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골목길 CCTV 부족 용의자 행방 오리무중
폭행 사건이 벌어진 현장 잠실동 골목길. 일반음식점이나 미용실, 철물점이 들어선 곳으로 야간 유동인구가 적었다.
[일요신문] 잠실새내역 인근인 송파구 잠실동에서 한 남성이 큰 돌을 휘둘러 여성 2명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이 벌어진 시점은 새벽 2시경이었다. 사건 장소는 주거지가 밀집한 지역이었기에 이번 사건은 많은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목격자도 없고 용의자가 촬영된 CCTV 화면의 화질이 좋지 않아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월 14일 오전 함께 식사를 한 이후 차를 마시고 귀가하던 20대 여성 2명이 봉변을 당했다. 한 남성이 큰 돌을 피해자들에게 휘두른 것. 이로 인해 피해자 A 씨는 치아가 손상됐고, B 씨는 얼굴에 상처를 입어 봉합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폭행 이후 유유히 사라진 범인의 행방을 찾고 있다. 하지만 사건 현장이 대로변이 아닌 골목길이라 목격자가 없고 CCTV도 드물어 범인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경찰은 인근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와 CCTV를 통해 범인의 도주로 등을 파악 중이다. 녹화 화면의 화질 문제로 범인의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경찰은 도주 방향을 예측해 범인이 찍힌 또 다른 CCTV 장면을 수집하며 범인을 추적하고 있다.
사건 현장은 잠실새내역(구 신천역)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500m 거리의 골목길이다. 잠실새내역 일대는 식당과 술집이 몰려있어 밤마다 많은 인파가 모이는 지역이다. 현장 인근 상인들은 “늦은 시간에도 꽤 사람이 다니는 곳이라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진 골목만큼은 번화가에서 한적한 주택가로 접어드는 곳이었다. 일반음식점, 미용실 등이 자리를 잡고 있어 늦은 시간에는 유동인구나 차량 통행도 적었다. 이번 사건과 같은 범죄에 취약해 보였다. 현장 가까이에 있는 호프집 업주도 “골목 안쪽에서 벌어진 일이라 신고를 받은 경찰이 도착해서야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나가봤다”고 했다. 인근 편의점 직원의 증언도 마찬가지였다.
# 송파 인구 집중된 잠실동, CCTV는 부족
잠실새내역부터 탄천까지 이어진 잠실본동은 번화한 거리와 주택가가 함께 있어 범죄 예방에 각
별한 주의가 필요한 지역이다. 그러나 송파구청에서 공개한 ‘송파구 방범용 CCTV 설치현황’에 따르면 잠실새내역부터 잠실본동 주민센터가 위치한 백제고분로 사이에는 10여 개의 CCTV가 설치돼 있다. 그마저도 한쪽에 몰려 설치돼 있다. 이번에 일어난 폭행 장면도 CCTV 화면에 담기지 않았다.
잠실동(잠실본동, 잠실 2~7동)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CCTV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잠실동에는 약 66만 송파구 인구의 4분의 1 정도인 약 16만 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CCTV 개수에서 다른 동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잠실동에는 40개의 CCTV가 설치돼 있는 반면 약 4만2000명이 살고 있는 마천동에는 51대가 설치돼 있다. 4만 명의 방이동, 4만 9000명의 송파동, 3만 5000명의 석촌동도 잠실동과 비슷한 40대 내외의 CCTV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폭행의 도구로 큰 돌이 쓰였다. 경찰 관계자는 돌에 대해 “지름 15센티미터에서 20센티미터 정도의 차돌이다. 범인이 인근 골목길에서 주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맡겼다”고 말했다.
범인이 돌을 습득한 정확한 경위는 파악되지 않았다. 사건 현장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곳의 건물 기초공사 현장에서 비슷한 크기의 돌 여러 개가 있었다. 야간에는 공사장 둘레로 막는 천이 둘러쳐져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출입이 가능했다. 범인이 현장 주위에서 돌을 줍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강남역 추모집회. 채널A 방송 화면 캡처.
# 되살아나는 ‘묻지마‧여성혐오 범죄’의 기억
또한 이번 사건은 ‘묻지마 범죄’의 특징을 보여 더욱 이목이 쏠리고 있다. 범인은 피해자들의 금품을 뺏거나 성범죄를 시도하지 않고 폭행만을 가한 이후 유유히 사라졌다. 경찰에서도 묻지마 범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언제 나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더하고 있다. 현장 인근 치킨전문점 점주는 “동네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무섭다”며 “빨리 범인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정이 지난 시간에 현장을 지나가던 한 여성도 “이 주변에서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매일같이 지나는 길이지만 그 이후로 겁이 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또 하나의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여성 혐오 범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을 보며 강남역 사건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글이 수차례 올라왔고 다른 글에 비해 많은 댓글이 달리며 관심이 집중됐다. 커뮤니티 이용자 중 일부는 강남역 사건과 이번 일을 연관 지으며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남성 두 명이 현장을 지나갔다면 범인이 폭행을 했겠냐”며 “잠실새내역 주변을 돌아다니기 겁이 난다”고 우려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