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다 빼내기 전에…’ 등잔 밑서 뻐끔뻐끔
지난 4월 13일 수원의 한 호텔 객실에서 20대 남성이 사망했다. 이 남성은 오후에 쓰러져 있는 상태로 여자친구에게 발견됐다. 여자친구가 즉시 호텔 측에 알렸고, 호텔 관리인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는 병원으로 이송하며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러나 끝내 남성의 호흡과 맥박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객실 내 침대에서는 고무관이 연결돼 있는 휘핑기와 휴대용 아산화질소 가스통, 풍선 등이 발견됐다.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기 위해 준비한 기구로 보여진다.
캡슐 형태의 아산화질소는 121개가 발견됐는데, 이 가운데 사용한 흔적이 있는 캡슐은 17개, 사용하지 않은 캡슐은 104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해부학적 사인으로는 확실하거나 분명하지 않았지만 아산화질소 중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 역시 주변인 진술과 사건 정황 등을 고려했을 때 타살 혐의점이 없었고, 남성이 자살 목적 없이 아산화질소를 흡입하다 사망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아산화질소를 흡입할 경우 급성, 만성 중독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의 임영수 교수는 “아산화질소는 매우 빨리 체내에서 배출되기 때문에 자체에 의한 급성 중독의 가능성은 없지만 저산소혈증으로 인해 뇌와 심장의 산소농도가 저하되면서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며 “이러한 심정지 시 얼마나 빨리 목격하여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임 교수는 “이산화질소의 위험성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눌 수 있다”며 “급성의 경우 고농도의 아산화질소를 단독으로 흡일할 경우 폐포의 공기보다 확산속도가 매우 빨라 저산소증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저산소증으로 실신, 저산소성 뇌손상 등이 5분 이내에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병원에서 100%의 산소를 흡입하게 되면 저산소증을 막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저산소 혈증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임 교수는 “만성적으로 아산화질소를 흡입할 경우 비타민 B12 결핍증, 말초 신경병증, 척수병증, 뇌병증 증이 초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이전 보도에서도 해피벌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올해 초부터 언론보도를 통한 해피벌룬의 위험성이 지적돼 왔지만 규제나 처벌을 위한 관련법은 마련되지 않았다(일요신문 1297호 보도내용 참고). 기존에도 의사가 환자에게 시술 도중 아산화질소를 포함한 약물을 투입해 의료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재판부는 이때 아산화질소가 환각물질로 분류되지 않아 다른 약물에 대해서만 법리적 판단 대상으로 다뤘지만, 아산화질소의 과도한 사용에 대해서는 위험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해피벌룬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보도 이후에도 해피벌룬의 수요와 공급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산화질소의 위험성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먹지 않고도 술에 취한 느낌이 난다는 아산화질소 흡입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주점은 계속해서 해피벌룬을 판매했지만 해피벌룬에 대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건축물 위반 등으로 경고 및 행정조치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이후 실외에서 판매하는 개인판매자가 생겨났고, 직접 사서 호텔 등의 장소에서 파티를 벌이는 사례도 생겼다.
해피벌룬은 판매자들의 신원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책임 주체가 모호하다.
판매자들의 신원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해피벌룬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책임 주체는 모호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이태원 일대에서는 다수 외국인들이 구입하고 있어 응급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근 지구대 관계자는 “해피벌룬의 위험성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 근처에서 판매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며 “아직까지 인근에서 아산화질소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고 입법예고가 진행 중인 만큼 앞으로 단속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봄에는 대학교 축제에서 해피벌룬 매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일반인 남성 두 명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5000원을 받고 판매한 것. 이에 학교 측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판매했던 남성들로부터 사과를 받은 뒤 축제에 오지 않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난 7일 아산화질소를 환각 물질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화학물질관리법 시행령은 톨루엔, 초산에틸, 부탄가스 등을 환각물질로 정해 흡입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에 아산화질소도 포함된다면 법령이 개정되고 나서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환경부는 화학물질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이달 중 입법예고할 계획이며 늦어도 오는 7월 중에는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지도·점검 등의 방법으로 아산화질소 매매를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단속 장소는 유흥업소나 대학가 축제 행사장을 포함해 매매가 이뤄지는 온라인 상이다. 또 식약처는 아산화질소를 수입·소분하는 업체에 개인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 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제품의 용도 외 사용금지’라는 주의문구를 표시하도록 했다. 원래 의약품용 아산화질소는 의료기관 등의 취급자에게만 공급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대상이 아닌 경우 불법 유통으로 간주돼 약사법령에 따라 처분 및 고발 조치된다.
입법예고가 되기 전까지는 또다시 해피벌룬이 적발되더라도 단속이 불가능하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아직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어 입법예고 이전까지는 단속을 해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입법예고가 발표된 이후에도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아산화질소가 거래되고 있었고, 주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