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자격을 따고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렸을 때 나는 전에 보았던 영화 ‘빠삐용’의 장면이 떠올랐다. 절망에 빠진 그런 사람들 몇 명만 자유의 땅으로 싣고 나르는 뱃사공이 된다면 소명을 다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나의 배를 타려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태우고 망망대해에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나의 배에 태운 사람은 남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의 절규를 들어주면서 같이 분노하고 함께 마음이 아파했다. 밤 열두시가 넘어 형광등이 파랗게 비치는 경찰서 형사과 철창 앞에서 나의 의뢰인과 나란히 앉아 있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지린내가 풍겨왔다. 나의 화두는 동행이었다. 변호사가 그렇게 할 때 그들은 마음을 흘려보내며 감사해 하는 것 같았다. 그들과 같이 감옥에 있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의 일은 나의 운명의 일부라고 여겼다.
그러나 얼마 후 내가 싣고 가는 배에서 내린 그들은 다시는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의 치부를 보인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풀려난 사기범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정말 애정을 가지고 변호를 했던 친구의 동생이다.
그는 건실한 것 같아 보였다. 감옥 안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 같았다. 매일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한다고 했다. 변호했던 친구의 동생은 석방된 후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정수기 한 대를 사달라고 했다. 외판원으로 다시 삶을 살려는 것 같아 주저 없이 사 줬다. 그는 미국수표를 맡기면서 워낙 급해서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바꾸어 주면 사흘 후에 갚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 주었다. 그 수표는 가짜였다. 그는 진정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품삯을 준다고 머슴 부리듯 교만한 사람들도 많았다. 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율법인지도 몰랐다. 수시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라는 자문을 하면서 살아왔다. 카알라일은 돈은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만 벌면 된다고 했다. 가난을 면하고 소박한 생활을 할 돈만 되면 욕심을 끊어내려고 노력했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려고 애를 썼다. 스치는 인연이지만 나의 나룻배에 타는 사람들과 미소를 나누고 정을 나누고 싶었다. 십년이 지나가고 이십년이 흐르고 어느새 삼십년이 넘게 고달픈 인생들을 태우고 고통의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 을 해 왔다. 오늘도 몇 년간 함께 분노하며 밤을 지새며 법정에서 싸워주던 사람들을 변호하는 마지막 법정이 있었다. 그동안 싸우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정이 들기도 했다. 법원에서 그들의 승합차를 얻어 타고 서초동 사무실근처까지 와서 내렸다.
“저는 법의 바다에 빠진 여러분을 배에 태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 일은 끝난 것 같으네요.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변호사님”
여러 사람이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했다. 사건이 끝난 건 시원하고 그들과 헤어지는 건 섭섭했다. 인생여정에서 잠시 같은 배를 타기도 하고 우연히 같은 여관에서 묵기도 하다가 이윽고 헤어지는 게 삶인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