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실규명지원단 기자회견
5·18 기간 헬기 사격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장악한 육군본부의 80년 5월22일 ‘헬기 작전 계획을 실시하라’는 공식적인 작전지침에 의거, 사전에 기획돼 실행됐음이 37년만에 확인된 것이다.
15일 광주시와 5·18 진실규명지원단에 따르면 1980년 5·18 당시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은 도청 진압 작전이 전개된 5월27일 새벽 4시부터 5시30분 사이 61항공대 202, 203대대 소속 UH-1H 기동헬기에 의해 M60 기관총으로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일빌딩 등 5·18 기간 헬기 사격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장악한 육군본부의 1980년 5월22일 ‘헬기 작전계획을 실시하라’는 공식적인 작전 지침에 의거, 사전에 기획돼 실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발포 명령자 등 미해결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결국 밝혀내지 못해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날 광주시 5·18 진실규명지원단은 광주시청 3층 브리핑룸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은 진실규명지원단 연구분석반 연구자와 일문일답이다.
-전일빌딩에 헬기 사격을 한 부대는 어디인가.
“61항공단 예하 202, 203대대 소속 UH-1H헬기이며, 정비사(무장사수)가 전일빌딩에 M60 기관총 수백 발을 사격했다. 연구분석반이 조사를 진행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으로부터 전일빌딩 탄흔은 ‘호버링 상태 헬기 공중사격’ ‘M60기관총 탄흔’이라는 결정적인 조사 결과를 통보 받았다. 국과수 조사 결과에 따라 역으로 군 기록과 증언을 청취했는데, M60을 장착할 수 있는 헬기는 ‘UH-1H’ 기종뿐이며, 이 기종을 운용하는 부대는 1항공여단 예하 61항공단임을 밝혀냈다. 추가로 군 작전 문서와 61항공단 예비역과의 면담 등을 통해 출동 부대는 202, 203대대로 확인했고, 동시에 검찰 진술조사를 통해서 재확인했다.”
-구체적인 헬기 부대편제와 출동 경위를 말해 달라.
“1980년 광주에 투입된 헬기는 제1항공여단(여단장 송진원 준장) 예하의 31항공단(단장 방영제 대령)과 61항공단(단장 손승열 대령)이다. 31항공단은 103대대(AH-1J: 일명 코브라 헬기)와 500MD를 운용하는 501대대~506대대로 편제됐으며, 이들 대대 가운데 1항공여단의 직할 부대인 103대대, 501대대와 2군사령부에 작전 배속된 506대대가 광주에 출동했다. 61항공단은 UH-1H(수송용 헬기)를 운용하던 기동부대로 예하에 201~205대대가 있으며, U-6헬기를 운영하는 601대대가 있다. 이 중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초일리에 주둔 중이던 202대대, 용인에 주둔하던 203대대가 광주에 출동했다. 신군부가 장악한 육군본부와 1항공여단장의 출동명령에 따라 광주에 투입됐다.”
-21일 광주에 헬기가 처음 투입됐는데 첫 작전은 뭔가.
“1항공여단 지휘관의 진술이 엇갈리나, 당시 헬기 부조종사의 검찰 진술이 진실에 상응하다고 판단한다. 부조종사의 진술을 보면 21일 첫 작전은 도청에 고립상태인 공수대원을 헬기를 통해 빼내오는 것이었다. 즉 당시 광주에 투입된 UH-1H헬기 전체가 동원, 8~10대 종대형으로 고도 1000을 유지한 채 도청 일대에 접근했으나 현장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어 작전을 취소했다. 헬기가 도청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증언도 많았다. 대표적인 증언이 고 조비오 신부이다. 21일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말씀드린다.“
-전일빌딩에 대한 구체적인 사격 시점은.
“연구분석반이 군 기록 및 증언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사격 시점은 1980년 5월 27일 04시~05시30분 사이이다. 특히 군 문서를 보면 전일빌딩과 YWCA에서 교전이 벌어진 오후 5시 16분 무장헬기의 무력시위가 전개됐다고 기술돼 있다. 광주 시내 한 복판에 헬기가 기동한 것은 21일과 27일이 유일한데, 27일 새벽 도청 진압작전을 기록한 군 작전일지에 등장한다. 증언자들도 27일 새벽에 헬기를 목격했다고 말한다.”
-전일빌딩에 사격한 헬기인 UH-1가 실제로 27일 기동했다는 근거는.
“27일 UH-1H헬기의 기동 사실은 당시 전남도청 후문에서 시민군으로 경계를 섰던 김모씨와 당시 광주시 서구 사동에 거주했던 이모 씨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다. 이들이 정확하게 헬기 기종을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동일하게 헬기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뛰어내렸다고 증언했다. 당시 헬기 기종 상 병력이동이 가능하고, 헬기 레펠이 가능한 헬기는 UH-1H 밖에 없었다.”
-전일빌딩에 사격을 한 이유는 뭔가.
“당시 신군부 지휘부는 도청진압 작전을 수립하면서 사전에 첩보를 수집했는데, 그 때 11공수여단 특공대가 점령할 목표인 전일빌딩에는 3명의 시민군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막상 진압작전에 들어가자 전일빌딩과 주변 건물에 최소 40~50명의 시민군이 치열하게 저항, 도청에서는 상황이 거의 종료됐음에도 전일빌딩 쪽에서는 1시간 정도 교전이 벌어졌다. 진일빌딩에 13명의 시민군과 자동화기가 설치된 점을 감안할 때 공수부대의 진압 작전에 앞서 헬기 공중사격을 통한 사전 진압이 요구됐을 뿐 아니라, 1시간 동안 진행된 치열한 교전 상황이 공중 화력 지원을 필요로 했을 수 있다.”
-전일빌딩 이외에 헬기 사격은 있었나.
“연구분석반 연구진들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일어났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다만, 전일빌딩처럼 물증이 없고 정황만 있을 뿐이다. 우리 연구진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군부는 수차례에 걸쳐 헬기 지휘관에게 헬기 사격을 명령했고, 실제로 코브라 헬기가 출동했으나 현장 상황이 맞지 않아 철수한 적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5월23일 최웅 11공수여단장의 제압 사격 요청이었다. 11공수여단이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민군의 공격을 받자 공중 제압을 요청한 것인데, 실제로 AH-1J(일명 코브라) 2대가 출동했으나 지상에 보병학교 병력이 산개해 있어 사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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