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실 사진 1점 도자기 17점 ‘멸실 처리’ ‘정보공개’ 35년 동안 역대 정부 유일
청와대 본관 좌우에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MBC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대통령’ 화면 캡처.
청와대 미술작품엔 뒷이야기들이 가득하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이 TV에 나올 때마다 함께 등장한 미술작품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 뒤편으로 푸른색 바탕에 소나무가 시원하게 뻗어있는 그림은 언제나 눈길을 끌었다. 소나무 그림은 박영율 작가의 ‘일자곡선-합수’였다.
원래 국무회의실엔 수년 동안 다른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2001년 7월까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민화 ‘일월곤륜도’가 전시됐지만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란 비판을 받았다.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모를 거쳐 ‘일자곡선-합수’로 국무회의장 그림을 교체했다.
당대 최고 작가들도 ‘청와대 컬렉션’에 이름을 올렸다. 청와대 본관 1층엔 조선시대 어가행렬도를 재현한 유양옥 작가의 ‘행차도’가 걸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식당인 충무실 동쪽에는 이병숙 작가의 ‘진연도’ 병풍이 놓여 있고 김기창 작가의 ‘산수’와 서세옥 작가의 ‘백두산 천지도’가 있다고 한다.
국가원수급 외빈이 찾아올 때 자주 보이는 그림들도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고이즈미 일본 전 총리가 청와대를 방문할 때 나정태 작가의 ‘십장생도’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그림 3점 정도를 청와대에 걸어둔 기록들이 있다”라고 회고했다.
청와대는 약 500점 이상의 미술작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미술관’을 방불케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수석비서관회의, 국무회의 등에서 언론에 공개된 그림 이외에 어떤 그림이 걸려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보좌관은 “지난 20년간 청와대에 수없이 드나들면서 미술작품을 많이 봐왔다. 청와대 비서동 등 건물 복도와 곳곳에 판화, 유화 등 미술작품이 있었다. 대부분 지나치면서 봤기 때문에 작품 출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청와대 미술작품의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5월 15일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정보공개법 제3조는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하여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적극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한다. 청와대 미술작품도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포함된다.
하지만 청와대는 미술작품 수량만을 표시한 ‘반쪽’짜리 정보만을 공개했다. 청와대 비서실이 제공한 ‘대통령비서실 미술품의 종류별 보유수량 현황’에 따르면 한국화(134) 서양화(115) 서예(29) 사진(32) 조각품(13) 도자기(149) 공예품(67) 판화(57) 기타(8) 등 총 604점의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소장 경로 등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6호, 제7호, 제8호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 작품명, 작가이름, 금액 등 상세정보를 공개할 경우 미술품의 가치, 작가의 인지도 등에 영향이 있어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 법인, 단체, 개인의 경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 공개될 경우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도 있다”라고 밝혔다.
정보공개법 제9조는 비공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예외를 인정한다. 제9조 1항 6, 7호는 “성명 등 개인에 관한 사항이 공개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 공개로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제9조 1항 8호에 의하면 “공개될 경우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 등으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도 비공개 대상에 포함된다.
청와대 경호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호실이 현재 관리 중인 미술작품은 총 145점으로 한국화(39) 서양화(35) 서예(13) 조각(3) 도자기(47) 공예품(5) 수석(3)이다. 경호실은 1982년~2017년 35년간 미술품의 취득과 반출 시기를 공개했지만 작품명과 작가이름, 가액, 소장 경로 등은 밝히지 않았다.
경호실 자료에선 흥미로운 대목도 보인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경호동 미술작품 18점이 줄어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전까지는 163점의 미술작품이 있었지만 도자기 1점과 사진 1점(2014년), 도자기 16점(2017년)이 줄어들었다. 정보공개 시기 35년간 미술작품이 줄어든 것은 정부 중 박근혜 정부가 유일하다. 경호실 관계자는 “낡고 파손이 심해 미술품으로서 가치가 없는 도자기 17점과 사진 1점을 관련 규정을 거쳐 파쇄했다“라고 해명했다.
조달청에서도 청와대 미술품 현황에 대해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다. 조달청은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구매하고 공급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국가기관의 미술작품 관리도 조달청 소관이다. 조달청에 ‘청와대 미술 작품현황’을 청구했지만 관계자는 “법인·단체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일 수 있으므로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호에 따라 비공개한다”라고 밝혔다.
