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법인 설립·현지인 필수 고용 등 넘어야 할 산 많아…위법 숨기고 웃돈 받는 브로커들 문제
tvN 리얼리티프로그램 ‘윤식당’ 화면 캡처
tvN 리얼리티 프로그램 <윤식당>은 그런 사람들의 꿈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윤식당>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의 롬복에 딸린 자그마한 섬 길리 트라왕간에서 배우 윤여정을 사장으로 한 자그마한 식당을 경영하는 플롯으로 꾸며졌다. 바다를 앞에 두고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며, 그날그날 번 돈으로 다시 내일의 장사를 이어나가는 식이다.
숙소에서 식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비춰지는 남국의 바다와 하늘, 숲은 힐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넘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득 채웠다. 여기에 한국 음식인 불고기와 라면에 손님들이 반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니 한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까지 생겨난다. 소소하게 한식당 창업을 해도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중박’ 정도의 성공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이들의 꿈과 희망에 헛된 바람을 넣는 사람들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바로 해외 창업 브로커들이다. 각종 해외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 국가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늘어나면서 해외 창업에 대한 열기도 덩달아 높아져 왔다. 그러다 보니 해외 창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귀에 단 말만 늘어놓으면서 사기를 치고 빠지는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
지난 16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윤식당>과 인도네시아 창업에 관련된 글이 올라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글쓴이는 “<윤식당> 방송 날이면 어김없이 스마트폰 메신저로 인도네시아 창업을 물어보시는 분들로 메신저가 터질 지경”이라며 “남국에서 간단한 장사를 하면서 여유 있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현실적으로 아주 힘들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글쓴이는 인도네시아 식당 창업이 어려운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첫째로 식당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외국인이 사업체를 운영하고자 할 경우 개인 사업자가 아닌 법인 사업자에게만 허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법인 사업자를 운영하려 하더라도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은 지분 비율이 49%를 넘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현지 보증대리인이 최대 지분을 소유해야 한다. 만일 개인사업자로 운영하고자 하더라도 반드시 주식회사 형식으로 설립해야 한다. 이 경우 역시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최대주주가 된다. 믿을 만한 현지인 파트너가 없다면 창업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간신히 현지인의 이름으로 된 식당 허가를 받더라도 창업 비자를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식당 직원으로는 비자를 받을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발급을 받아야 하는데 불법 루트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불법임이 드러난다면 창업을 위해 쏟아 부은 자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맨몸으로 쫓겨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부동산 임대가 어렵다는 점도 꼽았다. 해외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은 <윤식당>처럼 해변 가에서 남국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처럼 해변 가에 위치한 식당들은 대부분 무허가이거나 가건물이라는 것. 애초에 허가를 받고 건물을 임대하려고 해도 운영 당사자에게 인도네시아 거주비자가 없다면 합법적인 임대가 되지 않는다고 글쓴이는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윤식당>처럼 해변에서 소소하게 장사할 수 있다”라며 해변 가건물에 권리금을 붙여 매매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이야기다.
해외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윤식당’처럼 창업을 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더욱이 <윤식당>은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의 협의를 거쳐 철저하게 수익과는 연관이 없는 프로그램 제작을 주장해 현지 정부로부터 허가를 얻은 케이스다. 촬영비자를 받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만큼 그들이 식당 운영으로 얻는 수입은 당연히 ‘0원’이어야 한다. 하루에 번 돈은 모두 그날 식당 운영을 위한 재료비로 사용하므로 프로그램이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윤식당>이 보여주는 화면만으로 창업의 청사진을 내세우는 브로커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TV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나라에 대한 국내 관심이 높아져 관광객들이 증가하면서, 해당 국가에 창업 붐이 일었다가 그와 맞물린 브로커 사기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방송만 믿고 섣불리 뛰어들 시장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국 관광객이 있고 방송으로 입소문을 탄 곳이니 성공할 것이라는 브로커들의 말을 무작정 믿으면 안 된다고도 조언했다.
실레로 지난 2014~2016년 체코, 크로아티아 등 중남부 유럽에서 한국인 여행객이 급격히 증가하자 해당 국가에서 창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주로 한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한인 민박(게스트하우스)이나 한식당을 창업 아이템으로 삼고 현지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봤다.
창업 브로커 사기에 휘말린 피해자들은 주로 중간소개업자를 통해 현지 법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한인민박이나 식당을 인수했다가 뒤늦게 불법 신고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는 이유로 브로커에게 웃돈까지 줬다가 고스란히 불법 업체를 떠안게 된 케이스다. 법인 등록을 마치더라도 시설 내에서 요리를 허용하는 민박의 경우 반드시 관계기관에 신고해야 하는데도 이를 숨겼다가 뒤이어 인수한 사람이 벌금을 무는 등 손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한 해외 창업 사기 피해자는 “(브로커들이) 방송 덕분에 한국인 관광객은 증가하는데 이들을 위한 한인 식당이나 민박집은 태부족한 현실을 보여주면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면서 “일부 까다로운 창업 조건이 있을 경우에도 ‘이전 사업자도 이런 식으로 사업했다. 문제가 안 된다’라며 위법 사항을 얼버무리고 매매에만 급급했다. 나중에 아무 것도 모르고 사업체를 인수한 사람만 이전 사업자의 위법까지 덤터기를 쓰게 되는 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해외 창업 시 절대 현지 교민이나 중간 업자들의 말만 맹신하지 말고 스스로 현지법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해외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은 한국인’이라는 말은 슬프지만 맞는 말”이라고 조언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