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에 이사를 파송하는 교단 중 한 곳인 대한성공회가 지난 21일 현 이사(김근상 주교)를 소환하고 새로운 이사(이경호 주교)를 선임해 파송했음도 불구하고 CBS가 이에 응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성공회는 이에 앞서 공문을 통해 이사 교체를 예고했지만 CBS 재단이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성공회 파송 이사인 김근상 주교를 이사장으로 선출한 바 있다.
법적으로는 재단법인이면서도 한국교회가 설립한 연합기관으로 교단이 파송하는 이사로 구성되는 이사회에 의해 운영돼 온 CBS는 이번 이사장 선출과 관련해 한국교회 연합기관으로서의 위상과 정체성까지 의심받는 형국이다. CBS가 대한성공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사를 교체하면 이사장을 새로 선출하게 되며, 성공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정체성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CBS기독교방송이 교단파송 이사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사진은 CBS본사 전경.
CBS 재단이사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을 비롯해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KNCC 회원 교단을 비롯해 예장합동 등 11개 교단이 20명의 이사를 파송해 구성된다. 정관에서 명시한 이사파송 교단이 정식으로 두 차례에 걸쳐 공문을 통해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 교단의 뜻을 거부한 것은 교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유시경 신부는 “안타깝고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상황”이라고 전제하고 “대한성공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두 명의 이사를 파송한 형국이 되어 버렸다”면서 곤혹스러워했다. 또한 당사자인 이경호 주교는 “지금은 할 말이 없다”고 회피했다. 대한성공회의 입장은 ‘원만한 해결’로 모아지고있지만 그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찾기 어려워 보인다.
CBS 경영본부와 재단이사회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답변을 유보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회사측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경영본부와 기조실은 “정관에 명시된 임원선출의 원칙에서만 답변할 수 있다”면서 대한성공회의 파송이사 교체에 대해서는 경영본부와 기조실이 서로 답변을 미루면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재단이사회 관계자들도 “이사회가 소집되어 봐야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CBS 재단이사회는 12월에 정기이사회가 예정되어 있으며 임시이사회는 아직 소집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교회가 설립에 관여한 기관에서 교단이 파송하는 이사를 거부하거나 정관을 변경해 교단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세대학교는 지난 2014년 이사회 정관을 개정해 예장통합 감리교 기장 성공회 등 4개 교단이 행사했던 교단파송 이사 추천권을 삭제하고 2명의 교계이사로 규모와 의미를 축소한 바 있다. 또한 CBS는 과거 2001년부터 수 차례에 걸쳐 교단이 파송한 이사를 이사회가 거부하거나 파송이사 본인이 교단총회의 소환에도 불구하고 법에서 보장한 임기를 앞세워 불응해 논란을 빚었었다.
교계에서는 현 이사장이 성공회의 파송이사 교체 요구에도 불구하고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법으로 임기를 보장받는 등기이사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CBS 재단이사회와 대한성공회가 벌이는 연합기관 정체성의 문제에서 과연 ‘뱀처럼 지혜로운’ 해법이 나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성흠 종교전문기자 jobin165@ilyo.co.kr