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잘 아는 만큼 현장과 소통 자신”
48세의 송구홍 신임 LG 트윈스 단장은 선수와 지도자, 프런트를 거쳐 단장까지 오른 최초의 인물이다.
지금까지 두산과 SK를 제외한 KBO리그 팀들은 대부분 모기업의 인사가 야구단 사장(NC 다이노스 이태일 대표는 야구기자 출신)이나 단장을 맡았다. 특히 LG와 한화는 기업 관계자가 야구단에 파견된 형태의 인사가 주를 이뤘다. 지난 6년간 LG 단장을 맡았던 백순길 전 단장은 LG전자 상무 출신이고 백 전 단장의 전임자였던 이영환 전 단장도 LG전자 출신이었다. 그런 계보에 48세의 송구홍 신임 단장의 등장은 파격, 그 자체였다.
송 단장은 1991년 LG 선수로 입단해 9시즌 동안 KBO 리그를 누볐다. 1992년엔 3루수로 뛰면서 커리어 하이인 20홈런을 기록했다. 2002년 12월 LG 2군 수비코치를 시작으로 2012년까지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2013년, 프런트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해부터 육성, 스카우트, 전력 분석 등 선수단 운영을 책임지는 운영총괄 팀장을 맡았다. 한 팀에서 선수와 지도자, 프런트를 거쳐 단장까지 오른 최초의 인물이다.
송 단장은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보직을 맡아 부담이 크다”는 소감을 먼저 전했다.
“현장에서 프런트로 일해 왔지만 이렇게 단장을 맡게 될 줄 몰랐다. 앞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보단 갖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리려 한다. 이미 선수 출신으로 성공한 단장의 길을 가고 계신 두 분이 있지 않나. SK 민경삼, 두산 김태룡 단장이 앞에서 길을 잘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는 중이다. LG 운영팀장으로 일하면서 두 분을 벤치마킹한 부분도 많다.”
어떤 부분을 벤치마킹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송 단장은 “뛰어난 현장 감각”이라고 대답했다.
“현장 감각을 바탕으로 선수단 구성을 잘 하시더라. 사실 야구단은 인적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 인적 구성과 선수단 분위기가 시즌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고 보는데 김태룡, 민경삼 단장은 그 부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 갔다.”
송 단장은 단기적 플랜과 중장기적 플랜을 나눠 구성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팀을 리빌딩하느냐, 아니면 KIA처럼 투자(선수 수급)해서 성적을 내는 걸 목표로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 중이라는 것.
“라이벌 팀이자 우승팀인 두산을 넘어서는 게 우리의 목표인데 그러기 위해서 선수단 목표를 단기로 둘 것이냐 아니면 중장기 목표로 끌고 갈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주먹구구식 운영이 아니라 유망주들에게 시간을 주고 성장시키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FA 선수를 영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송 단장은 1991년 입단 후 2002년까지 LG의 황금기를 경험했다. 그러나 은퇴 후 지도자와 프런트로 있었던 시기는 암흑기의 연속이었다. LG의 부흥과 쇠락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 중 한 명이다.
“우리가 왜 황금기였는지, 왜 암흑기였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있음에도 단기적인 플랜에 치중하는 바람에 팀의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다. 내가 모든 걸 다 바꿀 순 없겠지만 단장으로 있는 동안 팀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준비하고 실행해나가는 일들을 만들고 싶다.”
박종훈 한화 이글스 신임 단장은 현장과 소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단장이 취임하면서 부각된 부분은 김성근 감독과의 관계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김 감독에게 한화는 1군 선수단만 지휘할 수 있도록 선 긋기에 나섰고, 과거 OB 시절 김성근 감독과 사제지간이었던 박 단장이 총대를 메고 앞장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박 단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과의 관계에 부담스런 시선이 존재하는 걸 시인했다.
“프런트를 대표하는 내가 현장을 대표하는 감독님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다는 건 팀을 위해 절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어떤 면에선 언론에서 그렇게 몰고 갔던 부분도 있었다. 감독님도, 또 나도 모두 한화가 강팀이 되길 바란다. 그걸 잊지 않을 것이다.”
