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2학년인 1974년경이다. 뜨거운 태양으로 달구어진 고려대학교 석조건물 꼭대기 탑 같은 방안에 이십 여명의 고시준비생들이 청춘을 담보 잡히고 촘촘히 붙은 칸막이 책상 앞에 달라붙어 있었다. 비쩍 마른 홍준표 학생은 책상위에 얼굴을 옆으로 붙이고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다.
상당수의 고시생들이 영양부족을 잠으로 때우고 있었다. 그는 꿈속에서 검사가 되어 거물급정치인들을 때려잡고 정계로 나가 당대표가 되고 대통령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1977년 여름이다. 한양대학교 법과대학건물의 어둠침침한 지하2층 은 구치소 구조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복도를 중심으로 한쪽은 몇 명의 고시생들이 매트리스를 깐 철제이층 침대에서 합숙을 하는 방들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그 맞은편은 칸막이 책상이 방방이 들어서 있었다. 고시생들은 끼니때가 되면 구내 병원식당에 가서 스테인 식판을 들고 밥을 먹었다.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발탁된 수재들이었다. 서울대학교 입학을 포기하는 대신 대학 전 학년 장학금에 숙식을 제공하고 용돈까지 지급됐다. 사시합격까지 먹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가 그들의 모토였다. 인근의 하천에서 시궁창 냄새와 파리가 지하2층으로 흘러들었다.
남자들이 있는 방들의 맨 앞쪽에서 여학생 서너 명이 같이 합숙을 하고 있었다. 바지를 반쯤 걷어 올리고 공부를 하던 대학 1학년생 추미애는 미모였다. 꽃잎이 피어나듯 막 시작한 청춘의 욕망을 누르고 사법시험의 합격을 위해 집념을 불태우는 것 같았다. 그녀는 판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당대표가 되는 꿈까지 꾸었을까는 잘 모르겠다.
가난한 집의 수많은 똑똑한 아들들이 불을 보고 덤벼드는 나방같이 사법시험에 인생을 걸었다. 고시잡지의 합격기는 산골암자의 뒷방에 있는 고시생에게 감동과 꿈을 심어 주었다. 고시에 합격한 노무현은 마을 산기슭에 토담집을 짓고 공부했다고 했다. 법서를 살 돈이 없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이빨이 부러지기도 했다고 했다.
경희대학교를 다니던 문재인은 복학 후 해남의 대흥사에 들어가 사법고시 공부를 했다고 했다. 데모를 하다가 체포되어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시합격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은 훗날 대통령이 되어 개천 밑바닥에 살던 미꾸라지도 구름위에 올라가 용이 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었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 사회라야 민주사회라는 생각이다. 조선의 과거제도 같이 사법시험 합격자들은 또 다른 판검사계급을 만들어내고 특권층을 형성했다. 시험에 한번 합격한 걸로 평생을 턱없이 높게 대접받고 잘 먹고 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부 좀 한다는 청년들이 고시촌을 형성하고 골방에 틀어박혀 곰팡이 슨 인생을 만들고 있었다. 나름대로 공부 선수 백명중 한명 꼴로 붙는 힘든 시험이었다. 학교시절 성적순으로 붙는 것도 아니었다. 행운의 여신이 한번 쯤 미소지어주지 않으면 천재소리를 듣던 사람들도 고배를 마셨다. 그걸 원했다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마음의 응어리는 뿌리 깊었다.
여러 가지가 복합된 배경 속에서 이제 사법시험은 없어지고 먼 추억 저쪽으로 흘러갔다. ‘아듀 사시’라는 신문의 한 컬럼을 보면서 이제는 예전에 본 흑백영화의 한 장면 같던 사법시험 준비시절을 떠올려 봤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