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소통 지원” 반 캠프엔 빗장 꽁꽁
1월 18일 기자는 지하철 5호선 공덕역 인근을 찾았다. 1번 출구를 나와 마포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작은 표지석이 눈길을 끌었다. “신민당사터, 야당당사에서 농성하던 YH무역 노동자 김경숙이 경찰 진압과정에서 사망”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표지석 앞 건물은 신민당 당사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고층의 주상복합 오피스텔로 변했다.
1978년 8월 9일 YH무역 여성노동자 약 170명은 회사운영 정상화와 생존권보장을 요구하며 당사 4층 강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1000여 명의 경찰을 투입해 노동자들을 무력 진압했다. 김 총재와 신민당 의원들은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 양이 추락해 사망했다. YH 사건은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린 부마항쟁과 10·26사태의 신호탄이었다. 신민당사는 민주화의 불씨를 당긴 역사적인 장소였다.
안철수 전 국민의단 대표가 설립한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들어선 성우빌딩(왼쪽)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공식 보좌진이 베이스캠프를 꾸린 트라펠리스 오피스텔(오른쪽). 연대설이 나오는 두 사람의 베이스캠프는 바로 이웃에 위치해 있다. 최준필 기자
신민당사터를 지나자 초고층 오피스텔인 트라펠리스가 위용을 드러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공식 보좌진은 트라펠리스 23층에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A, B, C 세 개 동으로 구성된 트라펠리스는 입주자와 상가 방문객 출입구가 달랐다. 입주자 전용 출입구마다 경비원들이 배치돼 있었다. 트라펠리스의 한 경비원은 “반 전 총장 사무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올라가려면 인터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외부인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곳에 본진을 차렸다.
반기문 캠프에는 입주자 전용 지하 주차장이 따로 있었다. 주차장을 거치면 엘리베이터로 사무실까지 바로 이어져 있는 구조였다. 뒤늦게 대권에 뛰어든 반 전 총장이 주변의 시선을 피해 핵심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반 전 총장은 트라펠리스에 사무실 두 곳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의 부동산 업자는 “보통 사무실 공간으로 42평형을 많이 쓰는데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200만 원을 받는다. 관리비를 합하면 230만 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반 전 총장 측 이도운 대변인은 “반 총장의 국내 활동을 보좌하는 실무팀이다. 정치적 의미의 선거 캠프는 아니다. 반 전 총장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많이 듣기를 원하는데 그것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반 총장의 방문 일정을 짜는 역할을 하는 사무실이다”고 밝혔다. “좀 둘러보고 싶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변인은 “이곳은 못 들어온다.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트라펠리스 바로 옆 성우빌딩 7층. 또 다른 대권 잠룡의 싱크탱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2013년 6월 9일 설립한 정책네트워크내일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신드롬’의 진앙지였다. 박왕규 부소장은 “우리는 사회 문제들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연구진의 결과물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이다. 서부지방법원이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 등 리베이트 사건 관련자 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고 안 전 대표의 대권 행보 역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책네트워크내일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었다. 외부인 방문이 어려운 반기문 캠프와는 사뭇 달랐다. 사무실 벽은 투명한 유리로 뒤덮여 있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안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이 ‘이웃사촌’이란 사실도 흥미로웠다. 여의도에서 회자하는 ‘반-안’ 연대설과 맞물리는 까닭에서였다. 박 부소장은 “옆 사무실에 반 총장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빅텐트와 제3지대는 실체가 없고 국민의당이 제3지대고 빅텐트다. 반 총장이 국민의당의 새정치에 부합하는 후보인지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다른 후보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이 당의 기본입장이다”고 설명했다.
손학규 전 고문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다보빌딩(위)과 문재인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국민성장이 들어선 광산회관(아래). 최준필 기자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 사무실은 성우빌딩과 지근거리인 다보빌딩에 있었다. 안 전 대표 사무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웅성웅성하는 말소리가 사무실 밖으로 흘러나올 만큼 역동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방마다 회의가 한창이었다. 캠프 관계자들은 종이를 손에 움켜쥔 채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손 전 고문 최측근은 “국민들하고 직접 소통하기 위해 마포로 사무실을 잡았다. 건너편에도 몇 군데를 알아봤는데 마땅히 쓸 건물이 없었다. 다음 주부턴 공간을 늘려 ‘국민주권개혁회의’ 사무실로도 활용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1월 22일 출범한 ‘국민주권개혁회의’는 손 전 대표의 정치협의체다. 다보빌딩 11층에선 반 총장과 안 전 대표의 사무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손 전 대표는 국민주권개혁회의를 토대로 국민의당 또는 반 총장과의 연대를 검토하고 있다. 다른 최측근은 “손 전 대표는 정치세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다. 세력 대 세력의 통합과정을 전제해야 연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손 전 대표 사무실은 공간이 꽤 넓었다. 안 전 대표 사무실과 비교해도 상당한 규모였다. 다보빌딩 임대업자는 “손 전 대표는 기존의 계약대로 약 90평 정도를 쓰고 있다. 추가로 확장될 부분은 기존 계약과 별개다. 보증금과 월세를 공개하기는 곤란하다. 마포 인근은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국민성장’도 마포역 인근이었다. 다보빌딩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약 300m을 걸어가자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있는 광산회관 빌딩이 보였다. 정책공간국민성장은 약 500명의 교수들이 참여한 초대형 싱크탱크로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소장을 맡았다. 건물 대부분에 상가가 들어서있어 외관은 다소 허름해 보였다.
사무실 안쪽 왼편엔 10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었고 약 20명의 관계자들이 열띤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문 전 대표의 최측근은 “조 교수는 거의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우리는 교수들이 제안한 것을 문 전 대표 측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주변에 반 총장 사무실이 있는 점은 딱히 신경을 쓰이지 않는다. 여기가 선거 캠프는 아니다”고 전했다.
광산회관은 광산김씨대종회 소유의 건물이다. 인근 부동산 업자는 “마포역 주변에서 저렴한 편에 속한다. 원래 종친회 건물이 싸기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대종회 관계자는 “보증금은 3000만 원이고 월 임대료는 310만 원이다. 3층의 50~60평 정도다. 처음에 계약할 때 학술연구단체라고 해서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지 몰랐다.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곳이 여의도보다 낫다”고 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