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김정남의 위조여권 발각은 후계구도와 관련, 고영희(오른쪽) 가 꾸민 것이라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 ||
일본의 주간지 <주간겐다이>는 요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새 애인’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총애하던 고영희를 버리고 요즘 김정일 위원장이 푹 빠져있는 사람은 기쁨조 출신의 ‘옥희’라는 20대 후반의 여성.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옥희를 처음 본 것은 2∼3년 전으로,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옥희를 딸처럼 귀여워해서 그녀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말만 하면 뭐든지 사다 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옥희는 과연 어떤 여성일까? 현재 그의 인물 됨됨이나 성격에 대해서는 두꺼운 베일이 둘러싸고 있어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주간 겐다이>는 2001년 7월26일부터 8월18일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옥희도 동행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방문 당시 김정일은 미녀로 구성된 4∼5명의 무희들을 대동하고 나섰다. 그중 한 명이 새 애인인 옥희다. 이동하는 중에도 옥희로 짐작되는 여성이 김정일 옆에 바짝 달라붙어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남북회담에서도 부인을 동반하지 않았다. 러시아 방문에 애인을 동행시켰다고 하는 것은 옥희에 대한 김 위원장의 애정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금까지 네 명의 여성을 아내로 두었다. 첫 번째 부인 홍일천과는 1969년 이혼했고, 둘째 부인 성혜림은 우울증으로 모스크바에서 지난해 5월 숨을 거뒀다. 세 번째 부인인 김영숙은 김정일 전속 타이피스트로서 지금도 건재하다. 넷째 부인 고영희는 김정일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아내였다.
지난해 말에는 “존경하는 어머니는 돌 위에서도 꽃을 피우게 할 정도의 진심으로 최고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며 조선인민군 내부 학습자료로 우상화작업을 진행시켜 군과 국민으로부터 숭상받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고영희는 일본에서 벌어졌던 귀국사업의 일환으로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 현재 후계자 후보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김정철을 낳았다. 고영희도 옥희와 마찬가지로 기쁨조의 무희로 활동하면서 김정일을 처음 만났다.
오사카에 있는 한 조총련 관계자는 “고영희가 김정일의 아내가 되기 이전에는 재일동포 귀국자는 조선노동당 입당도 허가되지 않을 정도로 냉대를 받았다. 그러나 고영희가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게 된 후부터는 달라졌다. 고영희는 재일교포들의 ‘별’이다.
만약 고영희가 낳은 김정철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된다면, 조총련은 조직적으로 지원을 재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영희는 한때 ‘후계자의 어머니’로 불리며 군사력까지도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최근 고영희가 정치적 발언권을 잃고 거의 연금상태에 있다는 놀라운 정보가 입수됐다. 한 조총련 간부에 의하면 고영희의 ‘연금상태’는 이미 1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관해서는 김정남의 모친 성혜림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에 억류되어 있다는 설과, 평양 시내에 있는 자택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상태라고 하는 여러 가지 설이 나돌고 있다.
‘국모’로 추앙받던 고영희의 신세가 이처럼 급박하게 변모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김정남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5월, 김정일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위조여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입국하려다 체포, 강제송환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까지 김정남은 김정일 위원장의 차기후계자로 인식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김정남은 아버지의 화를 사게 됐고, 후계자 경주에서 크게 후퇴하게 됐다. 이후 김정남 대신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고영희가 낳은 차남 김정철. 문제는 김정남의 밀입국 정보를 과연 일본이 어떻게 눈치챘는가에 있다.
“김정남은 여권심사 전에 붙잡혔다. 당시 김정남은 싱가포르에서 일본으로 들어왔었는데, 싱가포르를 나온 시점에서 일본 공안 관계자에게 정보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정보를 흘린 것은 미국 CIA라고 하는 얘기가 있지만, 한편에서는 북한 내의 고영희 일파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
2001년에 일어났던 이 사건 전에도 김정남은 몇 번이고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무사히 입국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왜 유독 그때만 발각되게 되었던 것일까? 바로 이 점에 후계자 문제가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주간겐다이> 보도에 따르면, 김정남은 2002년 2월16일에 정식으로 후계자로 공표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2월16일은 김정일 위원장이 환갑을 맞는 60번째 생일날. 김정일도 김일성 주석의 환갑 생일날에 차기후계자로 지명받았던 터였다. 그런 김정남이 후계자 발표를 겨우 9개월 앞두고 체포되었던 것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일본의 한 정치부 기자는 “고영희가 연금되어 있다는 것은 이 사실이 김정일에게 발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하루아침에 찬밥신세가 된 고영희. 그는 다시 ‘국모’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나운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