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印千江-천개의 강에 나무를 새기다(2015), 162x112cm, 캔버스에 혼합재료.
Future Art Market-Artist 24
‘가슴을 울리는 서정성의 힘’ 장태묵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예술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이 서정의 회복이다. 예술가들이 서정을 회복하겠다니, 그러면 그동안 예술에서 서정을 버렸다는 말인가. 대다수 사람들이 예술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서정성인데, 예술에 서정성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예술 지고의 가치는 ‘새로움’이었고, 이를 위한 끊임없는 형식 실험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서정성 대신 예술의 추진 동력으로 들어앉은 것은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는 그 어떤 것이라도 용납되었다. 새로움을 찬양하는 것이면. 특히 회화가 그 선봉에 있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미술가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인간 본성인 감성을 자극해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서정성은 타고난 기질에서 나온다. 그것이 예술적 재능이다. 서정성은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며, 그런 감동의 힘으로 인류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런 특별한 능력을 자양분 삼아 자라난 예술은 심지가 깊고 튼실한 몸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멋진 풍경. 이를테면 장엄함을 주는 핏빛 저녁노을이나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청량함을 주는 거대한 대숲의 움직임 또는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담아내는 호수의 고요함 같은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木印千江-천개의 강에 나무를 새기다(2016), 122x180cm, 캔버스에 혼합재료.
박현옥은 이런 흐름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그는 꽃이나 나무 등 회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해온 구태의연한 소재를 다룬다. 그러나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터득해 독자적 화풍을 보여준다. 현대 회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방법론에 치중하지만, 그의 작품은 여는 현대미술과는 다르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감상이 용이하다.
그는 유채, 아크릴릭, 다양한 종류의 미디엄 같은 서양 회화 재료에 석채, 옻 같은 전통 회화 재료를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꾸준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재료로 만들었고, 거기에 맞는 방법론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박현옥식 꽃 그림, 소나무 그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작업을 보면 그린다는 것보다는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유채의 물질감이 강하게 보이는 꽃 그림은 물감의 두께와 재질감으로 꽃의 실제감을 표현한다. 밑그림 없이 조성되는 꽃들은 마치 조각가가 점토를 쌓아 올려 형태를 구축하듯이 그려진다. 그래서 즉물적 생동감을 준다.
이를 통해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작가는 ‘생명의 유한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자라고 그리고 사라진다. 생명의 사이클은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는 법칙인 셈이다. 그 속에 인간도 있다. 삶이라는 순간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현옥은 유한한 생명의 순간을 강한 물질감을 통해 잡아두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재료의 성질을 활용한 물질적 회화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회화는 생의 빛나는 순간순간을 빚어내는 긍정적 메시지인 셈이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