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세상 7-47(2007), 160x130cm, 캔버스에 아크릴.
Future Art Market-Artist 19
‘화려한 모란에 담은 존재의 본질’ 김근중
식물은 생애 절정에서 꽃을 피운다. 그래서 꽃은 아름답다. 자연 창조물 중 신의 솜씨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도 꽃이 아닌가 싶다. 꽃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낙화가 있기 때문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처럼. ‘분분한 낙화’는 튼실한 열매를 얻기 위한 축제다. 결실을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르는 고통의 축제. 생애 절정에서 가장 빛나는 것을 버리는 희생의 축제.
따라서 꽃은 생명을 잉태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문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장의 문이다. 식물은 낙화라는 통과의례로 이 문을 넘어선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청사진을 품은 열매를 맺는다. 꽃 너머의 새로운 세상인 셈이다. 이를 열기 위해 꽃이 견디는 세월은 혹독하다. 인고의 시간이다.
꽃은 이처럼 외모만큼 아름다운 비밀을 지니고 우리 앞에 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꽃은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로 자리 잡고 있다.
김근중도 꽃을 그린다. 그중에서도 꽃 중의 왕이라고 불리는 모란을 주로 다룬다. 화려하고도 몽롱한 분위기로. 그는 수많은 꽃 중에서도 모란을 소재로 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전시장에서 본 민화 12폭 모란 병풍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모란이 화면에 가득한 올 오버 페인팅, 압도적인 포스에 감동했다. 평소 억눌렸던 감정과 욕망을 한껏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란을 선택한 이유는 학창 시절 모란 사생의 기억과 대만 유학 당시 고궁박물관에서 보았던 오대의 모란채색화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꽃세상 9-18(2009), 162x259cm, 캔버스에 아크릴.
꽃세상 13-5(2013), 259x194cm, 캔버스에 아크릴.
이런 이유를 달고 시작한 그의 꽃 그림은 의외로 현대 추상회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상하좌우가 분명하지 않다. 여기에 작가의 관심이 화면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어 중심과 주변이 가늠되지 않는다. 중용의 세상이다. 그래서 동양적 감성이 물씬 묻어난다.
그러나 그는 모란의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란 그림은 화려하며 아름답다. 작가의 공력에 깃든 화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현란한 장식미까지 느껴지는 꽃 그림을 그릴까. 그것도 부귀의 상징으로 불리는 모란을 고집할까. 꽃의 생리를 통해 존재의 본모습을 보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는 마음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꽃 중의 꽃으로 칭송되며 아무리 뛰어난 자태를 뽐내는 모란일지라도 반드시 시들고 사라져버린다는 사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모두 진짜는 아니라는 사실. 꽃이라는 가장 빛나는 것을 스스로 놓아버릴 때 새로운 세상을 압축한 열매를 맺는 자연의 순리에서 김근중은 삶의 지혜를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아름답게 그려낸 모란은 사라져버릴 허무한 세상,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