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소→기소’ 변경 지시 이유 뭘까
김 서장은 지난 4월 부하직원인 A 경사에게 폭언을 하는가 하면 파출소로 전출시키기까지 했다. A 경사의 상관인 경제팀장 역시 팀원급으로 인사조치됐다. 이러한 부당한 인사조치의 원인은 A 경사가 수사를 맡았던 사건의 의견 충돌에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월 A 경사는 용산구 한남뉴타운 5구역의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고소 사건을 담당했다.
당시 재개발조합은 사업 시행 등을 도운 용역업체를 소송 사기 혐의로 용산경찰서에 고소했다. 한남5구역은 12년 전 재개발사업 부지로 지정됐지만 조합과 용역업체 등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용역업체는 지난 2009년 조합과 계약을 맺었고 재개발 사업에서 주민설명회 홍보, 추진위원장 등 임원 선출 업무 지원, 동의서 수령 등의 지원을 맡게 됐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2010년 공공관리제를 도입하면서 서울시에서 고시한 업체 가운데 또다른 업체가 새로운 업체로 선정됐다. 서울시에서는 정비사업에서 나타나는 조합 비리 등을 방지하기 위한 공공관리제를 도입하게 된 것. 이때 원래의 용역업체는 조합과의 계약이 해약되자 조합을 상대로 계약해지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조합은 패소해 해지위약금 53억 원과 변제 시까지 지연이자(매월 이자 1억여 원 추정)를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받았다. 2심에서는 해당 소송이 기각됐으며,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태다.
또 업체 측에서는 당시 조합설립추진위원을 지낸 이 아무개 씨와 추진위원장을 지낸 이 아무개 씨, 이사를 지낸 이 아무개 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조합설립추진위원 이 씨는 영장실질심사 출두 하루 전날 아내 강 아무개 씨와 함께 동반 자살했다. 이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추진위원장 이 씨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에 벌금 3000만 원과 추징금 1000만 원을, 이사 이 씨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에 벌금과 추징금 각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한남5구역 재개발사업 조합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지난 4월 조합은 패소했던 소송이 진행될 당시 용역업체가 허위 세금계산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주장하며 용산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이를 담당했던 A 경사는 용역업체가 법원에 제출한 세금계산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김 서장은 A 경사에게 이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라고 지시했고 이를 따르지 않자 따로 불러 욕설을 하고 부당한 인사조치를 내리게 된 것이다.
용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당시 인사 조치가 있었지만 원래 흔하게 인사가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이번에 그런 일이 있어 강등조치가 됐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며 “서장은 평소에 술을 좋아했고 직원들과 술자리를 즐기시던 분”이라고 말했다. A 경사는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은 A 경사와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경찰청은 정식 감찰에 나서 김 서장이 A 경사에게 기소 의견으로 사건 송치를 지시한 것을 지휘권 남용으로 판단했다. 또 A 경사가 이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이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김 서장이 수사에 관여하지 않고 부하직원에게 사건에 대해 지시를 했다는 점에서 김 서장과 조합 간의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었다. 한때 조합에 몸담았던 이 아무개 씨는 “지금까지 경찰이 불기소 의견을 낸 것이 검찰에서 기소로 바뀐 적은 거의 없다”면서 “불기소를 기소 의견으로 바꾸는 것은 조합에 굉장히 유리한 것이고 서장이 돈을 받았거나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다. 심증은 가는데 아직까지는 물증이 없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관계자는 “당시 조합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경찰 조사를 받았었고, 허위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동안 용역 업무를 했던 업무일지와 돈을 지급했던 은행계좌를 포함해 모든 문서를 제출했다”며 “이를 조사했던 경찰은 ‘자료가 다 말을 해주고 있다. 고소를 한 조합 측이 당초 말했던 내용이 자료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불기소 처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했었다”고 말했다.
또 “이후 조합 측에서 불기소 처분이 난 이후 법원에 재정신청 복원을 신청했지만 기각된 것으로 안다. 당시 조합이 A 경사의 수사가 잘못됐다고 용산서 등에 진정을 넣었다고 들었다”며 “수사관(A 경사)이 ‘검찰이 자꾸 사건을 보내라고 하는데 상관인 팀장이 불기소를 기소로 바꾸고 더 조사를 하라고 해 난감하다’라는 말을 했다. 사건을 넘겨 받은 검사 역시 팀장과 조합 간의 관계를 의심했는데, 이번 경찰청 감찰 소식으로 서장이 팀장 위에서 지시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수사관이 일을 제대로 하고도 좌천이 돼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조합 측에서는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조합 관계자는 “허위로 계산서가 작성됐다는 증거를 다 가지고 있는데 수사관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 수사관을 바꿔 달라고 여러 번 항의를 했다”며 “최근에 서장이 이를 알고 수사관을 전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한편 김 서장은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경무과 대기실로 출근하고 있었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