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이번에는? 직원들 횡령사고가 옥에 티
국내 증권업계 최장수 CEO로서 10연임에 도전하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연합뉴스
유상호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2007년 사장으로 선임된 그는 10년째 한국투자증권 CEO로 재직 중이며 해마다 재신임에 성공하며 9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유 사장이 오랜 기간 CEO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안정적인 경영 성과다. 그는 취임 이후 자산관리(WM)와 투자은행(IB) 부문을 계속 강화해 왔고, 이는 실적 호조로 이어졌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2007년 이후 최대 순이익 2948억 원을 달성했다.
올해 경영 실적도 업계 사정을 감안하면 양호한 편이다. 한국투자증권의 3분기 순이익은 691억 17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비록 매출액(1조 6523억 원)이 1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5.2% 증가한 896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에는 증권가의 화두인 초대형 IB(투자은행)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에 참여한 데 이어 우리은행 지분 4%를 인수했다. 다른 증권사들이 초대형 IB가 되기 위해 인수합병(M&A)에 나선 것과 달리 자본 확충과 신사업으로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지난 8월 금융당국은 자기자본 10조 원 이상의 초대형 IB를 키워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자기자본 기준을 3조 원, 4조 원, 8조 원 등 3단계로 세분화한 뒤 단계별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자기자본이 3조 원을 넘길 경우 우선 신용공여 한도를 늘려주고, 다자간 비상장주식 매매와 중개를 허용해준다. 4조 원 이상이 되면 어음발행과 외국환 업무를 취급할 수 있고, 8조 원을 넘으면 종합투자계좌(IMA)도 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는 방침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3조 3000억 원 수준으로 1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유 사장은 KDB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과 현대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한때 대안으로 하이투자증권 인수 등이 거론됐지만 유 사장은 다방면에 걸친 자본투자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1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4%를 받아 과점주주 대열에 합류했다. 이는 내년 초 출범 예정인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의 지분 54%를 보유한 모기업 한국금융지주와 시너지를 고려한 행보로 해석된다.
증자를 통한 자본확충에도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의 모기업 한국금융지주는 최근 1조 692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는 5조 원에 육박해 초대형 IB 2단계에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앞으로 발행어음과 법인 외국환 업무 등 신규사업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유 사장은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빠르게’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는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 고민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면 즉시 행동에 옮긴다. 그리고 한 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성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그의 경영철학과 실행방식은 한국투자증권의 글로벌화 전략에서 잘 드러난다. 2005년 베트남에 진출한 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한국투자증권은 유 사장이 지휘봉을 잡은 뒤 전략을 수정키로 했다. 그는 수년간 장고 끝에 현지 증권사 인수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2010년 말 당시 70위권 수준이던 베트남 현지 증권사 EPS를 인수해 ‘KIS 베트남’을 설립했다. 그리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투자로 회사를 키워나갔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일요신문 DB
KIS의 호찌민과 하노이 소재 6개 점포 직원은 2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 중 한국 본사에서 파견한 주재원은 손에 꼽힐 정도에 불과하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강한 현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공무원들과 오랜 기간 교분을 쌓으며 베트남 정부와 상호신뢰도 구축했다. 덕분에 한국투자증권은 베트남 금융당국으로부터 외국인투자지분한도 증액 승인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외국인에게 50%가 넘는 지분 획득을 허락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 금융권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한국투자증권은 기존 49%였던 KIS 지분을 92.3%까지 늘리며 경영권을 확실히 다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KIS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설립 5년 만인 지난해 베트남 현지 톱10 안에 드는 대형 증권사로 성장했다. 올해 안에 5위권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또 베트남을 글로벌 IB 비즈니스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현지 IPO 시장 진출과 현지 기업 M&A 자문, 채권중개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 중 KIS보다 뛰어난 실적을 거둔 회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베트남뿐 아니다. 2014년 말에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현지사무소를 열었다. 세계 4위 인구 대국이자 떠오르는 신흥국인 인도네시아를 선점하기 위해 시장조사부터 시작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를 통해 현지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현지 법인 설립이나 현지 증권사 인수 등의 방식으로 제2의 KIS를 키워낸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유 사장의 행보는 업계 최장수 CEO로 손색이 없고, 내년 ‘10연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악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에서는 올해 직원들의 횡령 사고가 두어 차례 있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6월 강서지점의 모 직원이 고객들로부터 받은 투자금 20억 원을 선물옵션 투자로 소진하고 잠적했다가 구속됐다. 또 10월에는 여수지점 직원이 “파생상품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주겠다”며 투자자들을 유인해 자신의 계좌로 50억여 원을 받은 뒤 달아났다가 붙잡혔다.
한국투자증권은 이에 대해 “회사계좌가 아니라 개인통장으로 거래했기 때문에 내부 통제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유 사장의 대기록 수립 여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유 사장이 10번 연임에 성공하며 ‘최장수 CEO’ 기록을 계속 이어갈지는 오는 3월에 결정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