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공간(2013), 130.3x193.9cm, 캔버스에 오일.
Future Art Market-Artist 25
‘동화 속 세상의 해피엔딩’ 이현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상식이 지배하고 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이치, 원인에 따르는 결과가 타당한 지식으로 통하는 세계에서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은 과학 덕분이다. 지난 세기 과학의 발전은 실로 눈부셨다. 예술도 과학의 신세를 톡톡히 진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의 상식은 넓어졌고, 예술적 취향도 다양해졌다.
상식의 세계는 안전한 만큼 지루하다. 언제나 예측 가능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과학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과학 밖의 세상은 늘 신기하다. 그런 만큼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세계를 그리워하며 꿈꾼다. 그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 예술의 할 일이다.
예술 창작은 정신 활동의 정점에서 빚어내는 결정체다. 20세기 초에는 인간의 정신 활동 자체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신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잠재의식이 정신 활동의 주요한 부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예술에서 다루지 못했던 잠재의식은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영역으로 떠올랐다.
잠재의식을 그려내려고 시도한 것이 초현실주의다. 현실을 뛰어넘는 세계,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도 예술에서는 가능한 일이 되었다.
백조의 옷장(2012), 162.2x130.3cm, 캔버스에 오일.
이현희도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세계도 비현실 분위기가 강하다.
소파에 누워 있는 엄청나게 큰 펭귄, 하늘에 설치된 창문, 구름에서 늘어진 커튼, 욕조에서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는 붉은 곰, 폭포로 연결된 호수를 떠다는 침대, 새장에 갖힌 커다란 꽃에서는 폭포가 떨어지고, 숲으로 이루어진 벽에서 말이 뛰쳐나오기도 한다.
어찌 보면 뒤죽박죽된 정신의 조각들을 그대로 쏟아낸 듯하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들이다. 무얼 그린 것일까.
작가는 “수많은 이미지와 거기서 떠오르는 감정, 기억의 파편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유년 시절부터 겪었던 수많은 일과 만났던 사람 그리고 가보았던 장소들은 연결되지 않는 영상이 되어 우리의 잠재의식이라는 창고에 쌓인다. 그런 것을 의식 위로 끄집어내면 질서 있는 이미지로 나타나지 않는다. 정신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그의 그림에서는 혼돈스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유쾌하고 발랄하기까지 하다. 마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를 보고 난 기분이다. 밝고 현란한 색채와 정돈된 기본 구성 덕분이다. 이게 이현희 회화의 매력이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