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임서 섞이지 못하고 따로 밥 먹기도”…박지만 지인 “박씨 주도적으로 나서는 성격 못돼”
최순실 검찰 출두 모습. 일요신문DB
최순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과 논현동이었다. 자기 소유 건물이 있던 신사동에서는 사생활을, 삼성동 박근혜 대통령 사저와 가까운 논현동에서는 비선 권력 실세로의 생활을 했다. 모두 반경 2km 안에 최 씨 일가 소유의 건물이 밀집해 있어, 현재는 일명 ‘최순실 타운’이라 불린다.
최순실은 28년 전 사들인 신사동 미승빌딩을 거점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최순실의 사생활 공간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그는 1990년 대 초 이 건물에서 초이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도보로 20여 분 거리에 최순실의 단골 보석가게가, 15분 거리엔 즐겨 다닌 목욕탕이 있다. 대통령의 의상을 만들었던 ‘샘플실’도 미승빌딩 근처다. 최순실이 독일 출국 직전 머물던 청담동 고급 레지던스 피엔폴루스와도 가까운 편이다.
최근 기자가 다시 찾은 이 공간에서 의외로 최순실의 모습을 기억하는 주민이 다소 늘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관련 의혹이 증폭되던 지난 9월~10월 ‘최순실 씨를 본 적 있느냐’ 또는 ‘그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만 답변하던 이들이 이번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불필요한 오해는 사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은 여전했다. 일부는 우스갯소리로 “아직도 보복이 두렵다”고 말했지만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미승빌딩 인근에서 25년 가까이 살았다는 A 씨(58)는 과거 최순실을 종종 봤다고 말했다. 그는 “눈에 띄는 모습은 없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지만 ‘유연 엄마’라고 불렸다.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 주민들 사이에선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며 “가끔 직접 상점에 들러 간단한 물건을 사기도 했는데, 특별히 인근 주민들과 교류는 없었다”고 말했다.
최순실이 가끔 들렀던 피부과에서 근무한 B 씨(36)도 그를 기억했다. B 씨는 최근에서야 최순실인 줄 알게 됐다며 “당시 최 씨가 선생님(의사)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술보다는 인사차 교류했던 것 같다. 선생님이 유난히 깍듯이 대하는 모습을 본 탓인지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고 회상했다. B 씨에 따르면 앞서의 피부과는 지난 2012년 병원을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 현재는 폐업한 상태라 의사는 찾을 수 없었다. B 씨는 또 “2010년 이후로는 최 씨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은 최순실이 각종 건강‧미용 관리를 받았던 차움의원이 설립된 해다.
최순실이 다닌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여성전용 목욕탕을 다녔던 C 씨는 의혹이 제기됐던 ‘팔선녀’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다. 그는 “목욕탕에서 모임을 가지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만 늘 사람 한 명이 따라다니면서 필요한 걸 건네줬다”며 “최 씨가 그를 상당히 까다롭게 대해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신사동이 최순실의 사생활 공간이라면, 논현동은 ‘업무타운’이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 최 씨가 관여한 재단은 물론 정·관계 인사들을 만난 회의 장소도 논현동에 있다. 최순실의 측근들이 세운 법인들도 논현동에 밀집해 있다. 사무실 간 거리가 멀어야 도보 10분 거리다.
최순실이 논현동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4년 말로 보인다. 최 씨는 2014년 11월에 측근 등을 대표로 둔 광고기획사 ‘존앤룩씨앤씨’를 세우며 논현동 시대를 연다. 이 법인은 최순실이 아지트로 삼은 카페 ‘테스타로싸’를 운영한 곳이다. 최순실은 이곳에서 재단 인사들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최순실이 고영태와 함께 설립했던 광고기획회사 고원기획(2014년 7월 설립해 2015년 2월 청산)은 카페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역시 각각 2015년 10월, 2016년 1월 논현동에 사무실을 얻었다. 두 재단은 모두 ‘테스타로싸’와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측근 차은택과 관련된 법인들도 이 카페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 건물들의 관리인이나 최순실과 관계없는 업체 직원들은 모두 인터뷰를 거부했다.
최순실이 속해 있던 ‘청담동 계모임’의 한 관계자는 그가 논현동, 또는 청담동 등에서 만나던 사람들에 대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최 씨는 이 계모임에 2013년부터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최 씨와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면서도 “모임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 씨는 재계보다는 정‧관계 관계자들과 교류가 많았다. 그래서 각종 ‘이권’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 말하자면 치밀한 ‘전략가’에 가까운 편이었다”며 “최 씨가 직접 사람을 찾아 다니진 않고, 그를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곗돈을 타는 날엔 가끔 모임 관계자들이 식사를 함께하는데, 최순실은 말이 별로 없거나 밥을 따로 먹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언론에 최순실이 갑질을 하고 허세를 부린다는 내용이 많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쉽게 말해 사회성이 부족한게 아니냐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전형적인 강남 아줌마’ 스타일은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세월호 7시간’과 관련, 이날 대통령의 머리 손질을 했던 미용실 원장과 청담고등학교, 최근 <그것이 알고싶다>의 ‘박근혜 대통령 5촌 살인 사건’ 방송 이후 다시 언급되는 박지만 씨(박근혜 대통령 동생) 관련된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미용실 ‘토니앤가이’ 단골 고객인 A 씨는 “정 아무개 원장은 청담동 터줏대감”이라며 “자신의 직업과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편법을 쓰는 식으로 돈을 벌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 원장 남편의 과거 정치 활동에 대한 의혹에 대해선 “과거부터 워낙 이런 저런 사업을 많이 하던 사람”이라며 “정 원장이 남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자주 하진 않는 편이었다”고 덧붙였다.
청담고를 졸업한 한 D 씨는 “현대고등학교 등 주변 고등학교는 ‘강남 토박이’나 실제 거주자 자녀가 많았지만 청담고는 외부에서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청담고는 인근 학교와 달리 출결 관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출신 연예인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 씨도 이 사실을 알고 딸 정유라를 청담고에 보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덧붙였다.
박지만 씨는 대통령 탄핵 이후 관심이 집중되다, 지난 17일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 이후 SNS 등에서 “박 대통령 5촌 살해를 청부했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현재 교류는 없지만 박 씨와 수년 전까지 알고 지냈던 한 지인은 “박 씨는 대통령과 관계가 끊어진 지 오래지 않느냐. 오히려 최순실이 훨씬 대통령과 가까웠을 것”이라며 “박 씨는 오래전부터 평범하게, 자신의 삶과 생활을 지키고 싶어했다. 앞에 나서서 뭔가(그는 육영재단과 청부 살해 등을 예로 들었다)를 주도적으로 하려는 성격은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