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대장암 신호일 수도…고령자들 요주의
고령자에게 나타나는 빈혈은 건강이상을 알려주는 경고등이다. 사진은 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일요신문DB
도쿄에서 사는 마사키 씨(68)는 며칠 전 위험천만한 일을 겪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들러 혈액검사를 했는데,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다름 아니라 빈혈이었던 것이다. 마사키 씨는 “혈압도 높은 편이고, 마른 체형이 아니라서 솔직히 빈혈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빈혈대국 일본>의 저자이자, 신경과 전문의 야마모토 가나 씨는 “빈혈이 우리 몸의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경고등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노인에게 나타나는 빈혈이 특히 그렇단다. 그는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해 노인이 늘어난 만큼 빈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지러움뿐만 아니라 쉽게 피곤함을 느끼고 머리가 무겁다든지, 권태감, 식욕부진도 빈혈 증상이다. 하지만 젊을 때라면 모를까. 고령자들이 일상적으로 자주 겪는 증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단순 노화현상인지, 빈혈로 인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처럼 “뚜렷한 자각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방치하다 악화되는 케이스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빈혈이란 대체 어떤 질병일까. 흔히 갑자기 일어설 때 ‘핑’ 도는 느낌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빈혈이나 저혈압이라고 생각한다. 두 질환은 자주 혼동되지만, 원인부터 확연히 다르다. 일단 저혈압은, 피는 정상이나 피를 순환시키는 압력이 낮은 상태다. 반면 빈혈은 피, 정확히는 헤모글로빈이 부족해 몸에 산소가 결핍된 상태다. 따라서 산소 부족으로 쉽게 피곤해지며, 몸에서 힘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운동이나 등산을 할 경우 숨이 더 찰 수 있고, 가슴이 아프기도 한다. 또 현기증과 두통 같은 증상이 동반된다.
기본적으로 빈혈 여부는 혈액검사 수치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기준을 살펴보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남성 13g/dL, 여성 12g/dL 미만을 빈혈”로 정의하고 있다. 덧붙여 젊은 사람의 빈혈보다 고령자의 빈혈이 더 위험하다고 보는 이유는 다른 중병의 ‘신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령자의 철 결핍성 빈혈은 소화기관의 출혈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은 출혈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치질 등 만성적인 출혈이 원인이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것은 악성종양으로 인한 빈혈, 즉 암이다.
통계에 의하면 “고령자의 철 결핍성 빈혈 원인 35%가 위암과 대장암”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 아무리 철분제를 복용한들 다시 빈혈이 생기고 만다. 위장이나 대장 검사가 꼭 필요한데, 실제로 빈혈이 발단이 되어 악성종양을 발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고령자 빈혈 원인으로는 신부전도 빼놓을 수 없다. 잘 알려진 대로 신장과 혈액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신장은 체내 노폐물을 배출할 뿐만 아니라 적혈구를 만드는 조혈호르몬을 분비한다. 따라서 신장이 나빠지면 호르몬 분비가 저하되고 결국은 빈혈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최근 일본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이 ‘약의 부작용에 따른 빈혈’이다. 요통 및 무릎통증에 시달리는 노인들 중에는 진통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소화기관 출혈을 일으키거나 빈혈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또 위암이나 위궤양으로 위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후 체내에 비타민 B12가 결핍되거나 흡수 장애로 빈혈에 걸릴 수도 있다. 특히 이 같은 빈혈이 “치매증상을 동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끈다. 2015년 독일 연구팀이 남녀 4800명을 대상으로 인지기능과 빈혈 유무를 검사한 결과, 빈혈로 진단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인지기능 테스트 성적이 떨어졌다. 연구팀은 “빈혈이 있는 사람의 경도인지장애(MCI) 발생률이 일반인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편 빈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식사’가 중요하다. 식욕이 떨어지면 철분 섭취가 더욱 부족하여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에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식품은, 바로 고기(육류)였다. “고기에 포함돼 있는 철분은 식물성 식품의 철분보다 무려 3배가량 흡수가 잘 된다”고 한다.
해초류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해초류에서도 철분이 가장 많이 함유된 식품은 김이다. 이때 체내 흡수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령 채소류를 통한 흡수율은 많아야 10% 정도. 여성 기준치인 하루 12mg의 철분을 섭취해도 실제로 흡수되는 것은 약 1mg이다.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타민 C를 함께 먹는 방법도 있다. 수용성 비타민 C는 철분 흡수를 도와주므로 귤이나 키위 등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을 함께 먹으면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
덧붙여 철분이 많이 함유된 식품하면 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매일 간을 섭취하는 건 별로 권장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간기능이 저하된 노인은 주의가 필요하다. 인체기관 간장에는 본래 철분이 많이 축적돼 있다. 거기에 철분을 다량 섭취할 경우, 분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우려가 커진다.
또 간에는 지용성 비타민 A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를 과다섭취하면 피부건조와 권태감이 심해진다. 더욱이 임산부는 비타민 A를 과잉 섭취하면 태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신경전문의 야마모토 씨는 “빈혈쯤이야 하고 방치했다가는 심장질환의 위험성마저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균형 잡힌 식생활로 충분히 빈혈을 예방할 수 있으니 평소 식습관을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앗! 그 증상 혹시 빈혈일지도… 몸이 노곤노곤 나른하고, 의욕이 없다. 현기증, 가슴 두근거림, 숨 차오름 등의 증상 외에도 아래와 같은 증상이 있다면, 철 결핍성 빈혈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안색이 창백하다 ▲어깨와 목이 자주 뻐근하다 ▲얼음이 자주 먹고 싶다 ▲음식을 삼키기 어렵다 ▲탈모가 있다 ▲피부가 버석버석해졌다 ▲손톱이 얇아져 잘 부러진다 ▲손톱 중간이 숟가락처럼 움푹 들어간 모양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