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띄어쓰기 프로젝트’팀, ‘부루수저 게임’ 커뮤니티 파티 개최
‘부루수저’ 게임을 마친 ‘흙수저’ 전성민(29) 씨의 소감이다.
지난 13일 오후 7시, 대전 유성구 어은동에 위치한 협업공간 ‘벌집’에는 20~30대 청년 20여 명이 몰려들었다.
대전에서 소규모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띄어쓰기 프로젝트’ 팀이 주최한 커뮤니티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날 커뮤니티 파티에서는 ‘부루수저’ 게임이 진행됐다.
‘부루수저’는 인기 보드게임인 ‘부루마블’에 기본소득을 접목한 게임으로, 지난해 SBS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한 ‘부루수저’게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큰 반향을 끈 바 있다.
기본 규칙은 부루마블과 같다. 다만, 각 참가자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계급이 무작위로 매겨진다는 점과 후반전에는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는 점이 다르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기본 자금과 땅(금수저 1000만 원 땅 5개, 은수저 500만 원, 흙수저 100만 원 땅 1개)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다.
후반전이 시작되면 모든 참가자는 재산의 30%(금수저), 20%(은수저), 10%(흙수저)를 세금으로 내고 주사위를 두 번 던질 때 마다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 받는다.
‘띄어쓰기’팀은 참가자들이 ‘계급’을 체감할 수 있도록, ‘금수저’에게는 푹신하고 편안한 의자와 금테를 두른 포도주 잔을 지급하고, ‘흙수저’는 딱딱하고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게 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정해진 계급,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쭈뼛대고 어리둥절하던 참가자들은 이윽고 게임이 시작되자 게임에 감정을 이입하기 시작했다.
계급이 매겨진 ‘부루수저’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금수저들의 재산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흙수저들은 빚을 지기 바빴다.
한 ‘흙수저’ 참가자는 “차라리 무인도에 들어가 아무것도 안하는게 마음이 편하다”는 우스갯소리로 어려운 처지를 빗댔다.
전반전 종료 결과, 금수저들은 아무도 빚을 지지 않았으며 426만 원이나 벌어들인 금수저도 있었다. 175만 원을 벌며 선전한 흙수저가 있는 반면 아무런 소득 없이 지출만 한 흙수저도 있었다. 계급 간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후반전이 시작되며 참가자들은 계급별로 세금을 냈다. 재산이 많은 금수저와 은수저들은 ‘세금을 너무 많이 낸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금수저’ 김정운 씨(25)는 “많이내는 세금에 대해 솔직히 거부감이 생겼다. 기본소득으로 얻은 돈보다 세금을 조금 더 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기본소득이 생긴 흙수저들은 한결 수월하게 게임에 임했다.
‘흙수저’로 시작한 엄지선 씨(22)는 “기본소득이 없던 전반전에는 두려움이 컸다. 남의 땅을 안 밟으려 주사위를 열심히 굴렸다. 기본소득이 들어오면서부터 안정됐다. 어차피 돈이 들어온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게임에 임했다”고 말했다.
후반전 결과도 전반전과 마찬가지였다. 계급 간 역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격차도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빚을 남기고 끝난 참가자는 없었다. 흙수저들의 소득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후반전을 마이너스로 시작했던 한 흙수저는 최종 240만 원으로 게임을 마쳤다.
“기본소득이 심리적 안정감 주더군요”
‘부루수저’게임은 참가자들이 갸우뚱하던 기본소득을 간접 체험하게 되는 기회가 됐다.
카페를 운영하는 김달리아(29) 씨는 “실제로 카페를 운영하며 억 단위의 수익을 내고 있다. 처음 기본소득에 대해 접했을 때는 ‘세금을 많이 내면서 왜 똑같이 받을까’,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하지 않고 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세금을 많이 낸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러나 게임을 하며 여러 분야의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돼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면서 “현재 기부를 많이하고 있는데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기부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올 테니 지출하는 돈은 똑같을 것 같다”며 기본소득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했다.
전성민 씨는 “게임 시간이 더 주어졌으면 모르지만 계급 격차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기본소득이 주니 아예 망하지는 않더라”며 “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 내가 가질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정운 씨는 “금수저라서 세금을 많이 냈지만 어차피 돈이 충분해서 불만은 없었다”며 “(기본소득이 생긴다면) 알바를 덜 하고 싶다.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다영 씨(25)는 “기본소득이 꼭 실현됐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돈이 문제다. 걱정하는 것 대부분이 재정적 문제다. 기본소득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 같다”며 현실적 문제의 대안으로 짚었다.
‘띄어쓰기’팀은 오는 2월11일 ‘기본소득 실험’ 1차 공개추첨을 실시하고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간다. 당첨된 참가자는 6개월간 매달 50만 원씩 받는다.
실험 참여 방법은 카카오톡에서 ‘대전 기본소득띄어쓰기프로젝트’를 검색해 친구추가 후 지원서와 6470원 이상의 후원금을 내면 추첨대상자가 된다.
ynwa21@ilyods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