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출품 이후에도 수정 또 수정…“SF라기보다 더 큰 존재로 가는 이야기”
7월 15일 개봉하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에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과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패스밴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이 출연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하는 나홍진 감독과의 ‘호프’ 인터뷰 일문일답.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지만 귀에 잘 안 들어온다. 저도 그날 일반관에서 처음 봤는데 시사회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사운드 믹싱 수정하고, CG 팀에 또 (수정하라고) 전화 걸고 그랬다. 호평에 너무 감사하지만 아직은 제가 기분 좋아하거나 안도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사운드 퀄리티도 높여야 하고, 초반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CG 작업도 좀 더 처리해야 한다. 후반 작업할 때 작업실에서 보기엔 안 그랬는데 왜 스크린에선 다르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미치겠다(웃음).”
―‘호프’는 2017년부터 구상해 온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곡성’ 이후 10년 만에 이 작품을 관객들 앞에 선보이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 영화가 어떤 영화냐,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라고 했을 때 전형적인 한국영화의 다양한 장르를 혼재시키는 구조에서 좀 더 장르적으로 축을 옮기고 싶었다. 그리고 장르적인 밀도를 높여 더 충실히 수행해 보고 싶었다. 그 방향성에서 조금 욕심을 부린 게 ‘호프’다. 영화 시작 후 50분 동안 괴물의 정체를 보여주지 않은 채로 그를 쫓아 달리는 남자의 모습만 담은 장면은 초반에 넣기에 굉장히 어려운 설정인데, 이 상황들을 확장시켜서 더 파고들고자 했다. 이런 식으로 각 시퀀스와 챕터들을 잘 만들고 극장 안의 관객들에게 사운드 비주얼을 통해 영화의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느끼는 쾌감을 극대화시키자는 데에 최대치의 목표가 있었다.”
―한국의 무속이나 토속신앙, 기독교를 소재로 다뤘던 ‘곡성’과 달리 이번 작품은 외계인이 등장하는 SF다. 이 소재를 택한 이유가 있나.
“SF 장르라고 소개한 것은 이 작품의 장르를 뭐라고 지칭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칸 국제영화제 때 출품하려고 보니 선택해야 하는 장르 카테고리가 한정돼 있더라. 우리 영화는 여기에 포함되는 장르가 없는데, 액션이라고 하기엔 또 뭐하고…. 그래서 하나만 고르라면 SF가 맞지 않을까 했는데 사실 그것도 아니긴 하다(웃음). ‘곡성’이 아주 토속적인 작은 신들의 연속이었다면 이번에는 더 큰 존재에게 가보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우주라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다.”

“칸에서 공개한 것과 가장 달라진 지점은 음문석 씨가 연기한 양배라는 캐릭터를 좀 더 원상복구한 것이다. 비극의 원흉이자 원인 제공자인 그가 이 작은 마을에서 아주 사소한 일을 저지름으로써 그것이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느냐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크고 비극적인 상황이 악의를 하나도 갖지 않은 사람에게서부터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배경을 1980년대로 정한 것을 두고 예비 관객들의 많은 해석이 있었다. 호랑이나 외계인의 존재가 당시 시대상 ‘독재정권’ 등을 뜻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로 배경을 잡으면 설명할 게 너무 많아져 귀찮아서 그랬다(웃음). ‘호프’가 가진 설정들은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에선 괜찮은데 스마트폰이 생기는 순간부터 지진이 난다. 그래서 차라리 옛날 그 시대, 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데 가장 용이하겠다 싶었다. 촬영할 때도 빈티지 렌즈를 썼는데 이걸 통해 당시의 의상, 미술, 분장 등을 담아낸다면 외계인 디자인과 함께 충돌시킬 때도 더 수월하겠다고 생각했다.”
―외계인의 디자인과 CG에 대해서는 언론시사회 때도 조금 아쉽다는 평이 나왔었다.
