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잡을 후보 ‘정’이 영순위
▲ 범여권 일각에서 나돌고 있는 손학규-정동영 연대론이 성사될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정동영 전 의장의 저서 출판기념회 모습. | ||
범여권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정리해 범여권 단일 후보를 만들지 지금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제 세력들이 7월 말이나 8월 초 예정대로 대통합신당이 출범할 경우 당장 ‘컷오프(Cut Off·예비 경선)’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후보 난립으로 인한 내부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빅3’와 몇몇 유력후보를 제외한 대다수 예비후보들은 컷오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게임에 돌입했고 유력후보들 또한 대세론을 굳히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분위기다. 범여권 주변에서 예비후보간 짝짓기 등 연대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한여름 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범여권 대통합 움직임 속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대선주자들의 생존형 짝짓기 시나리오를 들여다 봤다.
범여권 예비 대선주자 간 연대론에 불을 지핀 인사는 지난 10일 대선 출정식을 가진 천정배 의원과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다. 범여권 후보군 중 개혁성향이 강한 두 사람은 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새로운 비전과 정책 중심의 사회적 대통합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긴밀히 협조·연대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앞으로 정책 연구와 순회 강연, 토론회 개최 등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등 정치권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전문가그룹 등 각계각층의 개혁인사들과 공조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이른바 ‘개혁연대’에 시동을 걸었다. 회동 다음날(10일) 천 의원은 ‘진보개혁세력 대표주자’를 기치로 대선 출정식을 가졌고 문 사장도 8월 중에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두 사람을 매개로 한 개혁연대가 탄력을 받게 될 경우 복잡한 범여권 대선지형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빅3’를 정점으로 한 짝짓기 시나리오도 나돌고 있다. 특히 범여권 주자 중 지지율 10%대에 근접한 손 전 지사는 연대 1순위로 거론되는 등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근 범여권 주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손 전 지사 때리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손 전 지사의 치솟는 몸값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마의 10%’를 넘어설 경우 수도권과 호남·충청지역을 중심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 의원들이 손 전 지사를 선택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 경우 범여권 대선구도는 ‘손학규 대세론’으로 급격히 쏠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범여권 주자들이 ‘손학규 때리기’에 의기투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손 전 지사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지 않는 한 범여권 대권 레이스는 당분간 손 전 지사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범여권 예비 주자들이 겉으로는 손 전 지사 때리기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심 그와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손 전 지사가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범여권 내 경선은 물론 본선 판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범여권 일각에서 나돌고 있는 ‘손학규-정동영 연대론’이 성사될지 여부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손 전 지사는 범여권 주자 중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고 정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 최대 계파를 이끌었던 수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두 사람 결합에 따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범여권 내에서 중도적인 입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은 현재 제3지대 대통합신당론에 동조하고 있다. 내심으로는 통합 주도권 및 유리한 대권 입지 확보를 위해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며 대권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 전 의장은 이미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 상태고 손 전 지사도 8월 초쯤 출사표를 던지고 범여권 대권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범여권 대통합 작업에는 상호 협력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도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대혈투를 벌이게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 전 의장과 김혁규 의원은 영호남 화합 카드라는 점에서 이상적인 연대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다. 전북 출신인 정 전 의장은 호남권에서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경남도지사를 네 번(관선 포함)이나 역임한 김 의원은 한나라당의 텃밭인 PK(부산 경남) 지역에서 그나마 득표력을 인정받고 있는 몇 안 되는 범여권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정동영-김혁규 연대론’은 한국정치의 뿌리 깊은 병폐인 지역갈등 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대국민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조합이라는 점이 최대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 전 의장과 김 의원이 각각 DJ(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도 두 사람 간의 연대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할 경우 DJ와 노 대통령의 대권 복심 논란도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는 민주화·개혁 세력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은 대표적인 재야 운동권 출신 정치인으로 DJ정부와 현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히고 있다. DJ와 노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특히 한 전 총리는 오래전부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 입지를 구축해 왔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경선 결과에 따라 맞춤형 카드로 활용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한 전 총리는 “한나라당 후보가 누가 되든 맞설 자신이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가 후보가 되면 대항마가 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현 정부에서 총리를 역임하는 등 친노주자라는 이미지가 강해 두 사람의 연대가 자칫 친노세력 결집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범여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유시민·김두관 전 장관 조합은 친노직계 연대라는 점에서 친노그룹 내에서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친노그룹 중 강경 소장파 리더격인 두 사람은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김 전 장관이 각각 ‘노의 남자’와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정치성향을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범여권 대통합론과 관련해 두 사람은 “친노진영을 배제한 대통합은 있을 수 없다”며 조건부 열린우리당 사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최초의 이장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로 출사표를 던진 상태고 유 전 장관도 출마 쪽으로 마음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은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등 친노주자들이 대통합신당에 합류하더라도 끝까지 열린우리당에 남아 당내 경선을 통한 대선후보를 만들어 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김 전 장관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경선 흥행을 주도하면서 친노세력 재결집을 명분으로 단일대오를 구축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범여권 대권지형은 이러한 주자들 간 짝짓기를 거쳐 몇몇 그룹으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통합이 이루어질 경우 이러한 그룹들이 서로 경쟁하며 당내 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만들어 낼 것이며 그 경선에서 이러한 짝짓기는 매우 유용한 합종연횡이 될 전망이다. 더구나 통합이 어려워질 경우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한 짝짓기가 더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