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하야하면 더 귀찮은 지도자 올 것”
니혼테레비의 ‘미야네야’에서는 손석희 앵커를 사회 정의가 강한 저널리스트로 “한국의 이케가미 아키라”라고 집중 조명했다. 이케가미 아키라는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이다.
일본에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가토 다쓰야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을 2014년 8월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한국 검찰에 기소됐던 인물. 논란을 빚은 칼럼에는 “박 대통령이 소재가 불분명했던 7시간 동안 최순실 전 남편인 정윤회와 만났다는 소문이 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결국 가토는 출국 금지 상태에서 1년 4개월간 재판을 받아야만 했고, 무죄 판결이 나서야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가 아무래도 한국에 좋은 감정일 리가 없다. 이후 가토는 “한국은 언론의 자유가 태연하게 부정된다”며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 11월 16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외국특파원협회 기자회견에서는 이런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터부(인간관계)를 건드린 것이 청와대의 분노를 사, 기소를 당한 것이라 생각한다.”
가토의 주장에 따르면 “2014년 봄에 이미 한국의 식자층 사이에서 박 대통령을 둘러싼 기묘한 인맥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토는 “당시 취재원들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1970년대 중반 이후 아주 위험한 인맥, 종교 등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내게 이야기해준 사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박 대통령을 “엔진을 잃은 배”에 비유하며 “누구에게 매달려야 좋을지 몰라 표류하는 상황이다. 마지막은 침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박근혜 정권의 허점을 짚어 관심을 모았다. 신문은 “박 대통령은 2013년 2월 취임식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가장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켜보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참괴 그 자체일 것”이라면서 “리더십은 땅에 떨어졌다.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더라도 박 대통령에겐 이제 리더십을 발휘할 정통성이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중도 성향인 <마이니치신문>도 “박근혜 대통령, 국정 파행의 책임이 무겁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신문은 “박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으로 한국 국정 침체가 장기화될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이 처한 상황은 여유롭지 않다. 하루빨리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문은 “북한의 핵문제는 위협적이며, 미국의 새로운 백악관 주인이 될 트럼프의 동북아정책에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많은 한국인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와중에, 박 대통령은 오직 대변인을 통해 ‘대결’ 자세를 취할 뿐이다. 지도자로서 혼란을 수습할 정치적 책임이 있는 만큼, 스스로 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진보 매체로 알려진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기사도 눈길을 끈다. 신문은 “박 대통령은 자국의 검찰을 왜 믿지 못하는가. 반론이 있다면 조사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운을 떼며 “앞서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했을 때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라고 했다.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건 국민의 불신을 부추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인쇄 매체와 달리 일본 TV방송에서는 JTBC 보도국 손석희 앵커에 대한 관심도 상당한 편이다. 일례로 니혼테레비의 정보프로그램 ‘미야네야’에서는 손석희 앵커를 사회 정의가 강한 저널리스트로 소개, “한국의 이케가미 아키라로 불리는 인물”이라고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이케가미 아키라는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아울러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126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야네야’의 진행자 미야네 세이지는 “한국인의 민주주의가 성숙하다”는 발언을 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본 트위터에서도 “한국 민주주의가 부럽다”는 목소리가 다수 흘러나왔다. 반면 “100만 명 가까이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하는 모습이 낯설고, 기이하게 비쳐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주간포스트>는 “한국인에게는 ‘한(恨)’이라는 독특한 정서가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이 한국 국민의 한을 폭발시킨 것 같다”는 해석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반응들 가운데, 행여 이번 사태로 자국에게 불똥이 튈까 고심하는 모습이 일본 언론의 ‘민낯’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대중지 <주간겐다이>의 곤도 다이스케 편집차장은 최근호에서 “박근혜 정부의 종언. 일본 정계는 빨리 다음 대통령을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아베 정부 측은 사드 배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한중일 정상회담 등도 차질을 빚게 됐다. 일본 정계 쪽에선 “이번 사건이 한마디로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곤도 편집차장은 “지금부터 일본은 위기를 맞은 박근혜 정권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아닌, 다음 한국 대통령과 어떻게 교류할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차기 한국 대통령 후보를 놓고 봤을 때 친일 대통령을 바라기는 힘들다. 어쩌면 한일 간의 안보 협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표적인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도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예정한 박 대통령의 12월 방일이 불투명해졌다”며 “한일 관계 개선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우익지 <주간신조>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일본에 더욱 ‘귀찮은’ 지도자가 앉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따라서 “위안부 소녀상 이전이 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며 “강 건너 불구경만 하다가는 이쪽도 중화상을 입을 수 있다”고 적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