“관객분들은 이미 예고편과 광고 기사를 통해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걸 알지만, 영화를 볼 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몰라야 한다. 극 안에서 범석이도 초반 50분 동안 상대가 호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관객들은 ‘외계인이 나오겠지’라는 짐작을 하고 보는 것이라 실제로 봤을 때 ‘저거 외계인 아니잖아’라는 느낌이 이질감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저는 처음 디자인할 때 외계인이라고 한눈에 느끼지 않도록,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게 디자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그다음 스토리들이 정체를 알아가는 이야기가 되는 건데 이미 동네방네 (외계인이라고) 다 알려지는 바람에(웃음).”
―외계인의 CG 문제 가운데 특히 초반 마을 액션 신에 최초로 등장한 하층 계급 외계인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 분)가 가장 이질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바미기르의 액션 신은 대낮에 굉장히 고속으로 격렬한 액션을 만들어야 했다. 이럴 경우 노멀 프레임으로 이 피사체를 비추게 되면 모션 블러(카메라나 사람의 눈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포착할 때 발생하는 잔상이나 번짐 효과)가 엄청나게 걸려서 다 뭉개지게 된다. 또 저희 촬영지가 해남이었는데 바닷가 날씨가 굉장히 변화무쌍해서, 해가 떴다가 졌다가 반복되다 보니 찍어놓은 컷들이 일관성이 없었다. 인간으로는 알 수 없지만 외계인 크리처를 통해 보면 그 지점도 더 강하게 다가오게 된다. 백주대낮 햇볕 아래 외계인을 달리게 한 제 잘못이다(웃음).”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하긴 했는데 왜 그렇게 센지는 모르겠다. 성기의 엄마가 그렇게 낳아서가 아닐까(웃음)? 사실 이 캐릭터에게 주어진 것은 모든 게 과장돼 있다. 악착같이 살고자 하고, 죽지 않으려고 애쓰는 인간의 특성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다. 한마디로 하자면 지구인으로서의 어떤 ‘가오’를 담당한다고 할까? 그런 걸 과장하고 싶었다.”
―범석의 마을 액션 신도 그렇지만 성기의 숲 속 전투 신은 ‘호프’의 가장 강력한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좁은 공간에서 말을 탄 채 쫓고 쫓기는 추격 액션을 벌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촬영 당시 상황은 어땠나.
“제일 큰 문제가 숲 속에서 어떻게 말을 빨리 달리게 하고, 그걸 어떻게 카메라로 빨리 찍을 지였다. 그런 레퍼런스도 없고 그런 경우를 겪어본 사람도 못 봐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촬영 현장 바닥에 돌이나 풀 같은 걸 걷어내서 빨리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전기 바이크를 활용해서 속도감을 높였다. 심지어 배우분이 한 손으로는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든 채 찍기도 했다. 그래도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우리가 빨리 달리는 수밖에 없더라.”
―극 중 지구인과 외계인 두 세력 간의 충돌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중반부와 엔딩 신을 통해 정반대로 뒤바뀌게 된다. 어떤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었다는 목표가 있었나.
“두 세력 간의 커다란 충돌을 영화를 통해 확인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이 이야기의 앞과 뒤를 조금 다르게 느끼시길 바랐다. 또 중간에 코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신을 집어넣었는데, 만일 그 장면에서 웃음이 터진 관객이 있다면 이후에 그것이 죄의식이 되길 바랐다. ‘내가 왜 이걸 보고 웃었을까’라는 감정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엔딩 신은 ‘인간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는 걸 유도하고 싶었다. 정상적이라면 외계인의 입장에서 봐야 하지만 관객들은 인간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그런 요건으로 완성된 것이 엔딩 신이다.”
―영화의 스케일을 보면 이 작품은 확실히 영화관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어려운 영화계에서 이처럼 ‘극장용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영화인에게든 도전일 것 같은데.
“저는 여전히 배울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극장용 영화를 만든다는 것, 그걸 자유자재로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제게 있어서도 너무 먼 나라의 먼 훗날의 이야기다. 아직도 경험할 것도 많고 어려운 것도 많아서 늘 부족함을 느낀다. 최선을 다해서 제가 지금까지 습득해온 것들을 최대한 녹여내 보려고 하는데 제 목적은 영화를 정말로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거다. 그게 언제쯤 될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은 느낀다. 다만 제가 진짜 바라는 그 목표 시점까지 살아 있어야만 뭐라도 하지 않겠나 싶다(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