패 세력은 물론, 기회주의자에게도 결코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기회주의자’가 손 전 지사임은 모를 사람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보따리 장사’라는 비아냥을 받은 바 있던 손 전 지사에 대해 친노그룹은 물론 범여권에서도 비판론이 그치지 않고 있다. 손 전 지사 자신의 말대로 ‘(15년간) 한나라당에서 ‘단물’ 다 빼먹고 (대선 후보가) 안 될 것 같으니 나왔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통합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대선을 앞둔 배신이라는 구태를 왜 이해해 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이런 상태로 손 전 지사를 범여권 후보로 내세우면 민주개혁세력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통합민주당의 조순형 의원도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씨가 범여권 후보가 돼 다시 한나라당과 경쟁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손 전 지사는 아직 이런 비난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의 비난에 대해서도 “그런 말을 했는가”하고 반문했을 뿐 노골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범여권에서 확실히 자리 잡기 전에는 자제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앞으로 경선에 들어갈 경우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한명숙(왼쪽), 김혁규 | ||
김혁규 의원도 “노무현 대통령은 그 누구에게도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이해찬=친노대표주자론’에 회의를 나타내며 “(이해찬) 후보 캠프에서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자가발전의 징후가 있다”고 폄하했다. 신기남 의원 또한 “총리하신 분들뿐 아니라 우리당 만들 때 정치생명을 걸고 한 사람도 있다”면서 이 전 총리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친노주자들까지도 이 전 총리가 친노 세력의 대표주자로 인식되는 것을 견제하고 있지만 이 전 총리 스스로도 자신에게서 친노주자라는 딱지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27일 전북도당 간담회자리에서 “신문에서 가능한 한 저를 친노로 몰고 싶은 것이다. 내가 바보인가”라며 오히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노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략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정동영 전 의장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양대 축을 이루던 김근태 전 의장이 노 대통령의 비판에 못이겨 낙마한 이후 이제는 혼자 남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민주당 측과 친노그룹 모두로부터 ‘배제 1순위 인물’로 찍힌 바 있다. ‘도로 민주당’이나 ‘도로 열린우리당’이 될 경우 정 전 의장의 자리가 없는 것이다. 최근 손학규 전 지사, 김근태 전 의장을 만나 통합작업에 함께 할 의사를 밝혔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얻을 수 있는 지분도 그리 많지 않다.
정 전 의장은 자신의 텃밭이랄 수 있는 호남표를 두고도 손 전 지사와 싸움을 해야 하는 처지다. 최근 손 전 지사를 포함해 범여권 주자들 모두 호남민심 잡기에 나서고 있어 정 전 의장의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지난 28일 광주지역 민주화운동가인 고 윤한봉 민족미래연구소장의 빈소에는 손학규 전 지사와 정동영 전 의장 모두 방문해 눈길을 끌었고, 한명숙 전 총리와 이해찬 전 총리 역시 이 시점에 광주, 전북 지역을 잇달아 방문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27일 전북도당 사무실에서 가진 당원 간담회 자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권투로 말하면 플라이급이나 라이트급밖에 안 된다.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최소한 미들급은 된다. 한 방이면 그냥 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범여권의 사정이 그리 한가해 보이지 않는다. 범여권의 통합 작업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주자 간 싸움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나라당 빅2의 진흙탕 싸움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되는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지도 모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