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비었어도 팍팍…기부 아닌 투자였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18일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신년 업무보고 후 외부에 마련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서명운동 부스를 찾아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두산은 그룹 재무 상태가 악화돼 유동성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에 거액을 출자했다. 특히 무리한 인력 구조조정으로 그룹 안팎으로 말썽을 빚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박근혜정부의 청년희망재단,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수십억 원을 기부했다. 그럼에도 두산은 정·재계가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크게 거론되지 않고 있다.
두산은 또 서울시내 면세점 의혹과 관련해서도 비교적 관심 밖에 있다. 지난해 11월 두산이 서울시내 신규면세사업자로 선정된 직후부터 업계에서 ‘수상한 일’로 여겼음에도 비리 의혹은 대부분 롯데나 SK에 쏠려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두산그룹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재계 한 인사는 “안 그래도 두산이 내부 사정이나 사이즈에 맞지 않은 거액을 출자·기부한 것에 대해 말이 적지 않았다”며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선 두산그룹과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박근혜정부에 가장 협조적인 기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늘 동행했다. 공식석상에서 ‘창조경제, 규제완화’ 등 박근혜정부의 경제 키워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2014년 6월 13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경제5단체장 및 관계부처 장관과 조찬간담회에서 “창업환경 개선을 통해 창조경제를 더욱 활성화시켜 달라”고 말했다. 또 2015년 12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전국 상공회의소회장단 초청 오찬 행사’에서 “대통령께서는 순방을 다녀와도 돌아오는 순간부터 하는 일, 보내는 시간들이 어느 하나 경제 살리기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온 힘을 다해서 경제 살리기에 몰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박 회장과 두산은 박근혜정부의 뜻에 맞는 기부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 200억 원을 출자했다. 이 금액은 삼성(400억), 현대차(200억), SK(138억), LG(200억), 4대 기업과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면세사업 진출 선언과 함께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을 설립, 박용만 회장의 사재인 ㈜두산 주식 9만 4000주(100억 원 상당)와 그룹 차원에서 현금 100억 원을 기부했다. 한 달 뒤 11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설립을 지시한 ‘청년희망재단’에 30억 원을 기부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도 두산그룹은 11억 원을 기부했다. 이 정도만 해도 얼추 440억 원이 넘는다. 이전 정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두산의 기부 규모다.
특히 지난해 두산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내부적으로 험난한 시간을 보낸 탓에 이 같은 출자·기부활동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더욱이 수차례에 걸친 인력 구조조정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구조조정으로 두산인프라코어를 떠난 임직원은 1500여 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두산은 박근혜정부와 뜻을 같이 하는 출자·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기업이 힘든 상황에서도 R&D(연구개발) 투자나 사회공헌활동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두산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이 결국 지난해 11월 ‘서울시내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을 이끌어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면세사업 경험이 없는 두산이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야말로 수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면세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재 두산면세점의 실적이 좋지 않은 데는 백화점과 면세업 경험이 없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두산면세점의 일매출은 6억 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서울시내 면세점 중 실적이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이 밀어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일매출이 20억 원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확연히 떨어지는 수치다. 두산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을 주 고객군으로 보고 있는데, 관광객 수가 줄고 있다”며 “사실 3대 명품이 입점되지 않은 탓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두산이 설립한 동대문미래창조재단(미래창조재단)의 김동호 초대 이사장 인선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된다. 김동호 이사장은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문화융성위) 1기 위원장 출신이다. 문화융성위는 최순실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서 구속기소된 차은택 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두산이 서울시내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정권에 줄을 대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두산그룹 다른 관계자는 “재단 설립과 이사장 선임은 지역상생을 위해 추진한 것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미래창조재단 관계자는 “신망이 두터운 문화계 인사를 모셔왔을 뿐”이라며 “최순실·차은택 씨와 연관짓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와 면세점 관련 수사가 확대되면서 두산을 둘러싼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면세점 특허를 두고 두산그룹에 대한 조사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뇌관이 박용만 회장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