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고향으로…‘엇갈린 운명’
양곤공항. 하우노 엄마가 눈물 속에서 애틀랜타로 떠났다.
하우노와 씨엔 삐양. 북부 산골에서 온 두 소년이 살았던 빈민공동체입니다. 제가 편지 45번에 소개했던 소년들입니다. 두 소년은 절친이어서 축구도 같이 하고 비좁은 2층 침대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둘 다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우노는 엄마와 함께 아빠가 계신 미국 애틀랜타로 떠났습니다. 아빠는 말레이시아에서 난민으로 7년을 살다 유엔이 주는 난민카드를 받아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 미얀마에 남은 다섯 가족이 애틀랜타로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가족이 모두 만나 행복하다는 애틀랜타의 하우노 모습. 오른쪽이 엄마.
애틀랜타의 남편은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합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부부가 만나던 동영상을 보니 하우노 엄마는 말없이 울기만 합니다. 떠나기 전에 제가 남편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를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보고 싶었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떠나기 직전의 두 소년. 왼쪽이 하우노.
이 공동체에는 리안 선생님이 있습니다. 교육에 열정을 가진 리더입니다. 한국 유학파입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겐 교육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때로는 엄격합니다. 뒤늦게 결혼도 하고 예쁜 딸도 낳았습니다. 많은 학생들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돌봅니다. 공부를 시켜 대학도 보내고 결손가정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자라도록 아빠가 되어줍니다. 그런 그에게도 때로는 슬픈 날들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폭포같은 비가 며칠째 내리던 날, 아이들 일곱 명이 신발을 잃어버리고 왔습니다. 리안 선생은 그 빗속으로 아이들과 신발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비를 홀딱 맞고 돌아온 그들 손에는 짝이 맞지 않은 신발이 들려있었습니다. 짝 없는 신발. 두고두고 제 가슴에 남은 신발의 기억입니다.
교육 공동체 리더인 리안 선생님 부부.
한편 짐을 싸서 양곤을 떠나야 하는 씨엔 삐양을 바라봅니다. 버스로 28시간이 걸리는 곳입니다. 돌아가 봐야 고향엔 빈 집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참 막막합니다. 제가 삐양에게 말을 건넵니다. 공부하기가 정말 싫어? 네. 동생은 두고 가? 네. 농사를 지을 거야? 네. 엄마 소식 들었어? 아니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