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는 이때, 미국 정부의 도덕성에 상처를 줄 중요한 비밀 문건 하나가 최근 공개됐다. 최근에 와서야 기밀정보 분류에서 제외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당시의 베트남전 문건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닉슨은 1969년 10월 전군을 대상으로 극비리에 ‘핵 경고령’을 내렸다. 당시는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악전고투하던 때. 닉슨 행정부는 점점 불리해지는 전황과 거세지는 반전무드로 인해 무엇이라도 최종적인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곤궁한 처지로 몰리고 있었다.
▲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 ||
자료에 따르면 닉슨은 이해 10월13일부터 10월25일까지 전군 병력의 기동성과 유사 상황에 대한 준비 상태를 점검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아울러 베트남에서 소련과의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작전을 수행하라는 지시도 극비리에 내려졌다.
닉슨은 소련의 전투기들과 전함들을 철저하게 감시하라면서 이와 동시에 소련에게 미국이 최악의 경우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노력했다. 닉슨은 최종적인 순간에 가서 육군에게도 전투 태세에 돌입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할데만이라는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1969년 10월17일 이렇게 말을 했다. “미국은 모든 종류의 군사행동을 통해 소련과 북베트남에 타격을 주려고 했다.” 닉슨이 ‘미친 놈 전략’을 통해 진짜로 얻고자 했던 것은 북베트남에 무력시위 수위를 최고조로 올려서 파리에서 진행될 평화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따내려는 것이었다.
닉슨은 이때까지도 소련만 압박하면 남베트남을 계속 자신들의 손 아래 둘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하고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번에 공개된 기밀문서에는 ‘미국은 베트남에서의 군사행동을 점차 확대하면서 파리에서 북베트남의 비협상적인 태도를 벌주려고 했다’고 적혀 있다.
물론 미국이 하고자 하는 체벌의 한가운데 핵폭탄이 있었다. 닉슨은 수 차례 소련과 북베트남 책임자들에게 ‘커다란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물론 그 경고는 먹히지 않았다. 당시 모스크바 당국은 미국에 특사를 급파해 ‘소련은 북베트남에 무기를 대주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이 같은 설명은 소련이 북베트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도 행사할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닉슨의 핵 위협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 자리를 마주한 북베트남 당국은 미국의 페이스에 조금도 말려들지 않았다.
닉슨의 위험한 장난은 결국 폭발지경에 이른 미국 내 반전무드와 점점 불리해지는 베트남에서의 전황 때문에 힘도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묻혀버리고 말았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