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 이재만 ‘메신저’ 정호성 ‘보디가드’ 안봉근…‘순장’ 대신 ‘전격하차’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문고리 3인방’의 맏형 격으로 알려졌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경선에서 4인방을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진 정윤회 씨 정체가 논란이 되면서 이들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동팀’ ‘논현동팀’ 등으로 불렸던 비선 라인과 박 대통령 간 연결고리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선 논란은 오히려 4인방의 입지를 굳혔다.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2008년 ‘총선 학살’ 등을 거치며 여러 ‘친박’ 의원들이 떠나가는 동안 4인방은 박 대통령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2008년부터 2012년 대선 캠프까지 4인방 업무는 철저하게 분담돼 있었다. 2012년 대선 당시 이 전 비서관(당시 보좌관)은 ‘정책’을, 정 전 비서관(당시 비서관)은 ‘메시지’를, 안 전 비서관(당시 비서관)은 ‘수행’을, 고 이춘상 보좌관은 ‘홍보’를 담당했다.
정윤회 씨로부터 남다른 신뢰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재만 전 비서관은 1966년 생으로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구로고를 졸업했으며 한양대 경양학과에서 학부 및 석·박사 학위를 땄다. 경영학 박사라는 경력을 살려 박 대통령의 정책적인 면을 주도했다. 박 대통령과 교수 등 자문 그룹을 연결하는 역할도 맡았다.
이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 수첩 메모 내용을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첩엔 인사를 비롯해 정책, 민원 등이 적혀 있는데 이 전 비서관이 이를 박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아 실현성 여부를 검토하거나 연구를 맡긴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 전 비서관이 청와대 ‘집사’격인 총무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인사위원회에 포함됐던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정무와 메시지 분야를 총괄했던 정호성 전 비서관은 1969년 생으로 서울 출신이다. 경기고와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 대통령 소통 창구인 만큼 그야말로 ‘복심’으로 통한다. 정 전 비서관은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수락 연설문, 2012년 대선 경선 때의 출마 선언문 등 박 대통령의 주요 연설을 맡았다. 대선 국면에서는 정무 분야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인수위원회 구성과 내각 구성에도 관여했다.
수행 전반 업무를 맡았던 안봉근 전 비서관은 1966년생으로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안 전 비서관은 경산 진량고와 대구대를 나왔다. 안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함께 일하기 전엔 쌍용그룹 창업자 김성곤 전 명예회장의 아들 김석원 회장(신한국당 전 국회의원)이 1996년 당선됐을 당시 보좌진으로 활동했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 휴대폰과 핸드폰을 안 비서관에게 맡겼을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정치권 고위 관계자들도 박 대통령과 접촉이 잘 안될 때 안 전 비서관을 찾을 정도였다. 때문에 그만큼 박 대통령 사생활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참모다. 박 대통령과 항상 함께 다녀 ‘보디가드’ ‘안 부장’이란 별칭으로 통했다. 안 전 비서관은 청와대에 들어와서도 홍보수석실로 발령 나기 전까진 박 대통령 출·퇴근 때마다 항상 동행했다.
고 이춘상 보좌관은 홍보 전반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대선 기간이었던 2012년 12월 2일 강원 홍천군에서 유세차 이동 중 승합차가 전복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박 대통령은 유세활동을 접고 직접 조문을 갈 정도로 그를 아꼈다고 전해진다.
고 이 보좌관 이름은 최근 다시 언론에 오르내렸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국정 농단 핵심 물증인 태블릿PC를 최 씨에게 넘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김한수 청와대 행정관이 “2012년 대선 당시 고 이 보좌관에게 태블릿PC를 전달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믿었던 사람이 다른 행동을 할 때 살면서 허무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한 번 신뢰를 보인 사람에게는 끝까지 기회를 주는 스타일이다. 박 대통령이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한 3인방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추측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3인방의 시대는 ‘최순실 게이트’로 막을 내렸다. 박 대통령은 10월 28일 3인방을 포함한 대통령비서실 소속 수석 비서관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사표가 수리된 10월 30일 검찰은 3인방 가운데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다음 날엔 출국 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어 검찰은 11월 3일 정 전 비서관을 긴급 체포했다. 정 전 비서관은 최 씨에게 박 대통령 연설문과 국정 자료 등을 사전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다른 핵심 참모는? ‘대통령의 펜’ 조인근 ‘빨간펜’에 휘둘렸나 ‘문고리 3인방’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 곁을 보좌했던 핵심 참모들이 있다. 우선 ‘최순실 게이트’로 검찰 조사를 받은 조인근 전 연설기록비서관이다. 조 전 비서관은 최순실 씨에게 박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2013년 2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맡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9월엔 한국증권금융 감사로 선임됐다. 조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오래된 측근 보좌진 그룹 가운데 한 명이다. 조 전 비서관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서강대를 졸업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 등과 함께 박 대통령의 호남 인맥으로 꼽힌다. 2004년 ‘천막 당사’ 시절 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을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조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역할도 ‘메시지’ 분야였다. 조 전 비서관의 글쓰기 실력은 정치권 안팎에서 정평이 나 있다. 실제 2007년 대선 경선 때 이명박 당시 후보가 조 전 비서관을 영입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전해진다. 남호균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행정관도 박 대통령 측근으로 꼽힌다. 남 전 행정관은 2013년 3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남 전 행정관은 심인고와 중앙대를 졸업했다. 남 전 행정관은 2012년 대선 당시 공보팀장으로 활약했다.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까진 ‘친박’인 이학재 의원 보좌진으로 근무했다. 2016년 4·13 총선에서 대구 달서병에 출사표를 냈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백기승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 국정홍보비서관은 2013년부터 2014년 5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2014년 9월부턴 한국인터넷진흥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백 전 비서관은 1957년생으로 경동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백 전 비서관은 20년 이상 대우그룹과 김우중 전 회장의 홍보·공보 업무를 맡아 형성한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그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의 공보·홍보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백 전 비서관은 2006년 경선에 합류하면서 박 대통령을 만났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홍보기획단 단장으로 핵심적 역할을 맡았고 경선 패배 이후에도 5년간 물밑에서 대선준비를 지원해왔다. 신동철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도 박 대통령의 숨은 ‘책사’로 꼽힌다. 신 전 비서관은 2014년 6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신 전 비서관은 1961년생으로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청구고를 졸업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유타주립대, 아이다호주립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신 전 비서관은 국내 여론조사 시장에 ‘전화’를 처음으로 도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여론조사 전문가’로 통한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신 전 비서관은 선대위 여론조사단장을 맡아 여론 추이를 살피고 대응책을 짜는 역할을 맡았다. ‘문고리 십상시’로 통하는 음종환 전 홍보수석실 행정관은 박 대통령 ‘입’으로 불리는 이정현 대표의 보좌진 출신이다. 음 전 행정관은 서울 출신으로 동북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DJ계 인사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치판에 입문했다고 알려져 있다. 2012년 대선 때 권영세 전 새누리당 의원(당시 선대위 종합상황실장)과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당시 조직총괄본부장)을 도와 전략 등 세부적인 실무 일을 도맡았다. 정치권에선 네가티브 대응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음 전 비서관은 ‘KY(김무성․유승민) 수첩 파동’으로 물러나게 된다. 정호성 전 비서관과는 고려대 88학번 동기로 알려졌다. 음 전 행정관 정 전 비서관은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엔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와대 내에서는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