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유산(약 4조 원) 주인은 ‘제3의 인물’
▲ 생전 니나 왕의 갈래 머리 모습. 그는 소녀 같은 복장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사진은 지난 2001년 자신을 소재로 한 만화 캐릭터 인형 ‘니나’와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로이터/뉴시스 | ||
지난 4일 홍콩을 비롯한 중국의 톱기사는 단연 아시아 최고의 여성 갑부였던 니나 왕(69)의 죽음이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난소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니나 왕은 약 42억 달러(약 4조 원)의 자산을 보유한 재력가 중의 재력가였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막대한 재산뿐만이 아니었다. 두 차례에 걸친 남편의 납치 사건, 남편의 유산을 둘러싼 시아버지와의 8년 간의 법정 분쟁, 그리고 간통 혐의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마치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 파란만장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녀는 당분간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전망이다. 그녀가 남긴 4조 원의 행방 때문이다. 생전에 자녀가 없었던 그녀가 과연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는지가 현재 중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상하이 출신인 니나 왕의 본명은 ‘공루신’이다. 2004년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여성 갑부’이자 중국 대만 홍콩을 통틀어 11번째의 갑부이기도 했던 그녀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였다.
이밖에도 그녀는 평소 일본 만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처럼 양갈래로 길게 머리를 땋아 내리고, 나이에 맞지 않는 어린 소녀 같은 복장으로 늘 화제가 되곤 했던 인물이었다.
남편의 회사였던 ‘차이나캠’ 그룹의 대표였던 그녀는 남편이 납치 실종된 후 회사를 도맡아 꾸려왔으며,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회사를 홍콩 최고의 재벌그룹으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제약 및 화학회사로 시작했던 ‘차이나캠’은 니나 왕의 지휘 아래 부동산 시장에까지 손을 뻗쳤으며, 지금까지 홍콩 일대에 오피스 빌딩이나 주상복합 건물, 고급 아파트 단지, 쇼핑 센터, 극장 등 굵직한 건설 사업을 도맡아왔다.
물론 돈으로만 따진다면 그녀는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여자’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납치, 간통, 유산 상속 분쟁 등으로 얼룩진 그녀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그녀가 남편 테디 왕을 처음 만난 것은 소녀 시절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깝게 지냈던 양가 덕분에 둘은 소꿉친구로 자랐으며, 홍콩으로 이주한 후에는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테디 왕은 ‘차이나캠’이라는 화학 및 제약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3년부터는 악재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테디 왕이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갱단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8일 동안 침대에 묶인 채 감금되었던 그는 니나 왕이 1100만 달러(약 100억 원)의 몸값을 지불한 후에야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7년 뒤인 1990년 두 번째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역시 벤츠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납치된 그는 이번에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니나 왕이 몸값으로 3300만 달러(약 300억 원)를 지불했지만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으며, 한동안 생사조차 불투명한 채 실종된 상태로 남아있었다.
그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니나 왕은 남편이 실종되기 한 달 전에 작성했던 유서에 따라 경영권을 물려받아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 남편 테디 왕과 함께. | ||
니나 왕과 시아버지 왕팅신(96)의 길고 지루한 8년간의 법정싸움은 그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1997년 왕팅신은 며느리인 니나 왕을 유언장 위조 혐의로 검찰에 기소했다.
그는 법정에서 “아들의 유서는 적어도 세 개가 있었다”면서 “니나 왕이 주장하는 아들의 유서는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유서 중 가장 첫 번째 것은 지난 1960년 테디 왕이 작성한 것으로, 이 유서에는 왕팅신과 니나 왕에게 유산을 반씩 상속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1968년 테디 왕은 기존의 유서를 찢어 버리고 다시 유서를 작성했다. 이유는 바로 니나 왕의 간통 때문이었다. 당시 니나 왕이 미국 댈러스 출신의 사업가였던 토니 디미랙과 불륜관계라는 사실을 알아챈 테디 왕이 배신감에 유언장을 새로 작성했다는 것. 왕팅신이 갖고 있는 이 유서에는 전 재산을 아버지인 왕팅신에게 물려준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작성된 1990년 유서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니나 왕이 보유하고 있는 유서다. 1990년 테디 왕이 낙마사고를 겪은 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서에는 모든 재산을 아내인 니나 왕에게 상속한다는 내용과 함께 자필로 ‘One love, one life’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다.
하지만 왕팅신은 유서 내용의 상당 부분이 며느리에 의해 위조되었다며 법정분쟁을 시작했고, 2002년 홍콩 법원 1심과 2심에서 각각 승소 판결을 받는 데 성공했다. 당시 법정은 니나 왕의 유서는 가짜이며, 왕팅신이 유일한 상속인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니나 왕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며 즉시 항소를 했고 마침내 2005년 종심법원에서 다시 한번 판결을 뒤엎는 데 성공했다. 법원은 니나 왕의 유언장 위조 혐의를 만장일치로 기각했으며, 이로써 니나 왕은 유일한 합법적 유산 상속인으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매듭지어졌던 세기의 유산 분쟁은 조만간 다시 한번 중국 전역을 시끄럽게 할 전망이다. 과연 그녀의 막대한 유산이 누구에게 돌아갈까 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은 그녀는 생전에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중국의 경제 개발과 의료 및 교육 분야에 쓰이도록 헌납할 것이라고 말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 후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의 변호사인 조나단 미질리가 “사실은 그녀가 상속인으로 지목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가 비밀리에 유서를 작성해 놓았다는 것이다. 미질리의 말에 따르면 니나 왕은 단 한 명의 상속인을 지명해 놓았으며, 이는 자선단체나 사회단체가 아닌 ‘개인’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신분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적어도 친정식구나 시댁식구는 아닌 제3의 인물로, 성별이나 가족사항 등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중국 및 홍콩 언론들은 이 베일에 가려진 상속인을 가리켜 ‘미스터리 인물’로 명명하면서 정체를 밝혀내는 데 분주하다.
‘혹시 숨겨 놓은 자식이라도 있었던 걸까’ ‘몰래 양자로 삼은 후계자가 있었던 걸까’ ‘평소 그룹 내에 점찍어 두었던 인물이라도 있었던 걸까’ 현재로서는 추측만 난무한 상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