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일선 검사로 일할 때 미제사건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밤새 보는 적이 많았어요. 저는 여자라 잘은 모르지만 남편의 기록을 들춰봤어요. 죄를 졌지만 인간의 삶이 경찰이 쓴 조서같이 단순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구요.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이면 연탄불 위에서 끓이는 냄비국수를 시켜 먹으면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세상돌아 가는 걸 남편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죠. 장사하는 분들이 삶의 얘기를 많이 하는데 대부분이 돈 때문에 싸우고 지지고 볶은 내용들이더라구요. 그런 환경 속에서 범죄가 일어나는구나를 알았죠. 그러면서 나는 남편의 월급이 또박또박 들어오는 걸 새삼 감사했어요.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 한 푼 벌기가 얼마나 힘드는지를 알았으니까요.”
고위직 검사부인들의 옷 로비 사건이 있었다. 대충의 내용은 고급 호화 양장점의 옷들을 뒤에서 검사 부인이 뇌물로 받아먹은 사건으로 기억한다. 부인이 정결해야 남편이 좋은 공무원이 될 수 있다.
“검사장의 부인도 하시고 남편이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있으면 부자들도 많이 접근하려고 했겠네요?”
내가 물었다. 권력근처에는 항상 돈의 유혹이 있는 법이었다.
“주변에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보기도 했어요. 양평의 물가에 어마어마한 별장을 가진 사람을 보기도 하고 집안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집도 가 봤어요. 보통사람들은 따라가기 힘든 부를 가진 거죠. 그래서 우리사회가 양극화 됐다고 하잖아요? 검사 부인들을 보면 권위적이 되고 건방져 지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검사장에서 남편이 장관이 되지 못하니까 스트레스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여자도 있더라구요.”
“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자제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셨죠? 부자처럼 잘살고 싶지 않으셨어요?”
“어쩔 수 없이 모임에서 부자집 사모님들을 만날 경우가 있는데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까 대신 나를 특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옷을 한 벌 입더라도 남대문시장에 가서 나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면 될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집도 그래요. 남편의 은퇴를 생각하고 어디서 살 것인가 생각하고 전국을 돌아다녔죠. 그러다 남편의 고향인 백마강변의 낡은 농가를 사서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화장실 같은 일부만 바꿨어요. 도시의 아파트 하고 똑같이 살려면 왜 그런 집이 필요하겠어요?”
이제 나이가 지긋한 선배부인은 시간이 날 때면 구청의 문화센터에 가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성악을 배우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지낸다. 구청에서 낮에 노인들에게 주는 밥이 아주 맛이 있다고 했다. 오랜 세월 선배부부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하나님은 그들 부부는 금수저 출신이었다. 돈보다 총명한 머리와 재능을 주셨다. 그게 진짜 순금으로 만든 금수저다. 그들은 거기에 욕심을 내지 않고 항상 아래로 내려가려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금수저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이라고 할까. 인생은 수영을 배우는 사람들 같다. 머리를 빳빳이 들면 가라앉고 머리를 내리면 알 수 없는 힘이 몸 전체를 들어 올려주는 것 말이다. 대통령부터 대한민국 공직자 부인들이 이렇게 하면 나라가 훨씬 좋아질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