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미소 뒤에 ‘소신의 칼’ 번뜩
▲ 지난 24일 노무현 대통령의 총리 지명 직후 한명숙 의원이 기자간담회를 위해 국회 청사로 들어오며 손을 흔들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돌아보면 한명숙 총리지명자는 여권에 지각 변동이 일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내린 ‘단골손님’이었다. 그는 2004년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할 때, 또 신기남 전 의장이 부친의 친일 전력으로 중도하차했을 때도 당의장 후보로 거론됐다. 또한 고건 전 총리의 사퇴 이후 전임 이해찬 총리가 지명될 때까지도 막판까지 유력한 후보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야당에선 이를 두고 여권의 인물난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한 지명자의 능력과 비중이 녹록지 않다는 걸 방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고비의 순간마다 여권이 항상 손에 쥐고 있던 다목적 카드였던 셈이다.
한 지명자에 대한 정가의 대체적인 평은 “모나지 않고 화합과 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장고 끝에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대신 한 지명자를 선택한 이유도 정책의 연속성보다는 정치적 안정에 더 무게를 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실제 그의 홈페이지 캐치프레이즈는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한 지명자의 ‘부드러운 리더십’ 때문에 조직 장악력이나 국정 추진력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 지명자의 지난 여로를 되짚어보면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언뜻 보면 한 지명자의 이력서는 화려할 수도 있다. 정계 입문 전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재야 여성운동의 ‘대모’로 여성민우회 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장 등을 지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 환경보전대책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DJ 정권 시절 1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에는 관운까지 이어졌다.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냈고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환경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여권의 여성인사 중 가장 국정 경험이 많고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한 지명자 스스로 “돌아보면 쉽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는 굴곡 많은 길을 걸어왔다.
한 지명자는 실향민이다. 1944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가 다섯 살 되던 해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온 가족이 월남했다. 정신여중·고 시절에는 작가를 꿈꾸는 문학소녀였으며 이화여대 불문과에 진학, 그런 꿈을 키워갔다. 그러나 대학 3학년 시절 민주화운동의 동지이자 평생의 반려자인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항로는 상상할 수 없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 지명자는 이를 두고 “남편과의 만남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표현했다.
여대생 한명숙은 기독교 학생연합 단체인 ‘경제복지회’에서 만난 남편을 통해 군사독재의 그늘이라는 한국의 현실에 차츰 눈을 떴다. 두 사람은 4년여의 뜨거운 열애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행복한 신혼은 불과 6개월 만에 깨지고 말았다. 남편이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기 때문이었다(71쪽 ‘한명숙과 가족’ 기사 참조). 이때부터 한명숙은 ‘가냘픈 새댁’에서 맹렬한 여성운동가로, 또 평범한 삶에서 고난에 찬 삶으로 뛰어들었다. 74년부터는 ‘크리스찬 아카데미’ 간사로 활동하며 여성의 생존권과 소외계층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다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 지난 총선 때 결과를 지켜보는 한명숙 지명자와 김근태 최고위원, 정동영 의장(왼쪽부터). | ||
여성단체 연합대표로 활동할 당시 그는 ‘쓰레기통에서 통일까지’라는 말로 자신의 일을 설명하기도 했다. 환경과 통일 문제 모두 그가 여성운동가로서 매달렸던 주제였다.
DJ 정부 들어 한 지명자는 일생일대의 전기를 맞는다. 16대 국회 비례대표로 생경하기만 한 정계에 입문한 것이다. 여성운동가로서의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은 그는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냈고 참여정부 출범 후에도 유일하게 장관에 유임될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얼마 뒤 개각에서 그가 환경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 일각에서 “비전문가가 얼마나 장관직을 잘 수행할지 의문이다”라며 ‘태클’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친화력 높은 특유의 리더십으로 환경부를 1등 부처 반열에 올려놓았다. 국무총리실에서 주관한 2003년 정부업무 종합평가에서 환경부는 22개 중앙부처 중 최우수부처로 선정됐고 또 같은 해 한 언론사의 장관리더십 평가에선 그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환경부의 한 직원은 “당시 한 장관의 학습능력이 굉장히 뛰어나 짧은 시간에 업무와 부처를 장악했다”고 전했다. 환경부 장관 재직 시절엔 장관실의 문턱을 낮추고 직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큰누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한다.
한 지명자의 이런 성품은 ‘정적’마저 ‘감복’시켰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시 일산 갑에서 맞붙었던 한나라당 홍사덕 전 의원 측 관계자는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며 “선거 방향을 네거티브가 아닌 포지티브로 틀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지명자를 40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남편 박 교수는 “아마 아내의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도 그가 순수하고 사심이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처음 아내가 정계에 입문할 때 솔직히 탐탁하지 않았다. 반대하진 않았지만 찬성하지도 않았다. 혹 권력에 길들여져 변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정치인이 되어서도 그 진정성이 변하지 않을 사람이다. 이번 총리 지명 때도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어떤 자리를 가더라도 소신과 원칙을 버리지 않을 거라 믿는다. 아내도 스스로 ‘권력이란 한 번 왔다 가는 덧없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지명자 측은 “당내 특정계파나 특정인물과 가깝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한 지명자는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은 중도성향이며 자신의 원칙에 충실할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재야파와 대척점에 서 있는 정동영 당의장이 그를 총리 후보로 노 대통령에게 추천했을 정도로 그의 정치역학적 스탠스는 ‘중립’에 가깝다.
국회의원 중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여성의원들과 친한 사이다.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 민주당 손봉숙 의원, 열린우리당의 이경숙 의원 등과는 이화여대 출신과 여성운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주부로서 생활 속 여성운동을 하다 ‘이론가 한명숙’을 만나 여성운동에 더욱 눈을 떴다고 한다. 김 의원 측은 “한 지명자를 통해 여성운동이론을 배워 ‘여성의 전화’를 만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지명자의 장점 중 하나는 이처럼 인간관계가 두루 원만하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선 그런 점 때문에 국정을 강단 있게 이끌어가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내비친다. 하지만 여당 의원으로서 그가 걸어온 행보를 보면 오히려 ‘소신파’에 가깝다. 2005년 여당이 주도한 과거사법 표결 때는 ‘당초 안보다 내용이 후퇴했다’는 이유로 기권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한 지명자는 지난 24일 총리 지명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갈등의 정치가 빚어낸 국민들의 피로와 상처를 치유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는 ‘행복한 한’(www. happyhan.or.kr)이다. 과연 그는 ‘행복한 총리’가 될 수 있을까.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