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세상엔 쓴 소리하는 사람이 전무하다”
직언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시대다. 국가의 수장이 비선의 물줄기에 휩쓸려 표류하는 동안 그 누구도 나서는 이 없었다. “부표 같이 살자”는 문장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요즘 가장 절실한 건 직언할 줄 아는 용자다.
민병돈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
게다가 민병돈 전 장군은 연설을 마치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경례를 하지 않았다. 연설 전 단상에 오르면서도 경례를 하지 않았던 민 전 장군의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당신은 내 상관이 아니다”라는 결정타를 날린 셈이었다. 사흘 뒤인 1989년 3월 25일 민병돈 전 장군은 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졸업식의 모든 행동은 민병돈 전 장군의 계산에 있었다. 계산에 없던 건 단 두 가지였다. 쑥쑥 자라는 중고생 아들 둘과 54세라는 자신의 나이였다. 군 출신의 전성 시대, 민 전 장군은 왜 폭탄을 던지고 가시밭길을 향했을까. 지난달 25일 서울 양천구 목동 민병돈 전 장군의 서재에서 28년 말하지 않았던 민 전 장군의 속내를 물었다.
“옷 벗을 각오했지. 당연한 거 아냐?”
간단했다. “옷 벗을 각오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민병돈 전 장군은 “요즘 세상에 쓴 소리하는 사람이 전무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예나 지금이나 쓴 소리를 하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 직업을 잃고 보복 당하는 건 매한가지다. 다만 그때 나라가 휘청댄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던 때였다. 그런 일을 벌인 뒤 운이 좋아서 옷을 벗지 않더라도 더 이상 진급이 불가능하리란 건 잘 알았다. 입 닫고 조금 더 버티느니 차라리 옷을 벗자고 각오했다.”
민병돈 전 장군은 당시 군 기강이 뿌리부터 흔들렸다고 했다. “북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책 방향 탓이었다. 그는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당시에 군대는 말단부터 상당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방에서 사병이 소대장에게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닌데 추울 때는 동상 걸려가며 더울 때는 모기 뜯겨가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국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최고 지휘관이 북한보고 적이 아니라는데 뭐 하러 우리가 총을 겨누나. 살살하고 우리 잠 좀 잡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 작은 질문은 소대장에게서 중대장에게 전달됐고 중대장을 거쳐 대대장 앞까지 도착했다. 결국 군 수뇌부로 그 질문이 올라갔다. 책임질 일 안 하는 건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군 수뇌부는 “육군사관학교에 똑똑한 교수 많잖아. 그 사람에게 물으면 되겠다”고 묘안을 냈다. 결국 칼자루는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던 민병돈 전 장군 앞에 놓였다.
“이걸 그냥 두면 군이 망할 것 같더라”
민병돈 전 장군은 이 사소한 질문 자체를 위기로 판단했다. 태도는 늘 분명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그였다.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모든 걸 떠안기로 결심했다. 그는 졸업식 날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은 전방에서 사병을 거느릴 소위가 탄생하는 자리다. 난 대통령이 있든 말든 꼭 말해야 했다. 그래서 ‘일부 정치인이 ‘북한은 우리 적 아니다’라고 하는 말은 정치적 발언일 뿐이다. 절대 믿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며 말 폭탄을 던졌다.
군 기강이 흐트러진 근본적인 이유도 고백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선에 앞서 하나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자신이 인기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세력이 필요했다. 그가 손을 뻗은 게 바로 좌익 운동권이었다”며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리의 동반자’라고 말했는데 사실 자기 본심은 아니었다. 다만 좌익 운동권에 ‘날 너무 반대하지 말라. 날 공격하는 걸 자제해달라’는 뜻으로 꼬리 친 것”이라고 했다. 40년 가까이 주적이었던 대상이 하루 아침에 동반자가 되자 군 전체가 갸우뚱한 반응을 보인 셈이었다. 민병돈 전 장군은 모든 부작용의 시작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모략으로 꼽았다.
