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스포트라이트에 밑천까지 탈탈…제작진도 일반인보다 기획사 연습생 선호
지난 2월 10일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Mnet에서는 10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서바이벌 오디션 <고등 래퍼>를 선보였다. 나이를 제외하면 출연진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지만 대부분 일반 고등학생들이 출연한다. 그 가운데서도 첫 방송 당일부터 단번에 시청자를 사로 잡은 출연자가 있다. 세인트폴 국제학교를 자퇴한 뒤 언더그라운드에서 래퍼로 활동하고 있던 장용준(17)이다.
지난 2월 10일 Mnet ‘고등 래퍼’에 출연한 장용준의 모습. ‘고등 래퍼’ 화면 캡처.
준수한 외모와 출중한 랩 실력으로 심사위원단들의 호평을 이끌어 낸 장용준은 그날의 스타였다. 심사위원 가운데 하나로 출연했던 래퍼 스윙스가 “제일 잘하고 큰 인상을 줬다. 혹시 회사 있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더욱이 이후 장용준의 아버지가 장제원 바른정당 전 대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수저 래퍼”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잘생긴 얼굴, 조금 건방진 자세, 뛰어난 실력에 금수저 배경까지. 제작진이 바라는 ‘채널 고정용’ 캐릭터가 다 갖춰진 셈이었다.
그러나 첫 화의 분위기를 타고 <고등 래퍼>가 배출해 낸 걸출한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장용준의 스포트라이트는 방송 후 한 시간 만에 사그라졌다. 방송 출연 전에 사용했던 그의 SNS 계정이 발목을 잡은 것. 방송 직후 네티즌들이 포털사이트에 장용준의 이메일 아이디를 검색하자 동일한 아이디의 트위터 계정이 드러났다.
장용준은 이 트위터를 이용해 ‘조건만남’, ‘섹팅(섹스+채팅의 합성어로 음란한 사진이나 영상을 가지고 대화하는 것)’ 계정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을 15살, 16살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 계정에게 장용준은 “오빠랑 하자” “조건(조건만남)하고 싶은데요 DM(쪽지)하기 위해서 맞팔 가능할까요?”라며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등 래퍼’ 출연 전 사용했던 장용준의 SNS 계정. 현재는 폐쇄됐다. 장용준 SNS 캡처.
여기에 자신의 부모님에게 패륜적인 발언을 한 정황도 공개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에 빠졌다. 방송 직후 한 시간 만에 천국에서 나락으로 빠진 것을 빗대 ‘1시간 천하’라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장용준은 곧바로 어린 날의 치기를 반성하는 사과문을 올렸고, <고등 래퍼> 제작진은 장용준의 자진 하차를 받아들였다. 1회 만에 상품성과 논란을 한 번에 검증받고 하차한 전무후무한 일반인 출연자인 셈이다.
이처럼 서바이벌 오디션에 출연해 인기몰이를 한 일반인들이 구설수에 오른 것은 한두 번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일반인 서바이벌 오디션의 교과서로 불리는 <슈퍼스타K>의 경우는 재미교포 3세들로 이뤄졌던 그룹 ‘옐로우 보이즈’의 과거 한국 여성 성적 비하 발언과 음주 난동 영상 등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방송 첫 주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어 2012년에는 군인 신분으로 <슈퍼스타K4>에 출연해 훈훈한 외모와 준수한 실력으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민준 병장의 ‘몸캠’ 영상 논란이 벌어져 또 한번 충격을 줬다.
지상파 방송도 일반인 오디션의 딜레마를 피하지 못했다. 2013년에 시즌 3을 종료한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은 가수 이은미의 극찬을 받아 Top 8까지 생존했던 김혜리가 과거 인터넷 물품사기 행각을 벌여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낳았다. SBS의 <K팝스타>에 출연했던 김나윤은 미성년자 신분으로 클럽을 방문한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 관계자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경우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기껏 메인으로 키워놓은 일반인들이 갑작스런 신상털이로 논란에 휩싸이면 프로그램 진행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일반인 서바이벌 오디션에 기획사 연습생 등 연예인으로서 발판이 마련돼 있는 출연진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100% 일반인 출연 오디션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탄생하는 일반인 서바이벌 오디션은 시청자들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에 인기몰이를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인기도 시들한 상태다. 이전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던 일반인들에 비해 요즘 출연진들은 상품성도, 화제성도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결국 방송은 화제성, 즉 시청률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데 그 화제성이 나쁜 방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 일반인으로 모험을 하기보다는 소속사의 관리가 가미된 연습생들이나 좀 더 검증된 사람들을 다수 끼워 넣어 프로그램 진행의 완충재를 마련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