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TV토론에 나선 부시 대통령(오른쪽)과 케리 후보. 로이터/뉴시스 | ||
TV 토론회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지 W 부시 대통령(58)에게 뒤지고 있던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60)가 세 차례에 걸친 토론회 끝에 완승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미 대선 구도는 그 누구도 쉽게 승패를 점칠 수 없는 ‘안개 속 형국’이 되고 말았다.
‘토론의 달인’이라는 명성답게 케리 후보에게 있어 TV 토론회는 대세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민주당측이 기대했던 대로 케리 후보는 매회마다 자신감 넘치는 어조와 제스처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반면 부시 대통령은 다소 신경질적이고 불명확스러운 태도로 그다지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던 것.
이밖에도 이번 토론회에서 주목할만한 부분 중에 하나는 후보들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가령 부시 대통령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꼼꼼하고 신중하게 메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케리는 시청자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얻었지만 간혹 멍하니 앉아있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부시 대통령은 그만 점수가 깎이고 말았던 것.
그렇다면 역대 미 대선 중 TV 토론회를 통해 당락이 결정되었던 경우는 언제였을까. 지금까지 미 대선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평가될 만큼 흥미진진했던 TV 토론회를 살펴 보았다.
2차대전이 끝난 후 급속하게 보급되었던 TV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좋은 예. TV 토론회의 효시였으며, 당시 민주당의 ‘젊은피’ 케네디와 ‘노련미’를 앞세웠던 공화당의 닉슨이 맞붙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는 잘생긴 외모와 자신만만한 제스처, 그리고 뛰어난 언변으로 시청자를 매료시켰던 케네디의 승리로 돌아갔다. 토론회 직전까지 절대적인 우세가 점쳐졌던 닉슨은 ‘젊은’ 케네디를 의식해 공들여서 ‘메이크업’까지 하고 나왔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뜨거운 조명 때문에 그만 메이크업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던 것.
게다가 무릎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활기 넘치는 케네디와 대조적인 모습을 이루었던 것이 패배의 요인으로 평가되었다.
2. 1976년 지미 카터 vs 제럴드 포드
한동안 대선후보들이 기피해온 까닭에 무려 16년 만에 부활되었던 TV 토론회.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포드의 결정적인 말 실수 하나가 당락을 결정지었다.
외교문제에 관해 토론하던 중 포드가 “동유럽은 소련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는 등 실언을 한 데 반해 카터는 해박한 전문지식을 총동원한 조리있는 말솜씨로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 모아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던 것.
하지만 최근 자신의 저서에서 “1976년 당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지 몰랐다”고 언급했던 카터는 자신이 TV 토론회 직전 영화배우 겸 제작자였던 로버트 레드퍼드로부터 토론회에 참가하는 ‘요령’에 대한 특별훈련을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또한 그는 “레드퍼드가 닉슨과 케네디의 TV 토론회 테이프를 갖고 와 여러 차례 반복해서 틀어 주면서 꼼꼼히 지도해주었다”고 말하면서 “만일 레드퍼드가 없었다면 나는 승리할 수 없었다”고 말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3. 1980년 지미 카터 vs 로널드 레이건
토론회 전까지 여유롭게 앞서가던 후보가 토론회 후에 지지도가 떨어져 결국 참패를 당한 전형적인 경우.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민주당의 카터보다 한 수 위였던 공화당 레이건 후보의 ‘말발’이 톡톡히 효과를 보았다. 특히 토론회 도중 레이건이 방청석을 향해 “여러분, 4년 전보다 지금이 더 살기 좋아진 것 같습니까?”라고 던진 질문에 사람들이 “아니오”라고 또렷하게 답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전세를 한방에 엎어버렸던 것.
또한 카터가 레이건의 말꼬리를 잡거나 공격할 때마다 “또 시비를 거시는군요”라며 상대를 속 좁은 사람으로 인식시킨 것도 절묘한 효과를 거두었다.
4. 1992년 빌 클린턴 vs 조지 부시
제스처 하나로 백악관의 주인이 교체된 경우. 작은 몸동작 하나가 얼마나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토론회가 끝나갈 무렵 몇 차례에 걸쳐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 문제였다.
마치 토론회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듯 수시로 시계를 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으며, 이런 실망감은 곧 표심으로 이어졌다.
5. 앨 고어 vs 조지 W 부시
민주당 고어 후보가 내용면에서는 월등히 앞섰는데도 불구하고 불성실한 태도와 표정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패하고 만 경우.
토론중에 계속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거나 부시가 질문에 답하는 동안 마이크에 대고 한숨을 내쉬는 등 무례한 행동을 일삼아 시청자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던 것. 결국 고어는 시청자들에게 ‘건방지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던 반면 부시는 상대적으로 ‘친절하고 자상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