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존심 지킬 인물로 여겨…공약 안 믿지만 자신의 대변자 역할로도 만족
그렇다면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30%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는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한 열혈 지지자들이다. 트럼프가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과연 이들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트럼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는 걸까.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이 미국 전역에서 만난 ‘콘크리트 지지층’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열린 백인 우월주의 시위 현장에서 차량 한 대가 군중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이 시위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트럼프의 지지율은 30%대까지 추락했다. AP/연합뉴스
텍사스주의 CJ 그리셤은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그리셤은 지난 2003년 사담 후세인 검거 작전에도 참여했던 전직 군인 출신으로, 누구보다 뛰어난 애국심을 자랑한다. 이런 애국심을 바탕으로 2013년에는 ‘오픈 캐리 텍사스(OCT)’라는 단체를 창설하기도 했다. OCT는 일반인들의 무기 소지를 강력히 찬성하는 단체이며, 현재 회원 수는 미국 전역에서 5만 명을 넘어선 상태다.
그리셤은 회원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영웅과 다름없다. 때문에 행여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기꺼이 지휘권을 맡길 각오도 하고 있다. 미국에서 발생할 전쟁에 항시 대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리셤은 “만일 우리 조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트럼프의 적들이 쳐들어온다면, 나는 남은 총알 하나까지 바쳐 싸울 것이다”라고 호언했다. 이런 까닭에 그의 자동차 트렁크 안에는 자동 소총, 방탄 조끼, 탄약, 헬멧 등 무기들이 가득하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리셤은 “탄약이 바닥 나면 칼을 들고 싸울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사실 그리셤이 두려워하는 적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무슬림이 아니다. 그보다는 같은 국적을 가진 미국인들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를 반대하는 미국인들이다.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 그리셤과 같은 극단적인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슈테른>은 트럼프를 향한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콘크리트 지지층은 고집스런 성향이 강하며, 이런 자신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전투적으로, 혹은 공격적으로 대응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향해 “더 이상 트럼프 지지자들을 비웃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유인즉슨, “트럼프를 이렇게 악마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트럼프에게는 선물이 될 수 있다”면서 “트럼프의 광기는 전염성이 있다. 이런 광기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분노로 미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리셤의 경우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장벽은 점점 높아져만 가고 있다. 가령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뉴욕 시민들은 더 이상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은 플로리다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 있으며, 공화당 지지자들은 친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의 토크쇼만 줄기차게 시청하고 있다.
초당파적인 우정 혹은 사랑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보수적인 60대들 가운데 자녀들이 정치적으로 반대 성향을 지닌 짝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5% 정도만이 우려를 나타냈던 것에 비해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33%의 민주당 지지자들과 40%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이런 정치적 성향의 차이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는 더 좋은 직장을 위해서 거주지를 옮겼던 반면, 이제는 정치적으로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은 마음에 이사를 가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심지어 이처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타협하는 행위 자체를 배신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뉴멕시코주 샌안토니오에서 ‘부엉이’ 술집을 운영하는 여주인이 바로 그런 경우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던 그녀는 “아마 이 마을의 유권자 500명 가운데 트럼프를 안 뽑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트럼프가 당선이 되거나, 아니면 미국 전체가 망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았다면 미국이 몰락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추종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현재 상황은 매우 역설적이다. 먼저 지지율이 그렇다. 지난 8월 25일 조사 결과,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은 샬러츠빌 유혈 사태 이후 역대 최저치인 35%까지 추락했다. 미국인의 3분의 2가량이 트럼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트럼프처럼 지지자들에게 열렬한 환대를 받았던 대통령은 없었다. 30%의 지지율이 무색할 정도로 어딜 가나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때 철강 도시였던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을 방문했을 때의 분위기도 그랬다. 당시 트럼프는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서 “다시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습니다. 오래된 공장을 철거하고,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나갑시다!”라며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런 발언에 환호를 보내면서도 그의 약속을 온전히 믿는 사람은 사실 드물다. 영스타운에서 철강공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확률은 실제로는 매우 낮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또한 매우 역설적이긴 마찬가지라고 <슈테른>은 말했다. 트럼프의 약속이 공허하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지지자들이 트럼프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의 건강보험개혁안이 실패했을 때나,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콘크리트 지지층들은 트럼프에게 꾸준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조지 메이슨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저스틴 제스트는 “그들에게는 트럼프에게서 등을 돌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약속을 실행에 옮길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3개월 동안 영스타운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관찰했던 제스트는 “트럼프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준다. 오랫동안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가 다시 목소리를 내게 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전문가들은 지난 6개월 동안 트럼프 지지자들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트럼프에게 확고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즉,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만큼 그들의 이익을 강력하게 대변해줄 다른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인 이유로는 트럼프가 그들의 편에 서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백만장자라는 사실이나 러시아와 접촉했는지 여부는 이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트럼프가 그들의 편에 서서 싸워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이들은 트럼프가 자신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믿고 있다. 셋째,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에 감탄하고 있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스타이며, 오래된 미국의 마지막 기회다. 특히 자존심, 일자리, 종교, 가족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줄 인물이 바로 트럼프라는 것이다.
뉴멕시코주에 거주하는 세 자녀의 싱글맘인 제시 벅비스트도 트럼프에 대한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는 이른바 ‘트사모’ 가운데 한 명이다. 농장에서 시간제 노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생활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트럼프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고 있다. 또한 트럼프 정부 하에서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지만 “그럼 내가 더 열심히 일하면 된다”라며 개의치 않고 있다. 오히려 그녀는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가리켜 ‘적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이런 도움은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녀가 생각하는 올바른 미국은 모두가 스스로를 위해 싸우는 나라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녀가 거주하는 뉴멕시코주 시민들의 3분의 2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더 이상 사교적이 되거나 굳이 친절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 서부시대 그랬던 것처럼 싸우거나 아니면 죽을 뿐이라는 것이다. 현재 그녀는 새로운 남편감을 찾고 있다. 꼭 돈이 많지 않아도 좋으니 다만 트럼프 지지자여만 한다고 그녀는 못박았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훅실드는 현재의 이런 미국을 바라보면서 “나는 미국이 진심으로 매우 걱정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5년 동안 루이지애나에서 보수주의 티파티 운동가들과 트럼프 지지자들과 함께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의견을 밝힌 훅실드는 특히 요즘처럼 양측 진영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고 벽을 쌓고 지낼 경우 적대감과 두려움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거실에서 대화하기’ 운동을 제시했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만나 허심탄화히게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다. 누구의 집에서 만나든 상관 없다. 중요한 것은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다. 가령 훅실드 집의 거실에서는 루이지애나의 트럼프 지지자들과 캘리포니아의 반트럼프 성향의 주민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 훅실드는 “모두들 우호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의 간극은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좁혀질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양쪽 모두 애국자라는 사실이라고 <슈테른>은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