청와대의 비공개 결정은 다른 국가기관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앞서 <일요신문>은 국회를 포함해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17개 부처에 미술작품 목록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고, 이들 기관은 작품명과 작가이름, 가액, 소장경로 등 미술작품 출처를 상세히 공개했다. 국회사무처는 서봉한 작가의 ‘Korea Fantasia’ 등 미술작품 126점이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등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법무법인 <강>의 구주와 변호사는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적법하게 청와대에 납품한 것은 영업상 비밀이라고 볼 수도 없다. 영업상 비밀이라면 그 사유를 밝혔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청와대 미술품 정보 비공개조치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을 위한 정보공개법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 국민과의 소통하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청와대, 공개된 청와대를 강조하는 현 정부 방향과 완전히 역행하는 조치다”라고 비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미술품 현황 자료 단독공개] 1000만 원에 산 ‘과녁’ 1억으로 껑충 청와대는 미술작품 현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제공한 자료로 추정할 수 있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는 미술작품 관련 문서는 약 3000건이다. 이 중 작품 목록과 가액이 세부적으로 나와 있는 기록물은 대부분 비공개 처리가 돼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역대 정부마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은 미술작품을 꾸준히 관리했다. 1992년 2월 노태우 정부 총무수석비서관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는 신관, 동별관, 영빈관, 춘추관 등에 한국화(41점)과 서양화(53점) 서예(11점) 사진(5점) 등 총 110점의 미술작품을 소장했다. 미술품은 계절마다 수시로 교체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청와대 미술작품이 급증했다. 총무비서실이 작성한 ‘청와대 미술품 관리 업무 현황’에 따르면 2006년 3월 청와대 미술작품은 총 554개였다. 한국화(119), 서양화(109), 도자기(147) 판화(41) 공예품(64개) 등 미술작품 종류가 다양해졌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청와대 미술작품 개수도 약 5배로 늘어났다. 당시 미술작품이 가장 많이 설치된 곳은 청와대 본관(108개)이었다. 관저(37), 여민관(53) 상춘재(19) 등 순이었다. 청와대 수장고엔 미술작품 304점이 보관됐다. 노무현 정부 당시 비서동 옆 온실을 개조해 신축된 여민관에 꽤 많은 미술작품이 설치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9년 4월 이명박 정부가 작성한 미술품 관리대장에 따르면 청와대는 한국화(124) 서양화(113) 서예작품(27) 조각(10개) 판화(41) 도자기(147) 공예품(64) 기타(18) 등 총 미술작품 668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내 최고의 작가들 작품이 많았다. 도자기는 청화백자발각주병, 백자매화문항아리, 청자병 등 다양한 종류를 망라하고 있었다. 미술품 관리대장을 보면 흥미로운 점도 보인다. 청와대가 대통령 초상화를 꾸준히 구입해왔다는 사실이다. 1973년 박정희 정부는 김인승 작가의 이승만·윤보선·박정희 전 대통령초상화 3점(각각 1000만 원)을 구입했다. 1980년 청와대는 박득순 작가의 최규하대통령초상화(1000만 원)를 구입했다. 1987년 전두환 정부 때 청와대는 정형모 작가의 전두환대통령초상화(1000만 원)를, 1998년엔 김영삼대통령초상화(1000만 원)를 구입했다. 김대중대통령초상화(2000만 원)와 노무현대통령초상화(1500만 원)도 청와대에 걸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구입한 초상화(7500만 원)는 초상화 중에 가액이 가장 높았다. 미술품 관리대장에 따르면 청와대는 2004년 12월 미술품 178점에 대해 조달청 감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청와대 미술작품 중 감정 최고가는 김형근 작가의 ‘과녁’(1억)이었다. 청와대가 1985년 1000만 원을 주고 ‘과녁’을 구입한 뒤 약 19년 사이에 작품가액이 10배 뛴 것이다. 김형근 작가의 ‘얼’(구입당시 1000만 원)의 조달청 감정가는 8000만 원이었고 이대원 작가의 ‘비경’(1000만원)의 감정가는 7000만 원이었다. 2004년 조달청이 감정한 미술작품 178점의 감정가 총액은 23억 6600만 원이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