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강변엔 ‘탐욕’과 ‘치욕’이 교차
버마의 마지막 왕이 잡혀 증기선에 태워지던 광경. 이라와디강 선착장이다.
[일요신문] 바람부는 이라와디 강변입니다. 이곳 만달레이 선착장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봅니다. 사가잉, 밍군의 산과 언덕들이 아스라히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막 바간(Bagan)으로 떠나는 유람선이 몸을 뒤틀어 강 가운데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 강변에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26살의 남자 띠보(Thibaw). 19살에 왕위에 오른 버마의 마지막 왕입니다. 1886년 영국군에 체포되어 왕궁에서 수레에 태워져 이 강변으로 끌려 왔습니다.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참하게 증기선에 태워졌습니다. 이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사진이 너무 바래서 사람들의 표정을 알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제가 서있는 자리가 바로 그때 그 현장입니다. 예전엔 이 장소를 표시했지만 언젠가부터 이 표시가 사라져 정확한 위치를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소였던 탓이었을까요.
미얀마에서 양곤이 경제 중심의 도시라면 네피도는 행정의 수도입니다. 만달레이는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버마는 통일왕조인 꼰바웅 왕조가 무너지면서 영국의 식민통치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이 왕조의 마지막 왕 띠보는 1878년부터 7년간 재위했습니다. 그는 1885년 제3차 버마와 영국간의 전쟁에 패하면서 비운의 일생을 산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증기선에 태워져 양곤을 거쳐 인도 서해안의 한적한 어촌인 라트나기리(Ratnagiri)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곳에서 30년의 긴 세월을 살다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가 인도에서 보낸 삶은 인도 소설가 아미탑 고쉬(Amitav Ghosh)의 소설 <유리궁전>(Glass Palace)에 담겨 있습니다. 그가 인도로 끌려갔듯이 인도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자파르 황제는 1857년 당시 버마의 수도였던 랭군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이 나중 밝혀졌습니다. 영국군은 두 나라의 왕들을 뒤바꿔 유배한 것입니다. 지금도 치욕스런 역사가 두 나라에 존재합니다.
이라와디 강변에 크고 작은 유람선이 다닌다. 이곳에서 배로 바간으로 여행한다.
이곳 사람들이 ‘팰리스’라고 부르는 만달레이 왕궁은 1857년 민돈왕에 의해 세워지기 시작해 5년이 걸렸습니다. 1824년, 1852년 두 차례나 되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양곤 등 남부지역은 이미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민돈왕은 수도를 아마라뿌라에서 만달레이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폭 70미터, 수심 3미터의 해자로 둘러싸인 왕궁을 지었습니다. 지금 봐도 마치 요새와 같은 성입니다. 민돈왕은 지금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쿠도도 파고다(Kuthodaw Pagoda)도 세웠습니다. 돌에 새긴, 세계에서 가장 큰 책입니다. 729개의 대리석판에 불교경전을 새기고 흰 석탑에 하나씩 보관했습니다. 당시 석판에 새긴 경전을 승려들에게 읽게 하였는데 2400여 명이 6개월이 걸렸다고 전합니다.
1878년 민돈왕의 뒤를 이어 띠보왕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는 천성이 유약하기도 했지만 당시 왕실의 암투 속에서 왕이 된 사람입니다. 80여 명의 왕족이 죽고 죽이는 가운데 지목된 왕입니다. 그래서 권위를 내세우지도 못한 불운한 왕입니다. 당시 영국은 버마왕실이 독점하던 루비광산과 티크목 산림을 탐냈습니다. 고급목재인 티크목을 둘러싼 분쟁 끝에 버마와 영국은 최후의 3차 전쟁을 하게 됩니다. 선전포고를 한 지 보름 만에 영국군 1만여 명이 만달레이를 포위했습니다. 견고한 왕궁은 점령당하고 왕과 왕비, 공주들은 체포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중부가 무너지면서 1886년 띠보왕은 폐위되고 맙니다. 만달레이 성은 영국군이 주둔하게 되고 버마는 인도의 한 주로 편입됩니다.
팰리스 안에 있는 띠보왕과 왕비 모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학생들.
만달레이 왕궁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입니다. 저도 가끔 해자를 따라 산책을 합니다. 깊고도 맑은 물이 넘실거립니다. 오늘은 왕궁에서 띠보왕이 수레에 끌려갔던 그 강변까지, 갔던 길을 따라 왔습니다.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입니다. 오늘도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오가는 이라와디 강변. 덜커덩거리는 느린 마차 위의 젊은 띠보와 수파야랏. 말을 탄 영국군인과 그 마차를 따라 가는 국민들의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