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WHY’가 키운 깨어있는 일꾼
▲ 인재 경영으로 유명한 도요타의 와타나베 가쓰아키 사장. | ||
인재 경영으로 유명한 도요타의 임원들이 헤드헌터의 타깃이 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미국 사업 확대에 공헌하여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본사의 이사가 된 짐 프레스 북미 도요타 사장이 크라이슬러의 부회장 겸 사장으로 취임했다. 곧이어 10월에는 미국 도요타 판매의 짐 팔리 부사장이 포드의 부사장으로 적을 옮겼다.
‘도요타맨 모셔가기’ 경쟁은 일본 내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일본의 유명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 라쿠텐(樂天)의 2인자인 다케다 가즈노리 상무도 도요타의 국제인사와 생산조정 등의 부서에서 요직을 담당했던 전직 ‘도요타맨’이다. 이들의 활약은 자동차 업계를 벗어나 생산·유통업계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일본의 대중지 <주간 포스트>가 소개한 도요타맨의 저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미국에서 잇달아 경쟁사에 임원들을 빼앗긴(?) 후 도요타의 와타나베 가쓰아키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도요타의 임원이 된 후 외국 기업으로부터 헤드헌팅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연봉을 얼마나 줄 것인지 물어보기라도 할 걸 그랬다”며 ‘도요타맨’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농담을 했다. 업종을 불문하고 모든 회사가 원하는 인재를 배출해내는 도요타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선 도요타는 낭비 요소를 근본부터 철저하게 예방·해결하는 ‘가이젠(改善)’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설계를 비롯하여 생산, 판매 등의 모든 단계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현장에서 즉각 처리하여 돈과 시간, 자원의 낭비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도요타의 더 큰 저력은 감춰져 있던 문제들을 눈에 보이는 곳으로 꺼내서 해결하는 과정에 있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스스로에게 “어째서?”라는 질문을 다섯 번 반복하는 ‘5 WHY’ 규칙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신제품에 불만이 발생’하는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했을 때 도요타에서는 다음의 다섯 과정을 통해 문제의 본질과 해답을 찾아낸다. ①어째서 불만이 발생한 것인가? → 품질 관리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②어째서 허점이 생긴 것인가? → 인사이동으로 인해 업무의 인수인계에 미비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③어째서 미비한 점이 발생한 것인가? → 문서가 아닌 말로 인수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④어째서 말로 인수인계가 이루어진 것인가? → 업무 인수인계에 대한 규칙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⑤어째서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 사내의 각종 절차에 대한 규칙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적 사고’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자문하여 논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낸다. 이런 자질 때문인지 이들은 다른 업계에서도 이해력과 판단력, 통찰력이 뛰어나며 교섭을 할 때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배경에는 인재 육성을 위한 새로운 시도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 도요타의 기업 문화가 있다. 2002년 도요타는 엘리트 인재 육성을 위해 회사 내에 ‘도요타 인스티튜션’이라는 교육시설을 개설했다. 이곳에서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간부 후보생들이 경영자가 지녀야 할 시점이나 실천력 등에 대해 토론을 통해 배워나간다. ‘국내 점유율을 39%에서 42%로 올리기 위한 방법’과 같이 구체적인 주제를 정해 회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다함께 생각한다. 각각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비즈니스맨으로서 시야와 인맥을 넓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2007년 7월부터는 인사 제도 개혁에도 착수하고 있다. 각각의 관리직 밑에 ‘소집단 리더’라는 자리를 만들어서 3~5명의 작은 팀의 교육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꾀할 수 있다는 소집단의 장점을 활용하여 선배 사원들이 책임을 지고 후배들에게 도요타맨으로서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이 과정은 ‘소집단 리더’인 선배 사원들에게도 미래의 관리직이 되기 위한 효과적인 훈련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유명 헤드헌팅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생산 관리에 뛰어난 도요타맨을 스카우트하고 싶어 하는 기업은 많다. 그러나 실제로 헤드헌팅에 응하는 도요타맨은 100명 중 1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헤드헌터의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도요타의 한 40대 사원도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모두 오랫동안 우리를 키워준 도요타의 기업 풍토 덕분”이라며 회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제품이 아니라 인재를 만들어낸다는 도요타의 경영 이념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보면 도요타맨들은 어떤 기업에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과 함께 스스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뛰어나다. 무엇보다 이들은 특정 분야나 업계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회사들이 도요타맨을 끌어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