박 단장은 이전에 비해 권한이 대폭 축소된 김 감독으로선 섭섭한 마음이 훨씬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입지가 좁아지는 걸 좋아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감독님의 입지를 줄이려 하는 것보단 선수단을 이끄는 데 좀 더 집중해달라는 의미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나 또한 감독님을 잘 모셔서 우리 팀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 단장도 LG 감독 시절 백순길 전 단장과의 관계가 불편했다는 소문이 많았다. 결국 2011년 10월, 자진 사퇴 형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는데 박 단장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백 단장은 오히려 날 많이 도와준 분이다. 선수단을 위해 구단주에게 직언하며 팀을 챙겼을 정도다. 백 단장이 날 어렵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나오면서도 백 단장과는 서로 많이 아쉬워했고, 백 단장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박 단장은 지난 11월 11일, 마무리 캠프가 한창인 일본 미야자키에서 김 감독과 만난 적이 있었다. 단장 취임 후 감독과 첫 인사를 나눈 셈이었다. 감독과 어떤 교감을 나눴느냐는 질문에 박 단장은 “완벽하게 서로의 생각을 공감하진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래도 프런트가 추구하는 방향을 잘 설명 드리고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나와 감독님은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 관계라는 걸 분명히 했다. 감독님도 그 부분은 잘 이해해주셨다.”
송구홍, 박종훈 신임 단장은 선수 출신 단장이란 타이틀에 책임감과 부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송 단장의 설명이다.
“만약 현장에서 느끼기에 프런트의 움직임을 월권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일을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현장이 필요한 부분에 교감하고 소통한다고 믿는다면 팀 운영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난 현장을 존중하면서 가고 싶다. 현장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구단의 방향을 잡아갈 예정이다. 아마 현장에서도 그걸 잘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흥미로운 부분은 양상문 감독과 송구홍 단장이 2년간 투수 코치와 수비 코치로 함께 지도자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둘은 LG 코치를 맡아 신뢰와 교감을 쌓았고, 송 단장이 운영팀을 맡을 때도 그 관계를 잘 이어간 사이다.
박종훈 단장은 현장 출신 프런트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야구를 잘 알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해야 신이 난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프런트에서 일하다 보면 현장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 깊이 책임감을 느끼는 중이다.”
한편 ‘선출’ 단장의 선배격인 두산 김태룡 단장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현장 출신이 환영받을 때도 있지만 야구를 아는 사람이 프런트를 맡았다고 해서 비난 받은 적도 많았다. ‘야구를 아는 놈이 더 냉정하다’ ‘야구를 했다는 사람이 왜 그런 거야?’ 등 어려운 일이 처할 때마다 현장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중간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야만 했다. 난 야구단 입사 후 매니저부터 시작해서 단장까지 오른 사람이다. 프런트의 역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장이든 구단에서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분란을 키우지 말고 현장과 프런트의 중간 입장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노력했다.”
김 단장은 자신이 종종 현장을 향해 월권행위를 벌인다는 소문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우리 코치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시즌 동안 내가 코치방에 몇 번을 찾아갔느냐’라고. 선수단이 잘 돌아가는데 내가 코치들을 찾을 이유가 뭐가 있겠나. 송일수 전 감독과 마찰이 빚어졌을 때를 제외하곤 가급적이면 현장에 간섭하지 않으려 했다.”
김 단장은 두산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일군 배경에는 김태형 감독과의 절묘한 호흡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태형 감독이 OB 입단했을 때 내가 야구단에 처음 입사한 상황이었다. 김 감독이 주장을 맡았을 땐 내가 매니저를 했고, 코치였을 땐 운영팀장을 맡았다. 오랜 시간 베어스에서 함께 있다 보니 눈빛만 봐도 통하는 상황이다. 그런 부분이 신뢰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프런트와 현장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 새로 선임된 박종훈, 송구홍 후배 단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단장은 “단장은 참는 자리다. 자기 성질대로 운영하면 단장 자리에서 오래 있을 수 없다”는 얘길 전했다. 그동안 수차례 마음속으로 사표도 써봤고,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김 단장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남긴 셈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