“제대로 된 선배가 모범을 보여야 후배가 이를 모방하며 성장해 간다”
대한민국 국군 창군이래 장성이 제 발로 걸어나간 건 민병돈 전 장군이 처음이었다. 그가 용기를 낸 건 ’모범‘ 때문이었다. 민 전 장관은 “군대에서 후배나 하급자가 성장하는 건 교과서 보고 하는 게 아니다. 선배 보고 따라 하며 발전해 간다. 소위 모범을 보고 ’멋있다. 나도 이 다음에 저 계급이 되면 저렇게 해야지‘하는 ’선망적 동일시‘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걸 보고 흉내 내며 인격적으로 닮아간다. 그러면서 고급 간부로 성장해 간다”며 “가장 믿었던 멘토가 하루 아침에 말을 바꾸거나 비겁하게 굴면 후배는 ’될 대로 돼라‘하며 실망하고 만다.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내가 고개 숙였거나 말을 바꿨으면 얼마나 실망했겠나. 후배가 ’저 놈도 별 수 없어‘라고 말하게 놔둘 순 없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민병돈 전 장군에겐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교장뿐만 아니라 교편도 잡았었다. 군대에서는 적어도 참모총장만큼 널리 알려졌던 사람이었다. 따르는 후배와 제자가 많았다.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였다. 과감하게 박차고 나가는 건 그가 평생 아껴온 신념이었다.
민병돈 전 장군은 전관예우도 거부했다. 그는 “후배가 날 인정하는 건 큰 게 아니다. 당시 군에서 막강했던 사람은 낙하산으로 사기업으로 가서 이사니 뭐니 달고 월급 받으며 일했다. 당당했던 군 시절을 잊고 젊은 사장에게 고개 숙이며 살았다. 후배가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프다. 군대 꼴이 이게 뭐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옷 벗고 나간 사람의 현실이 후배에겐 자신의 미래인데 그 막강하던 사람이 대우나 삼성 들어가서 이병철과 이건희에게 머리 조아리는 걸 보면 어떻겠나. 기업체 대표가 군부대 위문할 때 수행한답시고 장성이었던 사람이 기업체 대표 앞에서 굽실거리는 장면을 보면 참 가슴을 칠 일”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난 그걸 잘 알았다. 그래서 현역 때 선언했다. ’난 제대해도 저런 직장 절대 안 간다‘고 했다. 그땐 정부에서 사기업체 취직뿐만 아니라 국영기업체 사장 자리도 줬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부하 직원 시켜서 제의했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했다. 말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계속된 제의에도 응하지 않았다. 민 전 장군은 “한 번은 노태우 전 대통령 측에서 ’번번히 거절하시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왔다. 그때 대답했다. ’난 이미 현역 때도 제대하면 직장 생활 안 한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는 자리는 더 싫다. 다신 이런 걸로 전화하지 마라”며 단칼에 모든 예우를 거절했다.
“난 평범한 인간으로서 성공했다.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
민병돈 전 장군은 대접 받는 일이 잦다. 타 지역을 가도 민 전 장군이 방문했단 소문이 퍼지면 얼굴도 모르는 후배가 슬쩍 와 인사하고 밥값도 몰래 내고 간단다. 그는 “다시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었다. 내 얼굴도 모르는 새까만 후배, 내 부하의 부하, 제자의 제자도 내 얼굴은 모를지언정 내 이름은 다 안다. 나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며 “내 인생의 차원이 높고 고매한 건 아니지만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성공한 삶이다. 평범한 인간으로 난 만족한다”고 일렀다.
민 전 장군은 서랍에서 종이 여러 장을 꺼내 펼쳤다. 사람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선물 내역이 적혀 있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추석이나 설 때 후배가 나에게 보내 명단이다. 난 이걸 다 적어둔다. 일일이 답례를 할 순 없지만 전화를 돌려 고맙다고 늘 이야기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선물은 팔도에서 몰려들었다. 그는 “난 늘 차별 없이 대했다. 경상도가 패권을 잡던 시절에도 난 전라도든 경상도든 누구든 영리하면 내 밑에 뒀다. 전라도 출신이 눈치보고 살던 때였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부터 민병돈 전 장군은 “기자라는 직업이 소명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대우 받느냐’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을 갖게 되면 돈이 필요하다. 결혼해서 애를 낳고 살다 보면 가족이 아프기도 하고 건강하던 자기도 병이 나 치료비도 상당히 나올 수 있다. 돈이 부족하면 유혹이 생기는 법”이라며 “늘 어느 정도 쓸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살다 보면 곤란한 상황이 많다. 저축 꼭 하고 살아야 한다”고 기자에게 당부했다.
기자는 “계속 가족과 미래를 생각해 직장 생활 오래하라고 말하는데 당신은 왜 무모하게 그런 선택을 했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냥 웃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