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전적 2승1패’ 신 9단, 연하와 첫 메이저 결승…“장고 속기 둘다 대비, 재밌는 대결 될 듯”
6일 중국 청두(成都)에서 열린 제1회 난양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에서 백을 쥔 신진서 9단이 중국 랭킹 3위 당이페이 9단을 상대로 백으로 4집반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신진서는 이번 대회에서 판팅위, 롄샤오, 구쯔하오에 이어 당이페이까지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파죽의 4연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중국의 차세대 에이스 왕싱하오 9단(20)과 맞붙게 됐다. 왕싱하오는 준결승에서 자국의 리친청 9단을 불계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올해 창설된 난양배는 중국바둑협회와 싱가포르바둑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새로운 메이저급 세계대회다. 싱가포르 사업가 슝팡준(중국 쓰촨성 바둑협회 주석)의 후원으로 개최되며, 우승 상금은 25만 싱가포르달러(약 2억 5800만 원)다.
난양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세계대회 최초로 피셔룰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체스의 황제라는 바비 피셔의 이름에서 유래한 피셔룰은 최근 바둑대회에서도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이는 기본 제한시간을 짧게 주되, 수를 둘 때마다 자신의 제한 시간이 늘어나는 방식이다. 기존 초읽기 방식과 달리 시간을 적립할 수 있어 시간 운영을 더욱 전략적으로 하고 대국 종료 시점을 예측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기본 2시간에 매 수 15초의 추가 시간이 주어졌다.
내년 2월 싱가포르에서 열릴 결승 3번기는 세계 바둑계의 현재와 미래가 맞붙는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전망이다. 2000년생 신진서 9단이 자신보다 연하인 기사와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전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왕싱하오는 신진서보다 네 살 어린 2004년생이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왕싱하오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중국은 일찍부터 세계최강 신진서 9단의 대항마로 왕싱하오를 주목해왔다. 그는 2022년 초 제7회 TWT 대회 결승 3번기에서 신진서를 2-1로 제압하며 전 세계 바둑계에 충격을 안겼다. TWT 대회가 비공식 인터넷 기전이었음에도 신진서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왕싱하오의 실력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두 기사는 공식전에서 신진서 기준 2승 1패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삼성화재배 본선 32강에서는 신진서가, 올해 7월 응씨배 본선 16강에서는 왕싱하오가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가장 최근 있었던 2024년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다시 신진서가 승리를 거뒀다.
난양배를 지켜본 한 바둑 관계자는 “신진서 9단은 현대 바둑의 정수를 보여주는 기사다. AI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한 기사로 평가받으며, 초반의 안정적인 포석부터 중반의 치밀한 실리 운영, 그리고 끝내기의 정확한 계산력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반면 왕싱하오 9단은 과감한 전투력과 창의적인 착상이 돋보이는 공격형 기사다. 20세의 젊은 나이에도 운영이 상당히 노련하며, 특히 중반 전투력은 신진서 9단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며 결승전의 팽팽한 승부를 예고했다.
준결승 직후 신진서는 “왕싱하오 9단은 언젠가 결승전에서 만나야 할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붙게 됐다. 피셔룰 때문에 결승전을 대비해 장고와 속기 둘 다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재미있는 결승전이 될 것 같은데 잘 준비해서 꼭 우승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에 왕싱하오는 “세계대회 결승 진출이 처음이라 정말 기쁘고 신기하다. 결승전은 도전자의 자세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상대가 정말 강하지만 내가 가진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신진서와 왕싱하오의 제1회 난양배 결승 3번기는 2025년 2월 25일부터 3월 2일까지 싱가포르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승부처 돋보기] 제1회 난양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
흑 당이페이 9단(중국) 백 신진서 9단(한국) 293수끝, 백4집반승
[장면도] 흑1, 결과적으로 패착
백을 든 신진서 9단이 줄곧 유리했으나, 직전 백△ 두 점이 흑의 수중에 떨어져 다시 미세해진 국면. 여기서 반상최대로 보이는 흑1이 결과적으로 이 바둑의 패착이 됐다. 그렇다면 흑은 어떻게 두었어야 했을까.
[실전진행] 배짱에 물러서다
흑1에 백2·4를 선수한 백은 6 이하 12까지 좌하에서 다시 수를 낸다. 당이페이가 이 수를 못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진행은 이후 흑A로 잡으러가면 백B~흑E의 수순으로 패가 된다. 설마 백이 패를 각오하랴 싶었던 것. 하지만 신진서는 배짱으로 승부수를 던졌고, 한참을 고심하던 당이페이는 잡으러가지 못하고 흑13으로 물러나면서 사실상 이 장면에서 승부가 갈렸다.
[흑의 최선] 흑, 재미있다
역시 흑1로 뒷맛 없이 지켜두는 것이 컸다. 백은 이 장면에서도 손을 빼서 버틸 수 있겠지만, 흑A로 잡으러가는 노림이 있어 부담스럽다. 만일 백이 A로 가일수한다면 흑이 약간이라도 재미있는 형세였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