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전투력 ‘알파고 이상’…중국 개발 ‘줴이’ 포함 인공지능 토너먼트 가시화
23일 일본 오사카 일본기원 관서총본부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 최종일 3차전에서 박정환 9단이 중국 미위팅 9단(21)에게 19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첫날 일본의 이야마 유타, 둘째 날 인공지능 ‘딥젠고’에 힘겹게 역전승한 박 9단은 최종국에선 미위팅 9단에 쾌승을 거두고 2015년 2월 LG배 우승 이후 2년 1개월 만에 세계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한편 유일한 인공지능 참가자 일본의 딥젠고는 3위를 차지했다. 딥젠고는 미위팅과 박정환에게 연속으로 역전패를 당했지만, 최종 이야마 유타 9단에게는 23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딥젠고는 미위팅, 박정환 9단과의 대국에선 종반 끝내기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노출했지만, 3국에서는 하루 만에 문제점을 개선한 듯 일본의 일인자를 가볍게 눌렀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 일본의 바둑 이야기를 되짚어봤다.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딥젠고를 누른 박정환 9단.
대회 둘째 날 열렸던 박정환 대 딥젠고의 대국. 중반까지는 일방적으로 딥젠고가 밀어붙이는 흐름이었다. 중앙을 중시하는 딥젠고의 호방한 수법에 박정환은 쩔쩔맸고 돌을 거두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알파고와 달리 딥젠고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종반 ‘끝내기’가 그것이었다. 딥젠고는 넉넉히 이겨 있던 바둑을 종반 말도 안 되는 수를 마구 남발하더니 불계패를 당하고 말았다. 역전이 된 다음 상황도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딥젠고는 이미 완성된 상대 집 아무 데나 침투해 들어가기도 하고, 의미 없이 단수를 쳐 보는가 하면 상대의 실수를 바라는 꼼수를 태연히 구사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인공지능과 대결 경험이 있는 이세돌 9단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중반까지의 운영은 딥젠고가 1년 전 알파고보다 강한 것 같다. 특히 박정환 9단과의 대국 좌변 백44부터의 일련의 수순은 인간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새로운 감각이었다. 인간의 감각을 믿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고 말하면서 “미위팅과의 대국 때도 그랬지만 종반은 치명적인 버그가 있는 듯 보인다. 알파고에 비해 CPU가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그 탓이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실수 많은 딥젠고, 그래서 더 매력적
판세가 역전되자 딥젠고는 ‘버그’에 가까운 터무니없는 수들을 연발했다. 수가 안 되는 상대방 집에 착수를 해 사석을 하나 더 보태주는가 하면 상대가 손을 빼면 수를 내려는 꼼수도 불사하지 않았다. 마치 인터넷 대국에서 매너가 좋지 않은 ‘악당’을 보는 듯했다. 지켜보던 이세돌 9단이 “스태프들이 말려야 하지 않나요?”라고 말할 정도.
이에 대해 가토 히데키 딥젠고 개발자는 “버그는 아니다. 학습 부족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구글이 막대한 자본과 개발 인력을 알파고에 쏟아 부은데 반해 딥젠고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고 도쿄대, 유수 IT기업 드왕고도 뒤를 받쳤지만 마지막 오류를 손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딥젠고의 도전은 가치가 있었고 알파고보다 더 친근감이 느껴져 인간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비록 실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너무나 기계적인 계산으로 인간을 질리기 만든 알파고보다 딥젠고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
#전투력은 알파고보다 강해
앞서 이세돌 9단이 말했듯 딥젠고의 전투력은 알파고의 그것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몇 개의 장면도를 통해 딥젠고의 막강한 전투 능력을 조명해보자.
1도
<1도> 백1의 붙임이 이번 대회 딥젠고가 보여준 가장 화려한 수법. “이 수를 당한 이후부터는 도저히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는 박정환의 국 후 감상이 있었다. 이세돌 9단 역시 대국 당시에는 A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흑도 좌변을 전개한 수로는 백1로 높게 갔어야 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2도
<2도> 이후의 수순. ▲가 하변 백 모양을 견제하고 있어 백도 둘 만하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가 거의 폐석화돼 지금 시점에서는 백이 주도권을 잡았다. 근거를 얻기 위해 흑1로 붙여야 하는 흑의 모습이 궁색하다.
3도
<3도> 흑1에 뜬금없이 백2로 따낸 것이 논란을 일으켰다. A나 11로 강력하게 공격할 장면에서 너무 한가하지 않느냐는 지적. 반면 흑3부터 11로 용을 써 봐도 흑은 어차피 미생이고 이후 수십 수가 지난 이후에도 백이 좋았으니 침착한 한 수였다는 의견이 맞섰다.
4도
<4도> 딥젠고(흑)-이야마 유타의 대국. ▲ 넉 점을 버림돌로 중앙에 세를 쌓은 후 다시 우하귀를 백에게 내준 다음 흑20까지 중앙에 세를 쌓는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수순. “다케미야 9단의 ‘우주류’보다 세련됐다”는 프로기사의 감상이 있었다.
#인공지능 줴이(絶藝)도 있다
지난 19일 일본에서 막을 내린 세계 컴퓨터 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중국의 인공지능(AI) ‘줴이’. 알파고 충격 이후 바둑 종주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중국이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줴이는 결승에서 딥젠고에게 승리를 거뒀다. 우리말로 ‘절예(絕藝), 뛰어난 기예를 뜻하는 이름인데 알파고와 같은 딥러닝 기술을 탑재, 첫 출전에 왕좌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후 바둑을 접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딥젠고, 절예가 등장하면서 다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인간과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섞여서 토너먼트 세계대회를 치를 수도 있고, 인공지능끼리 대결하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봄직하다는 것.
체스에서 인간을 이긴 인공지능은 사라졌지만, 바둑 인공지능의 행보는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다. 바둑의 인공지능 광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